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글로벌 비즈니스를 배우다. (중국의 사내문화)
중국어를 못하는데
중국에서 일한다고?
모든 선택에는 책임과 노력이 따른다. 중국어도 영어도 완벽하지 않았던 내가 글로벌 기업, 그 안에서도 International Business Unit(국제사업부)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사실 어찌보면 정말 황당한 이야기다. 때문에 담당업무에 충실함은 기본. 나는 언어적 장벽을 뛰어넘어 소통하기 위해 우선 가장 먼저 출근하는 동료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早!" 중국어로 아침, 즉 영어로 하면 Moring!이라는 아침인사이다. 내성적인 편임에도 일찍 출근하면 하나 둘 도착하는 동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일명 '스몰토크(small talk)'로 라포르를 형성하려고 노력했다. 그때는 '라포르' 전략이 뭔지도 잘 몰랐던 시절인데 그냥 그렇게 해야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 같다. 속이 부담스러워 아침은 물론 오전에는 간식도 잘 안 먹는 나인데 상하이에서는 일부러 매일 사내식당에 가 동료들과 아침을 먹었다.(중국은 아침을 집이 아닌 밖에서 사 먹는 것이 문화이다.) 나의 부족한 언어는 분명 상대방의 '배려'가 필요한 상태였으므로 동료들에게 미리 친근감을 심어두면 분명 업무상황에서도 조금 더 너그러운 기준으로 바라봐주었기 때문에 훨씬 수월한 소통이 가능했다.
내가 소속되어 있었던 IBU(International Business Unit)은 말 그대로 국제사업부이기 때문에 한국팀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온갖 문화권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부서였다. 그래서 이런 나의 상태가 조금 더 익스큐즈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각자 담당하는 국가 혹은 문화권의 사업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일한다고 보기는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IBU는 One Team임을 많이 강조하고 나름 회사 차원에서 구성원들이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굉장히 동기부여를 많이 해주었던 것 같다.
상하이의
글로벌 기업 문화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부서에서는 어떻게 소통할까?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그렇듯 세계 공통어인 '영어'로 일한다. 나는 분명 중국 회사에 취업했지만, 중국인 직원과 상사들도 모두 영어로 우리와 소통했고 회사차원에서도 영어교육을 적극 지원하고 영어시험 비용을 회사에서 지불해주는 등 어학공부를 하도록 장려했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씨트립은 '외국인 직원'이라는 핸디캡을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분위기였다.
나는 근무기간 동안 참여할 수 있는 모든 사내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했었는데 특히 회사에서 매주 운영했던 영어수업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HR부서 소속이었던 뉴질랜드 출신 '닉'이 운영했던 영어수업은 IBU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서의 사람들을 만나고 친해질 수 있는 유쾌한 시간이었다.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미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는 중국인 직원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유학 경험이 있거나 중국의 명문대를 졸업한 친구들이어서 놀랐다. 이 수업은 영어시험 따위를 위한 거창한 '공부'를 하는 시간은 아니었고 그날 주제에 맞는 자신의 경험을 영어로 이야기하거나 게임을 하는 등 지루하지 않게 영어를 사용하고 배우는 시간이어서 나는 이 액티비티가 회사생활의 낙 중 하나였다. 이 수업에서 알게 되어 친해진 타 부서 친구는 추후에 남자친구를 따라 퇴사 후 베이징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는데 덕분에 나는 그 해 여름 베이징 여행 가이드가 생겨 정말 편하게 베이징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돌아오기도 하였다.
또 워낙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니 이를 활용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행사가 많이 이루어졌다. 운동회 같은 사내 이벤트 때는 인사팀에서 직접 한복을 준비해주어(북한느낌나는 매우 촌스러운 한복이긴했지만..ㅜㅜ) 한국팀 마스코트로 활동하기도 했고, 서로의 이야기를 쉐어하고 발표하는 시간도 많아서 이런 일련의 글로벌 프렌들리한 업무환경은 한국에서만 나고 자랐던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나 역시 한국문화와 한복을 소개하는 기사를 사내 잡지에 기고하기도 했고, 한국시장과 트렌드에 대해 자료를 만들어 발표를 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살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한국인에게 굉장히 우호적인 편이다. 한국의 문화에 관심이 많고 특히나 여자들이라면 한국식 패션과 메이크업을 무조건 따라 하고 다녔다. 이러한 사내 문화와 동료들 덕분에 나는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놀라울 만큼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었고, 이때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도전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구나' 하는 인생의 교훈과 더불어 자신감까지 얻었다. 때문에 2017년부터 지금까지 쭉 외국계 회사에서만 커리어를 쌓아온 나에게 "외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해야만 외국계회사 취업 혹은 해외취업을 할 수 있나요?" 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NO. 영어 혹은 그 나라 언어를 완벽히 구사해야만 글로벌회사 혹은 외국계회사에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자. 언어를 잘한다는 건 분명 큰 메리트지만, 회사가 외국인 직원을 채용할 때는 분명 이유가 있다. 회사가 기대하는 역량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한다면 언어능력은 공부하면서 일하면서도 충분히 향상시킬 수 있고, 내가 그러했듯 상대가 나를 받아 들일 수 있도록 진심을 전달하려 노력한다면 충분히 문제 없이 소통해 나갈 수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나는 해외취업에 있어서 만큼은 이러한 '태도'가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