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실종법칙>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 걸까. 우리는 다양한 이유를 들며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지만, 그 호오의 근거가 얼마나 타당한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자아를 우리 자신의 눈에 투영함으로써 생겨나는 부산물에 지나치게 연연함으로써 감정에 대한 결정권을 실체 없는 낭만적 허상에 끊임없이 위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지니고 있는 의외의 면모에 괜스레 실망을 하거나,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인물이 알고 보니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해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우리의 감정, 나아가서는 그러한 감정에 기반한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편협한 주관적 판단으로부터 비롯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연극 <실종법칙>은 특정 인물을 향한 우리의 감정과 관계가 결코 객관적 인식에 기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꽤나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는 2인극이다. 실종된 여성 ‘유진’의 행방을 두고 그녀의 남자친구 ‘민우’와 언니 ‘유영’이 설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갖가지 진실들은 그들이 알던 ‘유진’이라는 인물과 실제 ‘유진’ 사이 상당한 괴리감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구조적 장치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들에게 있어 ‘유진’은 성공한 커리어우먼이자 재능 없는 예술가였으며, 헌신적인 여자친구이자 외도를 일삼는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소중한 여동생이자 오지랖 넓은 성가신 가족이었다. ‘유영’과 ‘민우’가 마주하는 진실의 편린에 따라 ‘유진’은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바꾸며 점점 정체를 알 수 없는 듯한 인물로 변모해 간다.
<실종법칙>은 이로써 우리가 정의하고 있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과, 그에 기반한 다양한 감정 및 생각들이 그저 우리의 단편적 시선에 근거한 감각적 환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법 적나라하게 전달한다. 극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유진’의 진짜 행방은 더 이상 관객들에게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유진’의 이후 행적과는 관계없이, ‘유영’과 ‘민우’의 관념상에 존재하던 ‘유진’이라는 인물은 이미 진실의 파도에 휩쓸려 영영 실종되어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극장을 나오며 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감정과 관계는 과연 얼마나 진실된 것인지 괜스레 고민해 본다. 지금까지 나의 삶에서 실종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실종될 모든 ‘유진’들에게 나의 섣부른 오판에 대한 사과를 전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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