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서우 Nov 26. 2022

(대충 호기심 유발하는 제목)

이게 최선이었어

 때로는 좋은 글을 쓰는 것보다도 좋은 제목을 짓는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자고로 좋은 제목이라 함은 글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아내면서도 사람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하는 법인데,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해내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이렇다 할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사실은 당장 이 글의 제목도 어떤 식으로 지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오고 있는 상황인데, 후에 여러분이 이 글의 제목을 보게 된다면 필자가 정말 각고의 고민을 펼친 끝에 짓게 된 제목이라는 사실을 부디 알아주었으면 한다.


 비단 글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창작물들에게 있어 제목이 지니는 중요성은 두 말하면 입 아픈 수준이다. 제목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흥미로운 첫인상을 남기지 못하는 창작물들은 대개 쉽게 소비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제목에서부터 흥미를 유발하는 창작물의 경우 시작부터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소리인데, 그래서인지 굉장히 눈에 띄는 형태의 제목을 지니고 있는 창작물의 수 역시 결코 적지 않은 편이다. 쓸데없는 서두가 길었는데, 그래서 결국 오늘은 재미있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영화 몇 편 가지고 와봤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질문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조인성을 좋아하세요.>


영화 감독 가영은 자신의 영화에 배우 조인성을 캐스팅하고 싶다. 아직 시나리오조차 써 두지 않은 가영이지만, 그런 그녀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다.


 언뜻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라는 의문문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이 영화의 영제는 <Love Jo. Right Now.>이다.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라고 질문하는 게 아니라,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라고 우리에게 단호하게 명령하는 제목이라는 이야기다. 제목과 줄거리만으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겠지만,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는 해당 영화의 연출과 주연을 동시에 맡고 있는 정가영 감독이 조인성 배우를 향한 팬심을 가감없이 드러낸 단편이다. 정가영 감독의 유튜브 채널에도 해당 단편이 업로드되어 있으니, '가영'이 정말로 조인성을 캐스팅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면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해보도록 하자.


 <존 말코비치 되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등 제목에서부터 극중 핵심 인물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는 영화들은 의외로 적지 않은 편이다. 일단 제목에 고유명사가 포함된 시점에서 소비자들은 해당 제목에 친숙함 혹은 낯섦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이는 그대로 작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렇잖아. 한국인이라면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을 어떻게 그냥 지나치겠어.


고어 영화 아니니까 안심하고 보셔도 됩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언제나 외톨이로 지내던 '나'는 학교 최고의 인기인으로 군림하고 있는 사쿠라의 비밀 일기장을 우연히 줍게 된다. 우연찮은 계기로 비밀을 공유하게 된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제목만 봐서는 섬뜩하기 그지없는 영화지만, 다행히도 여러분이 기대하는(?) 잔인한 장면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니 부디 안심하길 바란다. 영화 속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아픈 부위와 똑같은 동물의 부위를 먹으면 병이 낫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모양이다. 정말로 그런 풍습이 있었던 건지 그 진위 여부까지는 모르겠으나, 이쯤 되면 여러분도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두서없는 문장이 대체 어떤 연유로 튀어나오게 된 건지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바로 췌장암에 걸린 여자 주인공 '사쿠라'가 위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남자 주인공인 '나'에게 짓궂은 농담 삼아 내뱉은 문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따로 설명할 것도 없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톡톡 튀고 있는 제목이다. 해당 영화는 동명의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원작으로 하여 제작되었는데, 해당 소설의 작가인 스미노 요루는 일부러 눈에 띄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보다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자 했다는 이야기를 밝힌 바 있다. 이쯤에서 솔직한 감상을 밝히자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사실 필자의 취향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영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영화가 지금까지 이토록 뇌리에 깊숙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제목이 지닌 위력이라는 게 정말 대단하긴 한가 보다.


이것은 한국어인가, 영어인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수많은 멀티버스 속에서 수천, 수만 명의 자신이 제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에블린. 그들의 능력을 빌려 세상과 가족을 지켜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다.


 '모든 것, 모든 곳, 한꺼번에'. 영화의 제목을 굳이 직역해보자면 이와 같은 형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제목의 의미를 한국어로 풀이하기보다는 영어 제목의 발음을 그대로 음차하는 방식을 택했다. 비단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뿐 아니라, 번역을 진행하지 않고 원어의 발음 그대로를 한국어로 옮긴 형태의 영화 제목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편이다. '장난감 이야기'가 아닌 <토이 스토리>라든지, '달빛'이 아닌 <문라이트>라든지⋯


 확실히 제목을 곧이곧대로 번역할 경우, 원제가 지닌 매력을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담아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물론 <The Edge of Seventeen>이 국내에서 <지랄발광 17세>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것과 같이 아예 원제와는 다른 결의 새로운 제목을 붙이는 방법도 있으나, 보다 직관적인 인상을 주기 위하여 원제의 발음을 그대로 표기하는 것 또한 굉장히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재미있는 점은 처음에는 음차 방식을 택했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확장판이 최근 <양자경의 더 모든 날 모든 순간>이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다시 개봉했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관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매력적인 형태로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고민을 펼친 결과가 아닐까 짐작해볼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서운 건 싫지만 공포 영화는 보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