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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서우 Nov 10. 2022

무서운 건 싫지만 공포 영화는 보고 싶어

나만 그래?

 필자는 겁이 굉장히 많다. 늦은 밤 집에 들어올 때면, 찰나의 어둠이 무서워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전등 스위치를 향해 달려갈 정도로 말이다. 요즘은 사실 늦은 밤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저녁만 되어도 벌써 어두컴컴해진 공기를 느낄 수 있는데, 겨울이 다가올수록 해가 점점 짧아지니 이거 정말 큰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겁쟁이라고 마구 비웃어도 좋다. 무서운 건 무서운 건데 뭐 어쩌겠어.


 하지만 이렇게 겁이 많은 필자도 이따금 공포 영화 보고 싶때가 있다.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면 괜히 먼 곳을 응시하거나 고개를 휙 돌려버리기 일쑤지만, 어떻게든 공포 영화를 꾸역꾸역 보고 싶어지는 순간이 정말 가끔씩 찾아온다는 말이지. 누군가는 그게 무슨 변태적인 성향이냐고 매도할 수도 있겠지만, 왜 다들 한번쯤은 그럴 때 있잖아. 매운 건 입에도 못 대지만 불닭볶음면은 먹고 싶다든지, 비행기는 싫지만 여행은 가고 싶다든지⋯ 나만 그런 거야?


무서워 보이지만 코미디 영화입니다, <터커 & 데일 vs 이블>


외딴 숲으로 여행을 온 대학생 무리는 험악한 인상의 두 남자, 터커와 데일을 만나게 된다. 누구보다 순박하고 여린 심성의 소유자인 두 사람이었지만, 숲이 뿜어내는 으스스한 분위기 때문인지 대학생들은 터커와 데일을 연쇄살인마로 오해하고 그들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는데⋯


 <터커 & 데일 vs 이블>은 선량한 두 남자 '터커', '데일'과 그들을 연쇄살인마로 오해한 대학생 무리 사이의 해프닝을 담고 있는 호러 코미디 영화다.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중간중간 등장하는 고어한 연출이 이따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포보다는 코미디에 가까운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필자와 같은 겁쟁이들도 안심하고 관람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공포 영화라 다.


 겁쟁이로서 평가하는 <터커 & 데일 vs 이블>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뒷맛이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공포 영화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공포는 대개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랜 여운의 형태로 남아있기 마련이다. 오늘 영화에서 본 귀신이 나를 몰래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거나, 오늘 보았던 무자비한 살인마가 나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것 같다거나 하는 상상이 우리를 오래도록 괴롭히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지 않다. 그러나 <터커 & 데일 vs 이블>의 경우,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등장인물들 사이의 오해로 인한 해프닝이 영화의 주요 플롯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두려움의 상상력을 발휘할 만한 귀신도, 살인마도 애초에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아아, 이 얼마나 편안한 공포 영화란 말인가.


불 끄고 봐도 안심, <미드소마>


90년에 단 한 번,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하지 축제 '미드소마'에 참석하게 된 대니와 친구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지만, 축제가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마을을 빠져나갈 수 없다.


 어두운 환경에서 보면 괜스레 더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 방 안의 모든 불을 환하게 밝힌 후 공포 영화를 감상해본 경험.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식의 비아냥이 들려오는 것도 같지만, 사람의 심리라는 게 생각해보면 정말 단순하단 말이지. 고작 전등 하나 밝게 켜놓았다는 사실에 이토록 안도감을 느낀다는 것이 스스로도 참 신기할 때가 많다.


 다만 이러한 필자에게도 캄캄한 밤, 빛줄기 하나 없는 어둠과 함께 이불 속에 꽁꽁 숨은 채로 자신 있게 감상할 수 있는 공포 영화가 하나 있다. 바로 한낮을 배경으로 하는 공포 영화 <미드소마>의 이야기다. 외지인들이 기괴하고 컬트적인 성격의 지역 축제에 합류해 그들의 집단적인 광기를 마주한다는 거대한 시놉시스는 관객들을 공포에 떨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모든 과정이 바로 밝은 햇살 아래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람의 심리라는 게 정말 단순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단지 극중 배경이 한낮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영화에 대한 공포심은 다소 덜해지는 경향이 있다. 필자를 '나 불 끄고 공포 영화도 볼 줄 아는 사람이야!'라고 떵떵거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영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황홀한 나머지 무서운 것도 잊었습니다, <샤이닝>


겨울 동안 외딴 곳에 위치한 호텔을 관리하며 느긋하게 소설을 집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잭. 아내 웬디와 아들 대니를 데리고 '오버룩 호텔'로 향한다. 한편, 보이지 않는 영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아들 대니는 호텔에 드리워져 있는 음산한 기운을 직감하는데⋯


 우리가 수많은 공포 영화를 관람할 때, 두려운 심리에 취한 나머지 사실 영화의 만듦새와 관련해서는 제대로 된 감상을 느끼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영화를 보는 중에는 언제 어떤 장면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는 드디어 모든 게 끝났다는 안도감에 젖어 정작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나 영상미에 관해서는 그다지 짙은 인상이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예외에 해당하는 공포 영화들도 많이 있다. 영화계의 전설적인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 남긴 <샤이닝>이 그 대표적인 예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호러와 판타지 요소의 결합으로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공포를 선사한 <샤이닝>은 최초 공개된 시점으로부터 약 4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공포 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클래식으로 회자되고 있다. <샤이닝>에서 드러나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 특유의 놀라운 연출 능력과 유려한 영상미는 관객들로 하여금 공포에 젖는 것조차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사람들이 순식간에 영화 속에 완전히 몰입도록 도하는 역할을 수행다.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무서움보다는 황홀함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필자와 같은 겁쟁이들에게도 아무런 걱정 없이 관람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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