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정말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다. 대략 1년 반만의 영화관이었던것 같다. 어릴적에는 영화포스터를 한 트럭 모을정도로 영화관을 참 좋아했었는데 왜 나는 어느순간부터 영화관으로의 발길을 끊었을까? 갑자기 나도 궁금해졌다. '코로나' 라는 그럴싸한 이유도 있었지만 그냥 시간을 맞춰 같이 갈 사람을 찾지 못해 머뭇거리다가 상영기간이 끝나기도했고, 현생에 치여살다보니 나도 구태여 시간을 내서 보러갈 여유가 없었던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평소에는 영화를 보고 딱히 평을 하거나 생각을 적지는 않는데 이번에 관람한 영화는 이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꼭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글은 영화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영화 평론은 아니다. 그저 내 감정과 생각을 기록하는데에 집중하고자 한다.
우리가 안되는 이유는 백만가지이지만
일부러 줄거리도 찾아보지 않고 궁금증을 안고 관람하러 갔다. 가끔은 영화 줄거리나 정보를 미리 찾아보지 않고 가곤한다.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보며 만나는 예기치 못한 감동과 반전을 좋아한다. 라라랜드가 그랬고 엘리멘탈도 어떠한 기대를 하지 않고 가서 더 좋았던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 출연진 명단이 스크린을 타고 올라가는데,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불, 물, 공기, 흙 원소라는 흥미로운 세계관에 귀엽고 아름다운 건 다 모아둔 것 같은 영상미까지 더해진 올해 본 영화 중에 가장 감동적이었던 애니매이션 '엘리멘탈'.
서로를 배척해야하는 세상 속에서도 오색빛깔 불꽃과 물보라로 서로가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무지개를 선물하는 앰버, 웨이드. 세상의 편견을 깨고 벽을 극복하는 러브스토리나 뻔한 클리셰는 내 가슴을 울리지 않는 편인데, 나는 그래서 라라랜드의 현실적인 결말을 좋아했던건데, 나에게 엘리멘탈은 왜인지 모르게 exceptional한 영화가 되었다. 누군가는 다소 뻔해서 재미없었다는데 나는 이 영화만큼은 뻔해서 좋았다.
'우리가 안되는 이유는 백만가지이지만 난 그래도 널 사랑해' 파워T인 나에게는 너무나도 현실성 없는 대사로 들리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고 해야하나,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달라서 안될 이유가 백만가지지만 그래도 서로를 만났기에 기꺼이 스스로가 증발해버려도, 불씨를 잃어도 괜찮다는 판타지같은 로맨스. 10가지 중에 1가지만 안맞아도 어긋나는 요즘 현실과 너무 달라서 울리는 감동이 있었다. 어쩌면 요즘이야말로 난 이런것들에 목말라 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네 빛이 일렁일 때가 정말 좋더라
수증기로 사라지기 전 웨이드의 마지막 인사 '네 빛이 일렁일 때가 정말 좋더라.'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기꺼이 손을 맞잡아 수증기와 연기로 피어오르는 순간들이 너무 낭만적이었다. 화 많은 여자와 눈물 많은 남자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감정표현에 서툴고 많은 책임감을 이고 사는 앰버는 K-장녀를 떠오르게 해 나도 모르게 많이 이입해서 본 것 같다. 앞 서 앰버와 웨이드의 사랑이 현실성이 전혀 없다고 썼지만 또 의외로 엘리멘탈은 한국계 이민자 2세인 피터손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영화이다. 이민 1세대와 2세대 사이의 갈등, 반드시 불과 결혼하라고 유언을 남긴 할머니, 실제 이민자의 정체성으로 한국인이 아닌 문화권의 사람과 결혼한 감독이 그린 물과 불의 사랑 이야기는 또 분명하게도 현실을 반영한 작품이라 매력적이다.
I wouldn't mind if you steal the show
마지막으로 1년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게 만든 엘리멘탈의 주제곡 'Steal The Show' 의 가사를 공유하고 싶다. 멜로디도 좋지만 가사가 너무 좋아서 계속 듣게 되는 ost. 찾아보니 라우브가 작사, 작곡에 모두 참여했다. 중요한 팩터는 아니지만 이 작은 디테일이 노래를 더 완벽하게 만든다. 'I wouldn't mind if you steal the show' 라는 아름다운 가사는 특히나 요즘 같은 시대에는 정말 찾기 어려울것 같은, 이 영화처럼 판타지 같은 사랑을 말하기에, 아닌척하지만 가슴 깊숙히 로맨스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 관객들로 하여금 울컥함을 안겨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