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돈 거리지 마.

돈은 우리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도구일 뿐

by 오디


안 그럴게. 네가 좀 줘.


"돈, 돈 거리지 마."라는 말은 돈을 아끼고, 모으고 마치 그것이 전부인 양 사는 모습을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주로 어르신) 입에서 쉽게 튀어나오곤 한다. 오늘 쓰는 글의 주제가 돈이고 관련한 내 생각을 풀어낼 계획인데, 다소 무거운 느낌으로 쓰일 것 같다. 그리고 글을 다 읽고 난 여러분이 잠깐이라도 현실을 마주할 기회가 생겼다면, 그것만으로 글의 소명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돈은 곧 선택권이고 삶이다. 돈이 선택권이라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만 원과 5만 원을 가진 사람이 같은 식사를 골랐다면, 전자는 강제된 선택일 가능성이, 후자는 자발적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같은 행위에서 다른 결과가 나타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하며 느끼는 만족감, 성취감 등의 감정은 수치화할 수 없으며, 그 효용은 되먹임 되어 더 큰 부를 축적하도록 돕는다. 부를 축적하기로 정한, 그것이 취향에 맞는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결정할 권리를 손에 쥐게 되는 셈이다. 특별한 외압이나 가치관의 변화가 없다면 이 행복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반대로 돈이 없다면 삶은 틀에 갇히게 된다.(적어도 내가 살고있는 이 사회에서 만큼은) 미루는 것, 참는 것에 강제성이 부여가 된다. 강제성은 악순환을 초래하여 불행, 초조, 긴장을 낳고 타인과 사회에 대한 분노로 변모한다. 아니, 그렇게 변모하기 쉬워진다가 맞는 표현이겠다. 강제된 선택이 초래한 감정 역시 수치화할 수 없다. 앞서 양의 효용을 살펴봤다면, 이 강제성은 음의 효용을 불러온다. 부정적인 영향도 되먹임 되어 삶을 더 깊은 나락으로 몰아넣으며, 끝을 알 수 없는 지하실 밑바닥으로 이끄는 촉매가 된다.

img.png 마 뜨굽나! 모르제?


무서운 점은, 이런 양의 효용과 음의 효용 모두 당장 체감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선택의 결과가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것처럼, 강제된 선택의 부정적 영향 또한 서서히 드러난다. 이러한 지연 효과는 우리를 무방비 상태로 만든다. 내가 밑바닥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이 또 다른 나락의 시작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 테니 내 말이 틀렸다고 하는 독자가 있더라도 난 이해할 수 있다. 이 글이 내 사견만 가득해 보일 수 있지만, 모두 데이터로 증명이 되었다. 사회는 이미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강제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자들의 결말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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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png 경제력 상실이 삶을 포기하게 만든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지켜보며 나는 고려장이 생각났다. 내가 고려장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21세기형 고려장이 성행하게 되진 않을지 우려를 품고 있을 뿐이다. 고려장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명확하게 입증되진 않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집단 생존을 위한 비극적 풍습으로 묘사된다. 농경 사회에서는 노동력이 생존의 핵심 자원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생산적인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노년층은 그들이 자의든 타의든 버려지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산을 축적하지 못한 노년층은 가정의 경제활동에 기여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결말은? 한국은 물질적 풍요를 가족보다 더 높은 우선순위에 두는 유일한 국가다. 이것이 나에게 불길한 영감을 준다. 이후의 상상은 독자들에게 맡기겠다. 내가 상상한 것들은 너무나 잔인하기 때문이다.

img.png 한국 : 1순위 - 물질적 풍요
무병장수를 대비해야하다니...


반대로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자본력이 풍부한 경우에 대해서도 고민해 봤다. 기술의 진보, 의술의 발달에 관심이 있다면 얼리어답터가 되는 것은 큰 장벽이 아니다. 기술은 상용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고가에 제공되고, 감당할 재력이 된다면 세상에 등장한 가장 새로운 기술을 가장 빨리 경험할 수 있다. 우주 관광이나 심해 탐사 등 심미적인 활동들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인간 수명의 연장이다.

어쩌면 인간은 자신의 수명을 정할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들이 하나둘 현실이 되고 있다. 3D 프린팅 기술은 장기를 복제하고 이식하는 데 사용되고, 줄기세포 기술은 난치병과 퇴행성 질환을 정복하는 데 활용된다. 희귀 질환을 극복하기 위한 정밀 의료도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 모든 기술은 인간의 병든 몸을 치유하고, 이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선택지를 제시한다. 이것은 희망이기도, 절망이기도 하다. 최신 과학기술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고가의 대가를 요구한다.

img.png 영화 인타임 中


문제는 바로 그 "고가"에 있다.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조차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영화 인타임을 떠올려 보았다. 그 세계에서는 시간이 곧 화폐다. 물건과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선 남은 생을 지불해야 하고,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노동해야 한다. 시간을 쌓아둔 소수의 부자들은 원하는 대로 물가를 조작하고, 빈민가의 사람들의 생명을 손쉽게 앗아간다. 이 SF적인 설정은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시간을 돈으로 바꾸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 부를 독점한 소수가 계층 이동을 막으려 애쓰는 구조. 생명을 결정짓는 불평등의 잔혹함이 이렇게나 무섭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이미 자리 잡은 거대한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가 당장 해야하는 일은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불평과 불만, 투정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대신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현실 직시와 개선점을 찾아서 더 나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한때 YOLO(You Only Live Once) 문화가 유행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나는 이것에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현재를 즐기며 살아라'는 내용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지만... 현재만 즐기는 것에서 문제를 찾을 수 있다. 이번 달 월급은 다음 달을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는 같은 자원을 공유한다. 오늘 내가 소비한 만큼, 내일의 나는 그만큼 부족함을 감당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만’ 즐기는 행위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게 된다.

보통의 경우, 현재의 나보다 미래의 내가 더 많은 재화를 필요로 한다. 물가 상승과 부양가족의 증가, 아는 것이 많아짐에 따른 소비패턴의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의 조화, 균형에 대한 고민은 필수적이다.

국민연금을 납부하고 있으면서도 개인연금을 준비하는 사람
통장에 돈을 쌓아놓는 것을 넘어 예적금과 투자를 고민하는 사람
...
소비 욕구를 참고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가는 사람

돈을 아끼고 모으는 사람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돈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고, 자신과 가족을 위한 안정감을 쌓으며, 선택권을 지키려 애쓰는 중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과해 보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돈 돈 거리지 마라"며 냉소적인 시선을 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이 당신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함부로 폄하하거나 비웃지 않았으면 한다. 돈에 대한 태도는 결국 개인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의 표현이다. 우리가 돈을 대하는 방식 대부분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img.png 조용히 해봐. 내 인생은 나름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고.


도자기 공예를 떠올려 보자. 흙을 빚는 과정에서 그것이 무엇이 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덩어리로 뭉쳐진 상태에서는 그것이 잔이 될지, 항아리가 될지, 혹은 전혀 다른 것이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흙을 빚는 사람에게 가타부타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묵묵히 과정을 지켜보거나 완성된 결과를 기대하며 응원할 뿐이다.

닿지 않을 것 같이 멀리있는 인생까지도 설계하며 치열함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마음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그들이 설계하고 빚어가는 삶의 결과물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그들 나름의 진심과 노력이 담긴 여정이라는 점이다. 곁에서 지켜봐 주고, 가능하다면 응원해 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본인이 돈 돈 거리지 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것에 집중하고 계신 분들은 절대로 잊지 않았으면 좋겠는 한 가지가 있다.

돈은 우리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도구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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