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by E Hana

55일 전,


일주일 뒤가 어버이날이라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용마루>로 향했다.


<용마루>는 해마다 어버이날이면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백숙 먹으러 가는 남한산성의 단골집이다. 어린이날부터 잡힌 빨간 글씨엔 혼자 계신 시어머니를 뵈러 논산으로 내려가야 하기에 서울인 친정엔 항상 일주일 전에 다녀온다. 덕분에 우리집 아들은 언제나 엄마, 아빠의 효도를 위해 자신의 어린이날을 통째로 양보한다.


<용마루>에 도착하니 이미 오리백숙을 위한 밑반찬 한상이 잘 차려져 있었다. 백숙은 시간의 음식이라 예약이 필수다. 불을 줄이고, 김을 덮고, 한참을 기다려야만 그 속살이 부드러워진다. 그런 백숙은 아버지의 소울푸드다. 여름만 되면 온 거실을 뜨거운 김으로 채우며 백숙을 끓이던 엄마에게 젖은 닭이 싫다고 툴툴거리던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아버지를 따라 백숙을 즐기게 되었다.


누군가 나를 위해 온 정성을 들여 끓여준 국물의 기억. 그 기억과 기다림 속에서, 아버지의 굳은 얼굴도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시간이 천천히 녹아내리면서 서로의 긴장을 풀어낸다. 깊은 향이 배어나는 뜨끈한 오리백숙의 첫 술에 아버지 입가에 그리운 미소가 드리운다.


20일 전,


1박 2일로, 친정 부모님과 쌍둥이 이모들과 우리 가족은 가평에 있는 글램핑장으로 놀러 갔다. 가족들 중에도 유난히 친한 가족이 있게 마련이다. 나에게 쌍둥이 이모들이 그렇다. 엄마의 막내 동생인 이모들은 나와 7살 차이가 난다. 어린 시절 1년 동안 이모들과 한방에서 지냈던 추억이 있어 내겐 언니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무뚝뚝한 아버지도 쌍둥이 이모들은 유난히 귀애하셨고, 나 또한 살갑고 친절한 이모들이 좋았다.


아버지는 숲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산책을 즐겼고 아들은 야외수영장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이 나 팔딱거렸다. 당신은 바비큐 그릴의 숯에 불을 붙이고 나는 고기와 채소를 준비하고 엄마와 이모들은 오랜만에 수다를 떨었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라 한낮은 더웠지만, 오후가 되면서 글램핑장에는 계곡의 서늘한 바람이 스며들었다.


해는 천천히 산 너머로 기울고 있었다. 불이 붙은 숯에서 타닥타닥 소리가 들렸다. 반짝이는 조명이 하나둘씩 켜지고 빨갛게 달아오른 바비큐 그릴 위로 고기를 올리자 치익-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공기를 가득 메웠다. 오랜만에 교외로 나오니 좋다는 아버지 말씀에 당신의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무심한 듯 흘려 들었지만 내심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7일 전,


아버지가 코로나에 걸렸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도 무사했는데. 엄마가 아버지대신 약을 받아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스스로 격리되었고, 닫힌 방문 안에서 엄마의 밥상을 받았다. 몸살이 난 것처럼 온몸이 아프고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고 했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맬 때도 굳세게 일어나셨으니 이번에도 잘 이겨내시리라...


3일 전,


저녁이 되어서 당신과 함께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목에서 쇳소리가 났지만 컨디션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만해서 다행이라고. 다 나으시면 맛있는 거 먹으러 교외로 나가시자고 끊기 전에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자'고. 고맙다며 이내 전화를 끊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마지막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늘 아침,


아침부터 잔뜩 상기된 엄마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택시를 잡아 타고 아들과 함께 친정으로 가니 온 집안은 갑자기 들이닥친 죽음으로 깊은 침묵이 드리우고 있었다. 아직 격리 중인 터라 아버지에게 아침 식사 하시라고 엄마가 방문을 두드렸는데 아무 기척이 없어 열어 보았더니 창문이 활짝 열린 채로 텔레비전 혼자 떠들고 있었단다. 경찰의 신고를 받고 의사가 이미 다녀간 상태였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아버지는 마치 주무시는 것처럼 아직 침대에 누워 계셨다. 눈을 감은 아버지 손을 쓰다듬으며, 주무시다가 돌아가셔서 다행이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마지막으로 본 텔레비전은 무슨 내용이었을까?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온 새벽바람은 시원했을까? 죽음의 순간을 직감하셨을까? 떠오르는 무수히 많은 질문들 중 다행인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아버지 핸드폰의 마지막 통화가 나여서 다행이라고. 고통이 아버지를 잠식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아산병원 장례식장으로 아버지를 옮겼다.


3일 후,


영정 속 아버지는 평소처럼 입을 꾸욱 다물고는 단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직 타다 남은 향 냄새가 희미하게 흩어졌다. 상여가 빈소를 떠나 화장장으로 향했다. 무거운 침묵 사이로 운구차의 엔진 소리가 낮게 깔렸다. 커튼을 친 창문틈으로 여름 햇살이 쏟아졌다. 대지 위의 습기와 초록이 만나 계절을 이루었다.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눈부신 햇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들판을 가로지르는 새무리. 세상 모든 것이 여름의 힘으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오직 아버지만이 숨을 멈추고 좁은 관 안에 누워 있었다.


화장장에 도착했다. 상여꾼들의 구둣발 소리가 로비를 울렸다. 관이 옮겨지고 마지막으로 안부를 전하라는 직원의 말이 들렸다. 엄마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입 밖으로 말을 뱉는 순간 폭발할 감정을 가족들은 애써 꾹꾹 눌러 담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직감했다. 그러니 내가 입을 열어야 했다.


"좋은 날,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아버지.."


발인을 마쳤다.


아버지의 관이 뜨거운 화장로로 들어갔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창으로 스며든 햇살이 실내를 가로질렀다. 빛줄기 안에서 공중에 뜬 먼지들이 천천히 부유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조각들처럼 가볍고 느리게 움직였다. 작은 입자들이 바람도 없이 유영하고 있었다. 짧은 순간 동안 그들은 세상의 가장 작은 빛의 생명처럼 반짝거렸다. 하늘은 유난히 맑았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는 생각했다.


흰 천에 쌓인 유골함을 받아 들고 수목장으로 향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어린 향나무 한 그루가 심어졌다. 평생을 하지 못했던 한마디가 입가에서 맴돌았는데 끝내 밀어내지 못하고 돌아섰다.




2023년 6월 23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의 아버지도 보통의 아버지들처럼 말수가 적고 표현이 서툴렀다. 사는 게 우선이던 시절을 관통해 살다 보니 자신의 감정보다 가족의 생계가 중요했다. 아버지의 권위적이고 엄격한 태도는 가족들에게 종종 상처를 남겼지만 밑바탕에는 '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과 시대적 압박감이 있었다. 그들의 보수성은 그들이 살아내는 삶의 방식이었다는 걸, 나는 내 가족을 꾸리고 난 뒤에야 알았다.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라는 말이 아니다. 죽음을 인식할 때, 비로소 삶의 가치를 더 명확히 본다는 뜻이다. 우리가 언젠가는 사라질 존재라는 걸 기억하면 사소한 분노나 욕망은 소멸하게 된다. 오늘 내가 사랑할 사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마음을 더 집중시켜야 한다. 죽음을 떠올리는 건 '절망'이 아니라 '정화'다. 삶을 비추는 거울 같은 것이다. 그러니 뜨겁게 안녕하라.


그리고, 메멘토 아모리스!


사랑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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