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뮤즈 Jan 30. 2022

생각이 많을 땐 쓰레기봉투를 접어야지

제 취미요? 쓰레기봉투 접기요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들어가기 전에, 위 질문의 대답을 각자 생각해보자.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서도 취미 하나 정도는 필요하다. 이왕이면 단순히 킬링타임용 취미보다는 온전히 그 행위에 집중할 수 있는 취미. 여기서는 그 취미가 생산적이냐 그렇지 않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충분히 생각을 비우고 재충전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런 취미가 있어야 우리는 또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


 온전히 그 행위에 집중할 수 있는 취미라, 말이 어려웠나. 이를테면 뜨개질이나 십자수, 비즈공예 따위 말이다. 운동이나 그림 그리기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내가 소개할 '쓰레기봉투 접기'도.


 갑자기 웬 쓰레기봉투 접기인가 싶을 테다. 쓰레기봉투를 온 정성 다해 접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10L 쓰레기봉투 한 묶음은 20장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냥 쌓아두고 썼다. 그러나 방치하다시피 두고 꺼내다 보면 낱장이 뒤엉켜 펼쳐지고 우르르 쏟아진다. 바닥에 흩어진 쓰레기봉투를 보니 별안간 짜증이 밀려왔다. 꺼낼 때마다 이 참사가 나는 것을 눈 뜨고 보기 싫었다. 그때부터 쓰레기봉투를 하나씩 꺼내기 쉽게 보관할 방법을 생각했다. 보통 쓰레기봉투 접는 법을 인터넷에 치면 네모 모양으로 접는데, 나는 어릴 적 학알 접는 법을 활용해 삼각형으로 접었다.


 쓰레기봉투 한 묶음을 사는 날은 이 취미를 즐기는 날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바닥에 앉아 왼쪽에 쓰레기봉투를 펼친다. 그리고 한 장씩 앞으로 가져와 정성스레 접는다. 각 맞춰 접고 손톱으로 꼭꼭 눌러 접힌 자국까지 만들어가며 오로지 쓰레기봉투 접기에만 집중한다. 그렇게 접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날 내 기분이 기쁘건 슬프건 화가 나건, 요동치던 감정이 서서히 잠잠해져 마침내 잔물결이 된다.






 자,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대답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당신의 [생각을 비울 수 있게 하는] 취미는 무엇인가요?


 단순 반복은 잘만 활용하면 그야말로 무아지경이 된다. 앞서 말한 취미들도 일련의 행복이 반복될 뿐이지만 인기가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행위에만 오롯이 집중하다 보니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잡념이 싹 사라지는 것이다. 취미가 명상이라는 사람을 생각해보라. 명상에 대한 인식은 글쎄, 요즘은 예전보다는 대중화되었지만 여전히 어려운 취미로 생각되는 듯하다. 나도 가끔 명상을 한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어떻게 아무 생각도 안 하고 호흡에만 집중하냐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뜨개질, 십자수, 그리고 나의 쓰레기봉투 접기 같은 취미도 그 본질은 명상과 다를 바 없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저 생각을 비우는 일이다. 쉽다 어렵다를 논할 필요 없다. 생각을 비울 수 있는 나만의 루틴을 만들면 그것이 곧 명상이다.


 이것이 바로 취미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잡념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하는 것. 우리에게는 그런 취미가 절실히 필요하다. 넘쳐나는 생각에 지쳐 고장 나지 않도록 말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든 상관없다. 쓰레기봉투 접기도 평범한 취미는 아니니까. 하지만 나는 쓰레기봉투를 접으며 생각을 덜어내고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던 나를 지금 이 순간으로 모은다. 그럼 된 거다. 여러분의 취미도, 그럼 된 거다.

작가의 이전글 필사, 그거 시간 낭비 아니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