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by 나은

등장인물


문지영

남재희

이준학


01_House OUT 지영 신호 받고 아웃

2025년 어느 봄날, 문지영 집


문지영: 내 이름은 문지영, 30살

오늘 아침에 내 입에서 나온 소리를 믿을 수 없어요.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잠꼬대가 아니었어요.

눈에서 물이 흐르고 있었으니까요.

결심했습니다. 결혼하기로.

질타는 잠시 넣어두세요.

30살에 결혼이라는 선택지 외엔 없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이 행운아라서 그런 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삶을 대충 산 건 아닙니다.

때에 맞춰 필수교육을 이수했고, 대학도 나왔으니까요.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이 80퍼센트라는 거, 알고 계신가요?

다 쓸데없이 돈낭비 하는 거죠. 있는 척하고 싶고, 남들한테 부족해 보이기 싫으니까 그냥 다 가는 거예요.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머리가 좋지도 않으면서요.

네. 제 얘기예요.

우리 엄마는 그놈의 대학 때문에 밤낮으로 일만 했어요. 아빠는.. 없어요, 그냥.

그러니 나는 빛나는 젊은 시절 분주히 푼돈 버는데 집중할 수밖에요.

하지만 더 슬픈 건, 30년간 한 번도 사랑해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도 제겐 큰 결심입니다.

사랑 없는 결혼이라도, 내 인생을 확장시켜 줄 수 있다면 강행하기로 한 거니까.

빈약한 삶. 너무나 평평해서 쌀 한알도 심을 수 없는 그런 삶에서 벗어날 겁니다.


다행히도 제게는 두 명의 남자가 있습니다.

이 나이 때는 종종 그런 우연이 생깁니다.

헬스장에서 땀냄새 때문에 반했다는 제 친구 커플을 생각하면

제게 두 명 즈음 있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죠.

오늘은 일요일, 나를 찾는 전화가 올 겁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일러두었거든요. 오늘 오전에 시간이 빈다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나는 아직 내가 누구를 원하는지 모르고 있으니까요.

나는 이제 내 인생에 온 생애를 걸기로 한 사람입니다.

결혼이라는 이 크고도 중대한 일을 그르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한 발짝 떨어져 관망하기로 했습니다.

운명이 어떻게 개입하는지 두고 보자는 전략이죠.


SFX. 전화 벨소리

02_Ring IN 준학 액팅 보고 인

03_Ring OUT 지영 액팅 보고 아웃


여보세요?


이준학: 아 지영 씨. 접니다. 일어나셨어요?


역시 이준학이 빠릅니다. 예상했던 결과죠.

기대한 목소리를 내어줘야 합니다.


네, 준학 씨!


이준학: 지금 나오실 수 있죠? 빨리 나오세요, 날씨가 기가 막힙니다.

이렇게 합시다. 지금부터 20분 후, 지영 씨 동네 지하철역 앞에서 만납시다. 주차하기 마땅치 않으니까 미안하지만 지영 씨가 먼저 나와서 내 차를 기다려줘요. 알겠죠? 나 바로 출발합니다!


이준학은 이런 남자입니다. 내가 시간을 맞출 수 있는지, 지하철 역 어디에 서있어야 하는지 자세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은 사람. 나를 배려하는 것 같으면서도, 모든 건 자신의 범주 안에 있어야 하는 사람.

지금 나가면 15분이면 지하철 역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서둘러 가야겠습니다.


문지영, 분주하게 준비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고 미적미적 시간을 끈다.


SFX. 전화 벨소리

04_Ring 재희 액팅 보고 인

05_Ring OUT 지영 액팅 보고 아웃


문지영: 여보세요?

남재희: 문지영!

문지영: 어, 무슨 일이야?

남재희: 에이 오전에 시간 빈다며~ 내가 지금부터 준비해서 나가면 한 시간 후쯤 너네 동네에 도착할 수 있거든?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으면 생각해 봐. 그.. 요새는 서순라길이나 을지로가 핫하..

문지영: 안 돼.

남재희: 어? 아 방금 일어났구나? 그럼 두 시간 후에 만날까?

문지영: 그게 아니고.. 지금 막 약속이 있어서 나가려던 참이었거든. 전화를 좀 빨리 하지..

남재희: 아.. 그랬구나.. 그럼 오후에 만나자. 기다릴 테니까 네가 전화해.

문지영: 아냐 오늘은 못 만나니까 기다리지 마. 담에 봐.

남재희: 그래, 그럼. 어서 나가봐. 친구 기다리겠다. 재밌게 놀고.


문지영 : 당연히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는 남재희.

나는 잠시, 마음을 아프게 한 남자에게 죄책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건 반대로 전화가 왔어도 느꼈을 감정. 이렇게 약해질 거였다면 운명에 맡기지 않았을 겁니다.

나는 단단해져야 합니다.


문지영, 슬그머니 걷다가 준학을 발견했을 때 부터 달리기 시작한다.

이준학 등장, 자동차에 기대 기다리고 있다.

이준학는 시계를 보며 양손을 쫙 펴 보여준다. 10분 늦었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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