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감성팔이

나를 찾아 홀로 떠나는 여행? = 낭만 있다! X 외롭다! O

by GOLDRAGON

내가 생각해도 웃겼다.

어째 좀 그럴듯한 테마 없을까?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피식 웃음이 났다. 솔직해지자면, 그건 그저 고독하고 조금은 청승맞은, 그리고 꽤나 외로운 여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작고 소소한 행복 하나쯤은 건져 올린 소확행이었다.

추억이란 그런 것이다.
굳이 타임머신을 타지 않아도, 어떤 장소에 발을 들이는 순간 스며들듯 되살아나는 것. 애써 붙잡으려 하지 않아도, 어느새 나를 그 시절 한가운데로 데려다 놓는 것.


지금껏 하던 일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기까지의 며칠.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떠올랐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

오랜 버킷리스트 중 하나, 혼자 떠나는 여행.

누군가 반겨주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지방 도시에도 연락할 친척 하나 없는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마음이 향한 곳은 분명했다.

전주.

아주 어릴 적, 아버지 회사의 발령으로 잠시 머물렀던 곳.
기억은 희미해야 할 텐데, 그곳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또렷했다.

낡은 상가 위에 있던 집,
저녁을 먹고 나면 잠옷 차림으로 뛰어나와 떠들던 대로변 길가,
조금만 걸으면 옆쪽으로 위치하던 재래시장과 커다란 버드나무,
그 나무 아래의 작은 구멍가게.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그곳은, 내가 알던 풍경이 아니었다.
시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완전히 새로워져 있었고, 골목의 공기도, 거리의 결도 달라져 있었다.
다행히도 내가 살던 집은 어느 정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당연히 예상했다. 그런데도 몇 번이고 같은 길을 걸었다.
시장을 몇 바퀴나 돌고, 골목을 서성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억 속 장면이 겹쳐지기를 바라면서.

저녁은 지역의 유명한 식당이 아닌, 일부러 그 동네의 허름한 식당에 들어갔다.
추억은 그런 곳에서 더 잘 떠오를 것 같았다.

혼자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이상하게도 그 시절 친구들이 하나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모두 어른이 된 모습으로.

잠깐이었지만, 분명히 그곳에 함께 있는듯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취기가 어느 정도 오른 나는 어린 시절의 밤을 떠올리며 그 길을 다시금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 가만히 혼잣말을 했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둘걸."

오래도록 따뜻하게 품어왔던 기억이, 어딘가에서 살짝 금이 간 것 같았다.

그날은 그렇게 잠들었다.


다음 날, 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커피숍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봄비라고 하기엔 제법 굵은 빗줄기가 거리를 적시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제의 실망보다 오늘의 감정이 더 선명해진다.
기억과 다르다는 사실보다, 그곳에 다시 와 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누군가는 이미 사라진 동네를 그리워할 것이고,
누군가는 추억의 장소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이유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다시 와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축복받은 사람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어릴 적의 나에게도, 지금 이곳에 서 있는 나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싶어졌다.

이번 여행은 특별히 설레지도, 들뜨지도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의미는 남았다.

나는 과거를 확인했고, 현재를 받아들였고,
조금은 앞으로를 생각하게 되었다.

언제 일지 모르지만 다시, 또 다른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는 그래왔듯이 그저 또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겠지.

먼 훗날, 다시 꺼내어도 괜찮을 추억들을 만들면서.


아마도,
그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