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인 그림. 본인은 알아본다. 끔찍한 악필. 본인은 이해한다.
다가가서 오랫동안, 자세히 들여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렵다. 닥치는 당혹감, 풀 수 없는 끈.
이해한 것은 얼마나 편안한가. 그것은 정당하다고 속삭인다.
늘 웃어주며, 나를 문책하지 않는다. 정말 빠르고, 쉽다.
명확한 그림, 누구나 알아본다. 확실한 명필, 누구나 이해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하려는 한편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낯선 세계는 불쾌하지만, 홀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세상이 변화하고, 한 존재를 박멸하기 어려움을 안다.
그러니 우리는, 이해로 불결함을 덜어낼 수 있음을 안다.
인간은 완고하지만, 이동할 줄도 안다.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까지, 끊임없이 이동했다.
새로운 땅만큼 낯선 존재가 있었으며, 낯선 존재만큼 고통과 불쾌감이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완고와 이해의 사투가 있었을까.
망각이 없다면 인간은 영원히 싸우리라.
이해하지 않고, 세상을 그려내지도 않았으리라.
맞다! 그리는 것은 이해의 산물이다.
삶은 하나의 그림이다. 끊임없이 옛 것을 지워내고, 새것을 그려낸다.
형태를 바꾸거나 합치기도 하고, 다른 색을 입히기도 한다.
다양한 존재가 한 화폭 안에 조화를 이뤄낸다.
이따금 낯섦이 눈앞에 드리우면, 삶은 동요한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무력함을 목도하면 그림은 색채를 잃는다. 더 이상 그 그림은 내가 아니다.
그림은 더 이상 이해하기 어렵다. 화판을 사야 한다. 새롭게 그려야 한다.
새로운 탄력을 불어야 한다. 운명과 리듬, 인상과 서사를 직조해야만 생명이 돋는다.
이것은 비인간적 우주와의 투쟁이다.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리는, 우주적 힘에 반항하여 유의 질서를 세운다.
펠레우스의 침략에 저항하는 테티스처럼, 그 질서는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며 요동치고 있다.
이해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