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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엄마 Jun 07. 2024

반갑지 않은 손님

만사가 귀찮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지하철의 북적거림이 좋았다.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도 살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나도 성공이란 걸 해보고 싶었다. 3년이 지나자 그 마음도 시들해졌다. 삼성역을 사람들 틈에 치여서 한발 한발 오르며 내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라지고 지하철 안 많은 사람이 좀비처럼 느껴졌다. 나도 그 틈에 끼어 좀비처럼 한 발 한 발 걷고 있었다. 이곳을 탈출해야겠다는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고향에 내려와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창밖에 보이는 햇빛이 좋았다. 나뭇잎이 노랗게 빨갛게 물들어가는 것도 신기했다. 그동안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 틈에 치여서 서로의 숨결이 닿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리며 애써 숨을 참아가며 살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그래, 하늘을 보고 땅 아래가 아니라 땅 위에서 살자.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니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은 쉬웠다.


가끔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뭐 하며 살고 있는 걸까? 서울 삼성역 지하철 안 나는 또 좀비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때는 나 혼자 선택하고 나만 책임지면 됐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것도,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도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다.


결혼 후로는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가족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생긴다. 그 부담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겁다. 특히 엄마로서의 삶의 무게는 더 크다.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피로도가 다르고, 신체 움직임이 느려진다. 살이 찌고 잠이 부족해서라고 하지만 내가 느껴지는 것은 그 이상이었다. 


힘을 내고 싶은데 힘이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회사는 가야 하고 이 상황은 벗어나야 하니 내가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이야기하는데 안 힘들어지지 않는다. 듣는 사람도 힘들까 봐 웃으며 이 시간도 지나면 괜찮겠지라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 속은 먹구름만 가득 찬다. 아이들 덕분에 웃기도 하고 아이들 때문에 화도 내면서 하루하루 지낸다.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 회사에 있는 시간은 또 지나간다. 


힘들다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란 것도 알게 되고, 주저앉아 잠시 쉬어 가라는 말도 언제까지 주저앉아도 되는가 싶어 이 말도 아닌 것 같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고 어떤 조언도 쉽지 않다. 내게 해주는 그 조언들이 귓가에 맴돌다 사라지는 걸 보니 알겠다. 선택하는 수밖에. 계속 힘들 것인지, 그만 힘들 것인지, 자리에서 일어날 것인지, 조금 더 울며 버틸 것인지. 


몸이 아파지니 순간 무서웠다. 나는 아파서 죽으면 그만이겠지만, 내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란 생각이 드는 순간 무기력에 빠지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모든 게 원망이었다. 되돌리고 싶은 순간들과 시간들만 기억날 뿐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살고 싶지도 않고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한들 아쉬울 것도 없었다. 아이들만 없다면. 생각한들 돌릴 수 없는 일이다.  내게는 아이들이 있다. 


내게 찾아온 이 반갑지 않은 손님이 떠나갈 때까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아픔을 잘 느끼고 기록해야겠다. 다음에 어느 날 다시 힘들면 내가 그때 이렇게 벗어났구나 알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가는 것 밖에는 별게 없을 것 같은데 진짜 그게 맞는지는 시간이 더 많이 흘러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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