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전한 마음은 못채워도 냉장고는 채울 수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시장이다. 길 양옆으로 나란히 나를 맞아주는 고소한 전과 빨간 떡볶이, 뜨끈한 오뎅국물은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풍요롭다.
눈과 코로 샅샅이 후보를 스캔한 후 어떤 때보다 신중하게 오늘의 주인공이 될 음식을 고른다.
사실 살게 있어서 시장에 간 적은 많지 않다.
식량을 재놓는 나의 습성 탓에 우리집 냉장고는 늘 꽉꽉 먹거리들이 들어차있지만, 냉장고에 들어온 음식들은 내가 손질하고 다듬어서 내놓아야할 일거리들이고 시장에서 솜씨좋은 이모들의 손을 거친 음식들이야말로 진짜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의미의 '음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리집 냉장고는 항상 내가 사모은 음식과 식재료들로 가득하다. 작년에 호주에서 사 온 민트초콜렛조차 추억이라며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도 있지만 마치 전쟁을 대비하듯 언제나 식량창고가 가득해야 마음이 편안한 탓도 있다.
늘 텅 비어있던 냉장고에서도 기어코 말라비틀어진 장아찌를 찾아내어 그것만 놓고도 혼자 밥한그릇을 뚝딱 먹어치우던 초등학생때의 나는, 어른이 되어서 그에 대한 한풀이라도 하듯 냉장고를 그득그득 채우는 것이다.
어떻게 손질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낯선 채소들도 무의식적으로 장바구니에 넣고 본다.
주부로서 썩 좋은 경제관념은 아니지만 그냥 예쁜 토마토나 브로콜리 같은 채소들을 장바구니에 넣고 집에갈때 기분이 참 좋다.
과시는 결핍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누구에게 과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습성도 결핍에서 기인한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무려 아홉살에 혼자 가스불을 키고 수제비를 목표로 한 정체불명의 음식을 끓여내 일곱살짜리 동생과 나눠먹은 기억이 난다. 수돗물에 식초나 간장 따위를 조금 넣고 어깨너머로 본 할머니의 칼국수 반죽을 따라서 밀가루에 물을 반죽하여 만든 덩어리를 수제비랍시고 떼어 넣은 그 최초의 요리. 아직도 잊히지 않을만큼 밍밍하고 시큼했던 그 국을 동생은 진심이었는지 누나를 위한 거짓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맛있다며 싹싹 비워냈다.
내 유년시절이 내내 영양가가 없었냐고 물으면 또 그건 아니다. 물론 거의 할머니가 밥을 차려주긴 했지만 분명 생선을 먹은 날도 있었고 엄마가 입이 짧은 남매를 위해 사온 명란젓을 먹었던 기억도 있다.
철마다 내가 좋아하는 수박을 넉넉히 먹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어떤 맛이었는지, 어떤 생김새였는지를 떠올려보면 도무지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쁜 기억은 좋은 기억보다 끈질기고 행복은 모호하지만 불행은 명확하다.
열한살즈음 가정형편이 어려워지고 재건축 예정인 다 부서져가는 집으로 이사를 가고 난 후에 먹었던 음식들은 어째서 그렇게 생생히 기억날까. 아빠가 부도를 내고 우리를 떠난 후 올망졸망한 삼남매을 홀로 떠맡은 엄마는 급하게 구색만 겨우 갖춘 술집을 차렸다. 물론 나는 가본적이 없어 어떤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무렵 고등학생이던 언니는 밖으로만 떠돌고 집에는 11살, 9살 남매만이 남아 끼니를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뭘 어떻게 먹고 살았는진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뭐든 먹었다는 사실이다. 어쩔땐 컵라면으로, 어쩔땐 엄마가 술집에서 가져온 손님들이 먹다 남긴 불고기로, 우리 남매는 쑥쑥 자랐다.
그때는 그것이 나에게 불행이라기보다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가까웠는데, 나는 엄마가 가져온 술집에서 남은 그 음식들을 제일 좋아했다. 아이들이 먹기엔 다소 자극적인 양념에 버무린 불고기와 운이 좋으면 먹던 족발같은 것들. 그런것들이 있는 날은 참 행복했다. 하루는 족발을 먹고 남은 뼈다귀를 우려내면 맛있는 국이 될것 같다는 생각에 족발뼈를 냄비에 넣고 한참을 끓이며 동생과 잔뜩 설레어하는데, 뒤늦게 엄마의 친구였던 이웃집 아줌마가 우리를 보살펴주러 왔다 그 모양을 보고 기겁을 하시며 엄마에게 전화해 "애들이 불쌍해.."라고 흐느끼셨던 기억이 있다. 그땐 왜 이모가 우는지, 왜 족발뼈를 못먹게하는지도 몰랐지만 사정을 알게 될 만큼 머리가 굵은 후에는 지금까지도 한번씩 그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술집에서 전화를 받았을 엄마의 마음, 나만큼이나 아쉬웠을 동생의 마음..
성인이 되고 나서는 다시 풍족해진 우리집 형편 덕분에 나는 한동안 그 기억을 잊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취업을 하고 독립하고 나서 그때의 기억이 자꾸만 소환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공무원 초봉은 180만원도 안되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며 결혼자금을 모을 시기에는 4년차였음에도 불구하고 월급이 200만원 남짓밖에 되지 않았고 설상가상 집안형편마저 다시 쪼그라들었다.
쪼그라든 정도가 아니라 박살이 나다시피해서 그나마 있던 땅과 공장마저 경매로 넘어가고 내 공무원 대출에 온가족이 의지할 정도로 궁핍해졌다. 그렇게 다시금 어린 시절의 고행이 반복되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집안 형편이 조금 피고 아빠가 벤츠 세단을 다시 타게될쯤 나는 자유를 꿈꾸며 영국유학에 올랐고 철없이 돈을 써댔다. 그리고 돈이 다 떨어져갈때쯤 한국에 다시오자 벤츠는 사라져있었고 남은 길은 학벌도 별로고 스펙도 없던 내가 빨리 '안정적'이라는 말을 집에 심어줄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갖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짧은 생각이 역설적으로 돈을 버는 직장인이 되어서 또다시 '식량고행'을 겪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알았더라면 조금 더 집에 민폐를 끼쳐서라도 어떻게든 돈을 더 주는 직장에 취업을 했을 것이다.
막 연애를 시작한 남자친구에게 우리집 형편을 솔직하게 고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래서는 안됐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서도 그런 구절이 있다. 공교롭게 소설의 주인공 '안진진'과 나는 공통점이 참 많은데, 특히 사랑하는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의 차이를 정의하는 그녀의 방법에서 나는 마음을 들킨듯했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게는 스스럼없이 교도소에 들어간 동생부터 행방불명이 된 술꾼 아버지 얘기까지 줄줄 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남자에게만은 그런 말은 절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것만 같았다. 의도적으로 집안형편을 속일 마음은 아니었다. 늘 그렇듯 아무리 어려워도 오뚜기처럼 또다시 집안을 일으켜왔기에 이번에도 그 튼튼한 오뚜기같은 아빠를 믿었기 때문이다.
'설마 제일 예뻐하는 둘째 딸이 결혼하는데 손놓고 있지만은 않겠지..' 라는 괘씸한 생각을 하며 줄곧 생활력이 강한 부모님에게 믿음이 있었기에 목돈이 들어갈때까진 어떻게든 버티자는 셈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두 손을 놓고 마냥 나이 든 부모만 기다릴만큼 한심한 처자는 아니었다. 사방팔방으로 뛰고 악착같이 돈을 아끼며 한푼 두푼 결혼할 자금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몇년간 모은 3천만원 남짓한 돈.
서울에 이례적인 폭우가 내려 지하철이 물에 잠기고 차가 떠내려가는 홍수가 뉴스를 뒤덮은 날에도 무릎까지 차오른 물을 헤치며 걸어간 값, 편의점에서 먹고싶은 빵 대신 더 싼 빵을 먹은 값, 엄마한테 빌린 돈을 갚으라고 울면서 악을 쓴 값. 그런 값들이 모여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알량하고도 양심없는 결혼자금을 만들었다.
회사와 남자친구에게는 늘 꼿꼿하고 우아해 보였을것이다. 당장 내일 밥을 사먹을 돈이 없더라도 데이트를 할때 밥을 얻어먹으면 그 다음 밥은 꼭 계산했고, 싸구려 옷일지언정 늘 빳빳하게 다려입고 나갔다.
그런 자존심이 나를 버티게 한 것 같다. 그런 체면마저 없었다면 나는 무너졌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 그때의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에게 양파껍질을 까듯 하나 둘씩 집안사정을 밝혔고 그때마다 남편 얼굴에는 속상하면서도 아쉬운 듯한 표정이 비쳤다.
요즘은 마켓컬리며 오아시스에서 유기농과 좋은 재료들로만 식탁을 꾸린다.
그런 음식들은 지난 날들의 나에게 위로가 된다. 과거를 잊게 해주고 내가 가치있는 사람인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음식들로 터져나가는 냉장고와는 다르게 내 마음은 아직도 자꾸 허전한것만 같다.
어째서 이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는걸까하고 반문해본다. 남편은 내가 식탐이 많다고만 생각할까?
아니 어쩌면 알지도 모른다. 다람쥐처럼 자꾸만 먹지도 않을 식량들을 끊임없이 나르는 나를 보며 한번도 나무라거나 질책한적이 없다. 그래서 늘 고맙다.
이제부터는 냉장고를 줄여나가볼까한다. 식량을 채워넣으면 결핍도 채워질 것만 같았는데, 아무리 채워도 자꾸만 줄어드는 마음이 영 탐탁지 않다. 대신 재료 하나도 귀하게 여기며 오랜시간 요리를 해서 나에게 대접해봐야겠다. 그 편도 먹히지 않으면 다시 생각해볼까한다.
어쨌든, 마음이 허전하면 시장에 가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들로 배를 채우고 사람들의 활기로 몸을 채울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