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없다

by 한수산

일찍 일어난 참새는 매일 신선한 벌레를 남보다 먼저 먹는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먹는다는 정답이 생겨났고, 아침형 인간이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됐다. 이를 관찰하던 현자들이 “일찍 일어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자 많은 새가 따랐다. 그런데 조기 출근 참새들이 늘자 천적인 매도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침형 참새는 가장 먼저 천적에게 잡아먹히는 신세가 됐다. 현자의 정답이 많은 참새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충격적 변화가 발생했다. “일찍 일어난 새가 먼저 잡아먹힌다”는 정반대 답이 대립물로 형성된다.

순리의 풍경화와 유토피아 설계도 사이에 있는 가장 큰 차이는 정답이다. 순리는 정답(진리)은 없고 존재하는 것은 변화일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지난 2500년 인류는 이를 부정한 가운데 그 변화 안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 왔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손에 쥔 성적표는 정답은 없다는 사실이다. 이걸 있는 그대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진리는 너의 빛이란 구절이 유토피아 시대를 상징하는 말이었다. 그 빛이 낙원으로 향하는 등대라고 생각됐다. 신은 세상 어딘가에 빛을 숨겨놨고, 사람들은 위대한 영도자가 이를 찾아내 길을 밝혀줄 수 있다고 믿었다. 누군가 찾아내기만 하면 유토피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진리는 늘 경합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없기 때문이다. 각자 머릿속에서 만든 생각과 주장 혹은 몽상을 진리라고 말했기에 진리일 수 없었다. 앞서 아침형 참새를 예로 들었듯이 정답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없는 가운데 벌어지는 경합은 피 튀기는 싸움을 유발했다. 예컨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은 진리인지 아닌지 증명되지 않는다. 결국, 중세에 큰 싸움으로 번진다. 이렇듯 존재하지 않는 진리의 절대화는 인류를 유토피아가 아닌 전쟁과 상호 투쟁으로 이끌었다.

정답의 부정은 없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어딘가 있겠지’라거나 ‘언젠가 찾을 수 있겠지’라는 희망 고문도 줄일 필요가 있다. 당연히 나는 정답이고 너는 틀렸다와 같은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물론 상대를 비판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믿을 수도 있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자 권리이다. 다만 나와 다른 믿음에 대해 잘못됐다며 악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내 생각만이 정답이 아닌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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