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고통스럽다면 몸을 더 고통스럽게 하자!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얘기는 어디서나 나오는 요즘의 화두다.
근데 헬스장에 갈 의지조차 없으면? 집밖에 나갈 마음조차 안들고 그저 따끈한 바닥에 녹아버린 인절미처럼 찰싹 붙어있고만 싶은 나같은 사람은 어찌해야하는가?
그럴때면 나는 별수없이 일단 붙어있을때까지 진득하게 최대한 눌러앉아 있어본다.
이불도 깔지않고 보일러를 뗀 바닥과 한몸이 되면 더이상 아무런 감정도,생각도 들지 않았다.
일을 하지 않으므로 나를 필요로 하는 곳도, 찾는 사람도 없다.
유튜브를 틀어도 내용은 관심없기에 그저 소리를 납작한 등위로 흘러보낸다.
그렇게 오후 12시가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않고 그저 하나의 물체처럼 몸을 바짝 옹크리다 보면 운좋은 날은 드디어 몸을 움직이고 싶어질 때도 있다. 안그런 날은 보통 하루종일 우울함이 이어지기 마련이지만.
몸을 움직여볼까 하는 생각이 들면 곧 포기할세라 얼른 몸을 일으킨다.
여기서 포인트는 "헬스장에 가려고 일어난다"가 아니라, "물을 한모금도 안마셨으니 물한잔만 마시러 일어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헬스장에 가려고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결국 주저하다 다시 이불로 파고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물 한잔을 마시면 그제야 신진대사가 돌아가며 오래된 기계에 연료를 넣고 전원을 킨 것마냥 배가 고파진다. '일단은 먹자'라는 생각이 들면 반은 성공이다.
아침에 빵을 먹으면 몸이 산화된다는건 잘 알고 있지만 나같은 사람은 '건강한 아침을 먹을 수 없다면 굶어야겠다'는 식의 완벽주의적인 합리화에 취약하므로 그냥 되는대로 빵이든 우유든 먹어야한다.
안먹느니 뭐라도 먹는게 낫다.
빵을 먹고나면 비로소 여태 몸을 붙이고 숨어있던 거실 한 구석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저기로 들어가면 오늘은 이대로 끝이리라.
창밖을 한번 내다본다. 햇빛이 따스하게 느껴지고 그리 추워보이지도 않는다.
강아지도 내가 일어나니 기지개를 키고 꼬리를 흔들며 하루를 시작한다.
문득 강아지에게도 미안해졌다. 나를 여태 기다렸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강아지를 위해서라도 나는 조금 부지런해져보기로 한다.
입기 힘든 스판소재의 레깅스를 한때는 사랑했었지만 이제는 훌렁훌렁 입고 벗기 좋은 허벌 운동복을 꺼내입고 양말을 신는다.
자, 이제 진짜 나설 시간이야!
생각보다 밖의 바람은 서늘하고 겨울해는 어둡다.
그렇지만 이제 돌아갈순없어.
누군가는 집앞에 헬스장에 가는데 무슨 과정과 결심이 이리 많이도 필요하냐고 웃겠지만,
실제로 이것이 나의 삶이다. 물론 이 모든 원인이 우울증 탓은 아니다.
사실 가장 탓하기 좋은게 우울증이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집밖에 나가는 것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과 천성적인 게으름, 무기력함이 온데 뭉쳐져서 잠깐 집밖에 나가는 것조차 수많은 내적갈등을 일으키는 탓이다.
아파트 헬스장에는 낮시간에도 사람이 항상 많다.
헬스장에 가면 먼저 러닝을 가볍게 10분정도 탄다.
속도는 3으로 시작해 5에서 조금 뛰다가 시시해지면 9까지 올려 숨이 찰 때까지 뛰어보기도 한다.
한때는 헬스에 미쳐 유산소는 건너뛰고 데드 무게를 올리는데 집착한 적도 있었지만 안그래도 매일같이 앉아있거나 누워있는데 몸의 사슬이 잠기는 운동만 하면 관절이 풀릴 여유가 없다.
또 유산소는 활력을 빨리 불어넣어준다. 근력운동은 나에게 성취감을 안겨주고 목표지향적으로 나아가도록 채찍질하는 느낌이라면, 유산소는 마치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걸어보자. 오늘 잘했어"라고 말해주는 편안한 친구같은 느낌이다.
어느정도 열이 오르고 땀이나면 이제 근력운동으로 넘어간다. 나는 보통 하체운동과 어깨운동을 루틴에 넣는데, 하체운동을 할땐 특히 허벅지와 엉덩이같은 큰 근육을 쓰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사실 느낌이 좋다기 보다는 어느정도 기분이 좋은 범위안에서 느끼는 고통이다.
이 고통을 굳이 스스로에게 가하는 이유는 두가지인데, 첫째로 당연하게도 몸이 건강해지고
둘째로, 몸에 고통이 느껴지면 마음의 고통은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생각이 나를 덮치고 위협할때, 예를 들어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줬던 순간이 머리와 가슴에서 끊임없이 반복될때가 종종 있는데,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생각에만 점점 몰두하게 된다. 심리학적으로도 어떤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쓰는것보다 다른 생각에 몰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
하지만 다른 생각으로 건너가도 그 생각 또한 여전히 부정적인 생각인 때도 있다. 이쯤되면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과 공포를 느끼게된다. 거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마주하는 것은 시지프스의 형벌과 같이 끊없는 고통의 굴레에 빠지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난 이제 나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몸을 움직이는 것에서 찾았다.
때론 목표보다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로 하자.
내가 스스로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면, 고통을 온전히 느껴보도록 해보자.
물론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운동으로 인한 몸의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몸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마음의 고통을 몸에 전가시키는 것은 일석이조다.
유산소든 무산소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걷고 뛰고 들고 당기다 보면 끈적하게 뒤엉킨 생각 따위는 어느새 녹아버리고 내가 뭘로 걱정했었는지조차 잊게된다. 우리는 깨닫지 못하지만 한 걸음을 내딛을때마다 사실 우리 뇌의 시냅스는 몸의 균형과 어느 바닥에 어떻게 디딜것인지, 하물며 발가락의 힘조차 계산해서 근육에 명령을 내리고 있다.
그래서 더이상 다른 생각을 할 여념이 없는 것이다.
덤벨을 균형있게 다루기 위해, 힘을 골고루 분산하기 위해 어떻게 몸을 쓸지만 몰두하게 되는 순간 비로소 나는 고통에서 해방된다.
"아.. 존나 힘들다. 엉덩이 아프다."라며 투정하지만 이것은 몸의 고통이며 성장이다.
적어도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나는 쓸모없어."라는 식의 고통보다는 훨씬 낫다고 확신한다.
그러니 지금 마음이 아프다면 몸에게 대신 아프라고 해보는건 어떨까?
시작은 물 한잔마시러 몸을 일으키는 것으로, 또는 강아지에게 밥을 주러 일어나는 것으로 해도 좋다.
나가는것에 실패하는 날이 있어도 좋다.
중요한것은 내가 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