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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엄마 Jan 14. 2024

그렇게 밉던 그가 이해가 되기 시작하다니

나이들어 가는 게 참 좋다

"영감이 떠오르면 신에게 감사하고, 그렇지 않으면 땀으로 쓴다." -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구본형, 김영사, 238쪽-


부채감이 늘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잘 쓰고 마음 아니 매일 쓰고 싶은 욕심과 그렇지 못한 오늘이 쌓인다. 하고 싶은 말들을 쌓아둘 마음이 컸는데 회사원이 되고 난 후 매일 같은 일상을 살다 보니 글로 남기고 싶은 일상이 사라졌다. 사라진 말을 좇다 보니 다시 제자리다. 반복된 일상 속에서 재미를 찾고 싶었는데 피로라는 녀석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우리 가족 각자 금요일 저녁을 기다렸다. 아빠가 퇴근하고 오면 맛있는 고기를 사준다고 해서 한껏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아빠의 퇴근이 늦어져 기다림이 더 길어지지만 배고픔이 늘어도 즐겁다. 아빠가 찾은 새로운 맛집에 가는 기대가 배고픔을 이길 만큼 힘이 세다. 


"오늘은 술 많이 마시자. 나 오늘까지 일 끝내고 오느라 힘들었단 말이야. 원래 1개인데 3개를 했어야 해. 한 개에 1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3개나 쓰느라 힘들었어. 제발 나랑 술 마시자." 

건강 때문에, 내일 병원에 가야 해서, 다양한 이유로 거절했지만, 그의 큰 눈으로 전해오는 그 마음을 못 본채 할 수 없다. 술잔을 부딪히고 엄마 아빠가 웃자 아이들도 웃는다. 


예전에 이해할 수 없던 그가 이해되는 건 최근 나도 일을 시작하면 서다. 자면서도 일 생각이 나고,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시간도 일에 둘러 쌓인 느낌이 든다. 자면서도 잔 것 같지 않고 피로가 쌓인다. "잘 잤어?" 물을 때 그는 늘 "아니."라고 말했는데 나는 거짓으로 라도 잘 잤다고 기분 좋다고 말하라고 했다. 막상 내가 자고 일어났을 때, 일 생각으로 인해 피로감이 느껴지니 그도 그랬구나 이해가 된다.


이해가 되고 공감을 할 수 있는 건 어쩌면 나의 경험밖에 없는 건가! 생각하다 보니 그동안 애써 이해해 주기 싫었던 그에게 미안하다. 큰소리를 내고 싸우던 때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미안함 이상의 그 무엇, 내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진작 내가 더 이해했었더라면 그렇게 싸우지 않았을까? 안 맞는 건지 안 맞췄던 건지, 맞추고 싶은 마음조차 갖지 못할 만큼 여유 없던 시절이 다시 떠오른다. 


아이들은 어리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에 대한 미움, 독촉장을 처음 받아본 그때의 소름 돋는 살떨림, 그 억울함들이 모여 그렇게 악다구니를 썼었다. 돌이켜보면 굳이 그러지 않았어도 됐는데 그 시절 그때는 그게 그렇게 큰일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게 참 좋다. 이해 안 될 일도 없고 그렇게 소리 지를 일도 줄어든다. 또 나한테 지랄하는 인간은 뒤도 안 돌아보고 미련 없이 잘라내도 살아가는데 문제없다. 굳이 경험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폭풍우 속에 혼자 온몸으로 비를 맞아낸 사람처럼 그땐 그렇게 힘들었던 시간도 잊힌다. 


어제 그렇게 만취하여 잠자리에 들었지만, 아침에 눈을 뜨고 책을 읽었다. 영감이 떠오르면 신에게 감사하고, 그렇지 않으면 땀으로 쓴다는 구본형 선생님의 말씀을 보니 한 줄이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찬다. 내일은 웃을 수 있는 재밌는 하루를 살고 브런치에 놀러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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