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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서우 Dec 23. 2022

2022 내 맘대로 영화 결산

연말에는 시상식이지

 2022년도 어느덧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뭐 한 게 있다고 시간이 이렇게 쏜살같이 지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올해는 그냥 연말의 분위기를 마음껏 즐겨보기로 했다. 어쨌거나 연말답게 '2022 극장가를 빛낸 올해의 영화 BEST 5' 같은 걸 멋들어지게 선정해보고 싶었으나, 그럴 만한 깜냥은 또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냥 소소 나만의 시상식을 해보았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을 기반으로 선정한 수상작들이니 부디 재미 삼아 가볍게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뭐 하다가 이제 왔어, 올해의 지각상 <우연과 상상>


친구의 새로운 연애 상대 이야기를 듣게 된 메이코. 수상한 꿍꿍이를 지닌 채 대학 교수에게 접근하는 나오. 20년 만에 옛 동창과 재회한 나츠코. 우연과 상상이 만들어내는 인생의 기묘한 순간들.


 타국에서 이미 개봉한 영화가 국내에서 정식 개봉되기까지 다소간의 시간이 소요되는 사례는 생각보다 드물지 않은 편이다. 올해의 경우 <탑건: 매버릭>,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 해외에서 무수한 호평을 받은 작품들의 국내 개봉이 미루어지며 수많은 영화 팬들의 애간장을 태운 바 있으나, 개인적으로 올해 가장 간절히 개봉을 기다렸던 작품을 하나 고른다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우연과 상상>을 택하고 싶다. 아마 작년 연말에 관람했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다른 작품, <드라이브 마이 카>의 여운이 올해까지도 아주 깊고 짙은 형태로 남아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2021년에 처음 공개된 <우연과 상상>은 결국 해를 넘겨 올해 5월에서야 한국의 영화 팬들을 찾게 되었지만, 오랜 기다림을 잊게 할 정도로 모두를 만족시키며 그간의 아쉬움을 훌륭히 달래주었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 올해의 속편상 <탑건: 매버릭>


전설적인 파일럿 매버릭은 자신이 졸업한 훈련학교의 교관으로 발탁된다. 압도적인 조종 실력과 특유의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교육생들과 견고한 팀워크를 쌓아가기 시작하는 매버릭. 이내 교육생들과 함께 국경을 뛰어넘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상황에 마주한다.


 <범죄도시 2>, <한산: 용의 출현>, <공조 2: 인터내셔날>, 그리고 최근 개봉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아바타: 물의 길>까지. 올해 대한민국 극장가는 가히 속편의 전성시대였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중에서도 전편 이후 무려 36년 만에 우리의 곁으로 멋지게 돌아온 <탑건: 매버릭>은 단연 올해를 빛낸 최고의 속편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해 마땅한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수많은 오마주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전편에 대한 향수를 끊임없이 불러일으킨 것은 물론, 스크린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화려한 항공 액션을 선사함으로써 수많은 '탑친자'들을 양산하며 n회차 관람 문화를 선도하기도 했다. 영화계 전체를 통틀어보아도 이 정도로 모범적인 속편의 사례는 결코 흔치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분명 몇 년이 지나도 다시 찾게 될 거야, 올해의 인생영화상 <헤어질 결심>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담당 형사 해준은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망자의 아내 서래와 마주하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점점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매년 수많은 영화를 마주하지만 몇 해가 지나도록 꾸준히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영화는 그렇게 많지 않다. 어지간히 강렬한 인상을 남기거나 벅찬 감동을 선사하지 않는 이상 한 영화의 여운이 몇 년 동안이나 지속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꼭 보관해 두었다가 몇 해가 지나더라도 두고두고 꺼내 보고 싶은 영화들이 이따금 우리의 곁으로 찾아올 때가 있다. 올해 필자에게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딱 그런 영화였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처음 개봉한 지도 어느덧 반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건만 필자는 아직도 <헤어질 결심>과 헤어질 결심을 하지 못했다. 왜냐고? 극중 등장하는 '해준'의 대사를 잠시 빌려오자면, 긴장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똑바른 영화는 정말 드물거든.


나에게 한 번만 기회를 줄래? 올해의 과소평가상 <외계+인 1부>


1391년, 소문 속의 신검을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고려의 도사들. 2022년, 인간의 몸 속에 수감된 외계인 죄수들을 관리하기 위해 지구에 파견된 이들. 혼돈의 두 시대를 연결하는 시간의 문이 열리자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외계+인 1부>는 모름지기 2022년 한국 영화계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였다. <타짜>, <도둑들>, <암살> 등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통해 이미 대한민국의 흥행 보증 수표로 자리잡은 최동훈 감독의 신작이라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류준열, 김우빈, 김태리 등으로 구성된 화려한 캐스팅 목록 역시 영화 팬들의 기대를 한껏 드높여놓았기 때문이다. 국내 영화계에서는 아직 익숙지 않은 SF, 판타지 장르의 영화라는 점에서 일부 우려의 시선이 존재하기도 했으나, 과거 <전우치>를 통해 한국형 판타지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최동훈 감독의 작품인 만큼 그러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할 것이라는 시선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 팬들의 높은 기대는 영화의 개봉과 함께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외계+인 1부>는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난잡한 구성과 다소 오글거리는 유치한 대사 등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요소들이 산재해 있는 영화였고, 결국 수많은 혹평 세례를 피하지 못하며 최동훈 감독 최초의 흥행 실패작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가져가버린 것이다. 하지만 감독이나 배우의 네임 밸류와 같은 영화 외부적 기대치에서 벗어나, 완성도 있는 CG와 액션,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에 집중하여 이 영화를 감상해본다면, <외계+인 1부>는 의외로 그렇게 나쁜 작품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무리수 혹은 실패한 시도 정도로 취급하기에는 오락 영화로서 <외계+인 1부>가 선사하는 장르적 쾌감은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2부가 아직 남아있잖아. 이야기를 마무리할 기회 정도는 줘도 괜찮지 않을까?


정말 좋은데 추천하기는 뭔가 조심스럽네, 올해의 힙스터상 <본즈 앤 올>


열여덟 살이 된 매런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를 찾아 머나먼 여행길에 오른다. 매런은 여정 중 우연히 자신과 같은 식성을 가진 소년 리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 사이에는 특별한 감정이 피어나기 시작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타인에게 선뜻 추천하기는 조금 망설여지는 영화들이 간혹 있다. 지나치게 잔인하거나, 외설적이거나, 반인륜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거나 하는 등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이 영화를 추천한다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지는 않을까?', '괜스레 비주류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힙스터처럼 보이지는 않을까?'라는 소심한 생각들이 영화에 대한 추천을 끊임없이 망설이게 만드는 것이다. 올해 필자에게는 식인을 소재로 하는 로맨스 영화 <본즈 앤 올>이 정확히 그런 작품이었다. 특유의 고어한 연출과 보는 사람에 따라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성 때문에 주변인들에게 선뜻 권하지는 못했지만, 이 자리를 빌려 <본즈 앤 올>은 2022년을 빛낸 소중한 영화 중 한 편으로 필자의 마음속에 고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조심스레 이야기하고 싶다.


자고로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거랬어, 올해의 호객상 <아바타: 물의 길>


판도라 행성에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단란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제이크와 네이티리. 이윽고 무자비한 인류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머나먼 여정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마주한다.


 코로나19의 대대적인 유행, 지속적인 영화 관람료 인상, OTT 시장의 거대한 성장은 극장을 찾던 관객들로 하여금 하나의 공통된 의문을 떠올리도록 만들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영화를 보기 위해 굳이 극장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일각에서는 이제 극장 산업이 완전한 사양길에 접어들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적어도 현시점에서 영화관이라는 장소가 가지는 위상은 여전히 건재한 것처럼 보인다. 커다란 스크린만이 선사할 수 있는 고도의 몰입감을 무기 삼은 일부 영화들이 관객들을 꾸준히 극장에 불러들임으로써 영화관 산업에 지속적인 활기를 불어넣어준 덕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전편 이후 무려 13년 만에 더욱 발전된 그래픽으로 돌아와 관객들에게 믿을 수 없는 비주얼 쇼크를 선사한 <아바타: 물의 길>은 올해 개봉작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호객꾼 역할을 수행해낸 작품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시원시원한 액션을 바탕으로 코로나19 유행 이후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범죄도시 2>, n회차 관람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이례적인 수준의 개싸라기 흥행을 만들어낸 <탑건: 매버릭> 등이 호객상의 아성에 도전하였으나(?), 수상의 영예는 결국 <아바타: 물의 길>에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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