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있는 곳이 내 진짜 집인가
이번 주말 벚꽃 명소인 카이스트에 놀러 온다는 걸 핑계 삼아 엄마랑 외할머니가 내 자취방에 놀러 왔다. 이전에 살던 원룸이었으면 상상 못 할 일이지만, 이번에 1.5룸으로 옮기면서 거실도 있고, 퀸사이즈가 들어가는 침실로 집이 넓어지면서 두 모녀를 내 작은 집에 초대할 수 있게 되었다.
친할머니는 이전에 내가 기숙사에 살 때 학교에 놀러 와보신 적이 있지만, 외할머니는 내가 학교를 5년 다니는 동안 한 번도 와보신 적이 없었다. 그래서 손녀 학교 구경 겸, 혼자 생활을 잘하는지 점검 나오신 거였다.
역시 딸 챙기는 건 친정인가, 엄마랑 외할머니는 대구에서 대전에 오면서 오기 전 한주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했다. 최근에 위장이 크게 탈이 난 내가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할까 걱정하며 밥을 두 솥 해서 렌틸콩 밥을 전자레인지용 용기에 한 번먹을 만큼 소분해서 가지고 왔다. 외할머니는 곰탕을 끓였고, 또 내가 지난번 가서 맛있다고 한 황탯국까지 끓였다. 엄마가 먹고 싶은 반찬이 없냐고 물을 때 흘리듯이 예전에 미역줄기 볶음은 한 번 먹고 싶어서 사 먹었지, 쥐포 볶음은 안 먹느냐는 질문에 있으면 주워 먹지라고 대답을 했더니 미역줄기 볶음, 쥐포 볶음도 다 해왔다.
토요일 점심쯤 대전에 도착한 엄마는 내 방 청소부터 했다. 더 부지런하지 못해서 엄마를 고생시키는 나라 내가 좀 미워지기도 했지만 내심 나도 엄마가 와서 해줄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더 오전에 내 볼 일을 봤는지 모른다. 딸은 참 못됐다. 자기 할 건 다 하면서 엄마한테는 괜히 야박해진다.
대전 시장에 가서 세 모녀는 국수 한 그릇을 먹고, 시장 음식을 다 포장해 왔다. 그러고 학교에 들러 학교 구경, 사람 구경, 벚꽃구경을 마치고 휘발유값이 싼 주유소를 찾아 내 차에 엄마카드로 기름을 넣었다. 그러고 내 집으로 돌아와 포장해 온 시장음식을 저녁으로 먹고 저녁에는 엄마랑 둘이 근처 공원에 걸으러 나갔다. 대구 본가에 있을 때는 엄마와 저녁에 산책하기가 일과였는데 대전에서는 퇴근하고 집에서 나가본 기억이 크게 없었다. 나는 대구에서는 생활을 하고 있었고 대전에서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와 산책을 하니 갑자기 대전이 내 주거지역으로 바뀐 느낌을 받았다.
점심으로는 엄마가 알아본 갈마동에 있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양식집에 갔다. 나는 거기서 뇨끼를 비빔밥 먹듯 먹는 엄마에게 눈치를 주고 잡아먹을 듯한 눈빛을 보내는 딸이었다. 좀 너그러운 딸이 되고 싶다고 스스로 생각해 보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라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엄마와 외할머니는 내가 피곤하다며 일요일 점심까지만 먹고 먹고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후다닥 떠났다. 슬픈 일도 아니고 좋고 감사한 일이지만 그 두 사람을 생각하면 왜 자꾸 눈물이 날까. 할머니가 엄마에게 내가 안쓰럽다고 했다고 한다. 혼자 지내는 것도 그렇고, 집이 작은 것도 그렇고, 예전에는 에너지가 넘쳐 팔랑팔랑 뛰어다니던 손녀딸이, 일도 많고, 몸도 안 좋고, 기력이 없어진 상황을 보니까 마음이 안 좋으셨는지 돈을 20만 원 보내셨다. 돈이 없는 게 아닌데... 마음이 나도 좀 허해져서 요즘 몸과 마음이 좀 안 좋았던 것 같다.
본가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고충이 있겠지만 이럴 때는 타지에 사는 외로움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그들은 나를 아끼는 마음을 음식으로 남겨놓고 갔다.
내일 연구실에 엄마랑 외할머니가 해준 국이랑 반찬으로 도시락을 싸갈 생각을 하니까 좋다. 괜히 그 음식들이 내 냉동실에 들어있으니까 마음이 좋고, 내가 응원을 받고 있는 사람인게 실감 난다.
요즘 몸이 안 좋았어서 몸에 한기가 자꾸 와 오들오들 떨면서 수업을 듣곤 했는데, 이렇게 나는 그들의 사랑을 먹고 따뜻함을 충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