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의 비대칭 - 나만 더 끌려가는 관계들
머릿속이 복잡하다.
스트레스로 가득하다.
모든 사람이 내 마음 같지 않다.
거의 반세기를 살아왔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여전히 어렵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서로 부딪히고, 엮이며 살아야 한다지만-
그 관계 속에서 나는 자주 지치고, 상처받고, 혼란스러워진다.
오늘만큼은 문학적인 표현도, 돌려 말함도 없이 그냥 솔직히 이야기해보고 싶다.
요즘 사회적 동물로서 받은 스트레스가 조금은 벅차기 때문이다.
나는 약속 장소에 언제나 10분쯤 일찍 도착한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기본적인 예의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 10분은 나에게 여유이자, 상대방에게 보내는 작은 배려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당연한 행동이 '유난 떠는 일'이 되어버렸다.
배려가 사라진 자리에는 각자 바쁘고, 각자 피곤한 사람들만 남았다.
나는 함께 일할 때 항상 '내가 조금이라도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움직인다.
힘든 일을 먼저 맡고, 책임을 나누려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마음이 [오지랖]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손해를 감수하며 사는 게 바보 같은 걸까?
아니면, 사람들은 손해 보기 싫어서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걸까?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를 적으로 여기고, 뒤에서는 세상 대인배인 척 SNS에 철학자 코스프레를 하며 멋들어진 문구를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대략 난감하고 씁쓸하다.
요즘 들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의 위험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그저 친밀한 마음으로 다가갔을 뿐인데, 그 마음이 왜곡되고, 오해되고, 때로는 내 진심을 닫게 만든다.
나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유독 사람을 상대하는 일들을 오래 했기도 해 왔고 오랜 시간 사람 속에서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모르겠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은, 내 마음 같지 않다. 아니면 내 마음이 그들 같지 않은 오류인 건가.
너무 상대를 이해하려다 보니 정작 내가 피폐해졌다.
이제는 조금 내려놓으려 한다.
조금 덜 이해하고, 덜 참으려 한다.
내가 먼저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동안 내가 배운, 아주 작지만 구체적인 마음의 기술들이다.
주변에서 눈치 없고 민폐 끼친다는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당신이라면 새겨들으라.
누군가에게 하나를 받았다면, 둘도, 셋도 더도 말고 똑같이 하나를 돌려줘라.
누군가가 "여기 앉으시죠."라는 배려를 받는다면 "아니요, 그쪽이 앉으시죠."라고 다시 권유해 보라.
누군가 당신에게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한 험담을 전달해 줄 때, "그 사람이? 정말? 아 열받네."가 아니라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라고 답해보라.
본인이 업무적으로 능률이 떨어진다고 느끼거나 잦은 민폐를 파트너에게 끼치고 있다면 너무 당당한 척 모르는 척하지 말고 "내가 미안합니다."라고 한마디만 건네어보라.
그 한마디가 관계를 살릴 때가 있다.
이건 거창한 지혜가 아니라, 단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정말, 내 마음 같지 않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이 참 잔인하면서도, 반대로 얼마든지 한없이 따뜻해질 수 있다. 동물이라도 같은 동물이 아닌 [만물의 영장]이 아니던가.
오늘도 마음이 복잡한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조금만 더 서로에게 부드럽게 다가가자.
당신의 무심한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무너뜨릴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오늘 하루, 사회적 동물로서의 삶에 지친 우리 모두가 조금은 덜 피로했으면 좋겠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을 믿고 살아보자.
그것이 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이유일지도 모른다.
혼자 무인도에서 살 거 아니면 또 딱히 별다른 방법도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