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의 탄생과 소멸에 관한 간략한 설명

by 한수산

철제 농기구가 만들어지면서 생산력이 급속히 발달해 풍요가 시작될 즈음이었다. 강력한 무기가 개발되면서 맹수의 위협도 사라졌다. 그러자 인간은 더 높은 곳을 보며 새로운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변하지 않는 영원한 젊음과 행복을 꿈꾸기 시작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란 몽상을 한다. 철제 무기는 잔인한 전쟁을 촉발하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전쟁은 사라지고 풍요만 존재하는 세상을 꿈꿨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철학자들이 기원전 500년경 등장했고 사람들은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대로 어쩌면 지상낙원으로 가는 길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신이 숨겨놓은 수수께끼를 풀면 인간은 곧 신과 같이 불멸의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길에 동참했다. 그 과정에서 승인된 철학자가 서양의 플라톤Plato 이었고, 동양의 공자孔子 였다. 반면 이를 망상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동양의 노자老子 장자莊子,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of Ephesus 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영원불멸의 길은 없으며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변화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변화에 순응하는 삶이 순리라고 말한다. 그들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플라톤과 공자를 택했다.

잘못된 판단이 아니었다. 내가 2500년 전에 태어났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다. 결혼은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이야기한다. 같은 맥락이다. 가서 유토피아가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때 포기하면 된다. 아울러 정말 유토피아에 도달해 영원히 죽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그 가능성이 1%만 있더라도 일단 가보는 쪽을 택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그래서 유토피아를 향한 대장정을 시작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플라톤, 공자, 예수, 헤겔, 마르크스 등 위대한 인간의 머리로 창조된 수많은 유토피아 설계도로 건물을 짓고 실천했지만 모든 방식에 허점이 있었고 깊은 상처를 만들었다.

아울러 절대 진리의 마지막 탐험가였던 과학조차 불변의 세계는 없다고 선언했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확률적 지식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과학적 관측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함을 인정했다. 설사 그것이 신의 영역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신이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후 정답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증가했다. 정답을 믿고 그걸 실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수없이 많은 비이성적인 행위들에 대해 지쳐가기 시작했다. 특히 근대 이후 절대왕정, 파시즘, 사회주의 등 유토피아 완성을 목표로 한 굳건한 시스템이 보다 자유로운 시스템 곧, 자유민주주의에 무너지는 걸 목격했다. 유토피아의 욕망은 도달할 수 없는 몽상이었음이 사실로 조금씩 그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순리의 재소환은 파랑새를 찾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느낀 치르치르를 닮았다. 우리는 이제 다시 마음 편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유토피아가 아닌 현실 속에서 더 많은 걸 누릴 수 있다. 2500년 전 유토피아의 선택이 합리적이었다면 실험이 끝난 뒤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게 이제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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