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과의 미래가 불보듯 뻔합니다.

연극 딜레마, 2편

by 나은



이준학: 자, 오늘은 서울에서 코에 바람 좀 넣어봅시다. 그런 다음 분위기 좋은 곳에 가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돌아다니다 멋진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마신 다음, 혜화에 가서 연극을 보는 겁니다. 점심은 좀 늦게 먹어도 되겠죠? 일요일에는 보통 늦게 브런치를 즐기니 괜찮을 겁니다.


문지영: 나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늦게 먹어 괜찮은 사람이 자기인지 나인지 알 수 없으니까요.


이준학: 연극은 6시 30분 시작이에요. 물론! 표는 어제 구해놨습니다. 때문에 저녁은 9시입니다. 혜화에 아주 맛있게 하는 집을 알고 있으니 그건 걱정하지 마시고요. 오늘 드라이브는 연신내에서 삼청동으로, 그런 다음 정릉을 지나 돌아오는 것입니다. 커피 한잔의 대화는 아마도 종로쯤이 되리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말을 마친 이준학, 문지영을 보며 싱긋 웃는다.)


문지영: 저 사람의 웃음은 전염성이 아주 강합니다. 마음속에서는 그의 일방통행에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웃음을 따라 화들짝 웃어버리고 만다니까요. 따라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무엇이 이 남자에게 있습니다. 저 눈 때문일까요? 저 낙천적인 동그란 눈, 전혀 세상살이에 시달린 흔적이 보이지 않는 눈...


이준학: 거기 뒷좌석 보세요. 간단한 간식과 음료를 준비했습니다. 드세요. 오늘 아침, 나 정말 바빴어요, 지영 씨 만나려고 세차도 하고, 지영 씨한테 잘 보이려 새 옷도 입었다고요. 여기 봐요. 기름도 가득이죠? 어때요? 좀 괜찮게 보이나요?


문지영: 멋있네요.


이준학: 여자들 촉은 정말 무서운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에 동생이 내 팔을 꽉 잡으면서, 오빠 연애하지? 하는 거 아니겠어요? 하하!


문지영: 이런 질문에는 호락호락하게 대답하면 안 됩니다. 긍정적으로 대답했다간 운명에게 져버리고 마니까요. / 여동생들은 다 그렇게 말하지 않나요? 저도 오빠가 말끔히 옷 입고 세차하고 나가면 매번 물었을걸요?


이준학: 예? 아.. 예


잠시 정적


이준학: 아, 그렇군요! 지영 씨한테는 오빠가 없으니까요. 걱정 마세요. 내가 앞으로 오빠든 친구든 다 해주면 되잖아요? 그렇죠?


둘, 같이 웃는다.


문지영: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네요.

이준학은요, 치명적인 결함이 없어요. 그게 문제입니다. 결함이 없다는 게.

남재희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이준학과의 결혼을 치밀하게 계획했을지 모릅니다.


이준학: 자 도착했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이 카페를 지나기 위해 드라이브 코스 짜느라 머리 좀 썼습니다. 전 이런 계획 짜는 일이 정말 재밌어요. 시간이 계획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면 시간을 장악한다는 느낌도 꽤 괜찮고요. 좋죠? 이 집을 선택한 건 경치도 경치지만, ‘나지트’라는 카페 이름이 최고였어요. 먼 훗날, 지영 씨와 내가 ‘나만의 아지트, 그곳에서 함께 커피를 마셨었지’, 하고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기에 안성맞춤이니까요.


문지영: 추억까지 미리 디자인하고 있는 남자, 성가십니다.


이준학,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다. 문지영 방백 할 동안 끊임없이 지영에게 말을 건다.


하지만 나는, 분위기 깨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하며 살아갈 필요가 어딨겠어요. 아껴서 좋은 것은 돈뿐만이 아닙니다.

이쯤 되면 내가 왜 이 남자를 후보에 두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이준학은요, 그냥 직진이에요.

확고하게 마음을 정했다고, 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랬다고 담대히 고백하는 사람.

내 인생엔 늘 물음표밖에 없었는데. 저 사람은 느낌표밖에 안보입니다.

그 확신에, 나도 모르게 이끌리고 싶어 집니다.

저 사람의 계획에 흠을 내어보고 싶습니다.


저,, 연극을 꼭 봐야 하나요?


이준학: 그럼요. 이 표 예매하려고 어제 무려 두 시간이나 투자했는걸요. 지금 가면 딱 맞습니다. 주차하는 데 적어도 10분, 걸어서 극장 도착하는데 5분, 화장실 다녀오는 데 5분, 좌석 찾는 데 2분, 도합 22분! 8분 정도 숨 돌리고 나면 편안하게 연극을 볼 수 있어요. 딱 좋죠.


문지영: 머리에 계산기가 있나 봅니다.


이준학: 자, 보세요. 연극 시작 6분 전이네요. 2분 오차가 났군요.


문지영: 이 사람과의 미래가 불 보듯 뻔합니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현실. 하지만 엑셀로 빽빽이 정리한 여행 계획표보다는 우연히 발견한 맛집이 더 반가운걸요.


이준학: 자, 이제 집에 갈 시간이네요. 정확히 이십 팔 분 후에 도착합니다!

딱 맞춰 도착했네요!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지영 씨도 즐거웠다면 좋았을 텐데.


문지영: 저도 즐거웠어요. 조심히 가세요.


이준학: 그래요


문지영, 한 바퀴 걷다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음성사서함과 연결된다.

sfx. 06_음성사서함 안내멘트


남재희를 처음 만난건,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 밤 시간 일하던 작년 늦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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