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모순 원작 연극
남재희를 처음 만난 건,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 밤 시간 일하던 작년 늦봄이었습니다.
때 과거, 지영이 일하던 레스토랑
어서 오세요!
남재희: 아이고 죄송합니다. 미팅이 늦게 끝나서 제가 자주 오는 레스토랑인데 분위기 괜찮죠?
함께 온 사람을 에스코트하는 남재희
문지영: 여자 둘에 남자 하나라... 뭔가 어색해 보이는 게 여자친구는 아닌 것 같고...
남재희: 여기요!
문지영: 네!
남재희: 여기 ,, 제일 잘 나가는 메뉴 세 개 주시고요, 저기 와인도~ 부탁해요.
문지영: 알고 보니 동행한 여자들은 그의 소설을 사주려는 출판사 사람들이었습니다. 딱 봐도 누가 아쉬운 쪽인지 알겠더군요. 여자들은 먹느라 입이 바쁘고, 남자는 말하느라 입이 바빴습니다. 그런데 더 난처한 일은 말이죠, 식사 후에 일어났습니다.
남재희: 분명 머리로 계산했을 때 충분할 줄 알았는데,, 내일 바로 갚을게요. 정말요. 이거 제 신분증입니다..
문지영: 와인이 문제였죠. 20만 원은 넘는 거였으니까요. 큰 키에 내리 깔은 눈. 아까 그 패기는 어디 갔는지, 꼭 비에 젖은 강아지 같더군요. / 내 이름은 문지영, (번호를 써주며) 돈 갚을 땐 제 이름을 부르세요.
멍한 표정으로 지영을 쳐다보는 남재희. 조용히 나간다. 퇴장
다시 당차게 문을 들어온다. 돈을 갚고 신분증을 받아간다. 퇴장.
다시 조심스레 들어온다. 이번엔 지영 앞에 조심스레 선다.
남재희: 밥을 먹을까 해서요...
씩 웃는 남재희.
다시 현실, 카페 나지트
문지영: 그때 내가 왜 좋았어?
남재희: 내 이름은 문지영. 할 때, 그런 예감이 들었지. 아, 앞으로 저 이름을 아주 오랫동안 부르겠구나. 나한테 그런 느낌을 준 사람은 처음이었거든. 이 시대에 보기 힘든,, 착한 사람이랄까?
문지영: 나는 마음속으로 조금 움찔합니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지난 주말, 이준학과 다녀왔던 카페에 와 있는 거 아니겠어요. 이준학에게는 거짓말을 한 채로요. 오늘을 남재희에게 내어주는 대신, 나는 내일을 온통 이준학에게 저당 잡혔습니다.
두 남자를 만나는 삶은 피곤한 여정이죠. 일주일 만에 남자를 바꿔서 데려왔는데 저 사장님은 얼마나 재밌겠어요?
남재희: 아니 이런 카페는 어떻게 찾은 거야? 완전 내 스타일이잖아~ 설마 나를 위해서 북카페로 고른 거야? 어? 아 뭐야~ 하여간 착해 문지영. 아. 잠깐만. 나도 보여줄 거 있어. 남이섬 여행 갔다가 헌 책방에서 발견한 건데... 짠. 누가 쓴 거지도 모르는 아주 오래된 책. 표지에 세월이 역력하더라고. 그래서 마음이 끌렸는데 와.. 진짜 내가 엄청난 문장을 발견했잖아. 봐봐. ‘달빛은 흙벽에도, 궁궐에도 똑같이 내린다.’ 세상은 늘 차별하고 서열을 매기지만, 달빛은 그런 거 모르잖아. 조용히, 공평하게 다 품어주니까. 문지영 너같이.
문지영:... 이것 봐요. 이 사람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남재희: 그리고 이 에세이도. 뭔가 대단한 얘기는 없는데, 이 사람은 행복했던 적이 없대. 맨날 불행하다는 얘기뿐이야. 그래놓고 웃긴 게 뭔지 알아? 중간중간에 보면 이때가 좋았네, 저때가 좋았네, 이런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 사람은 항상 행복했던 거야. 본인이 그걸 모르고 있었을 뿐이란 거고.
문지영: 바보. 지금 줄다리기를 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내 행복 챙겨주려 하네요. 저나 먼저 챙기지.. / 이 책 나 줘.
남재희: 왜. 너도 달빛 구절이 맘에 들어?
문지영: 아니 뭐,, 엄청 와닿지는 않지만.
남재희: 그래 가져
문지영: 에세이도 줘.
남재희: 헉. 이것도?
문지영: 어차피 다 나 주려고 가져온 거 다 알아
남재희: 맞아
남재희는 괜히 민망해서 가방에서 쇼핑백 같은 걸 찾으면서 책을 잘 정리하고 있다
문지영: 남재희를 만나면 이상하게 내가 나로 존재하는 거 같아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할 수도 있지만, 이 세상이 나를 거부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줄 때, 남재희와 같이 있으면 나는 살아있어요.
/ 그래도 이번에는 생각보다 일찍 왔네? 원래 같았으면 본인이 무슨 빠니보틀인 것 마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엄청 늦게 왔을 텐데.
남재희: 돌아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으니까?
문지영: 이유?
남재희: 응. 이유.
문지영: 저는 남재희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다 알고 있어요. 그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늘 가난하게 살았대요. 그래도 형이랑 엄마랑 똘똘 뭉쳐 잘살았는데, 형마저 급히 떠나버린 거죠. 장례식은 있는 돈 다 털어서 제일 성대하게 치렀대요. 자기 형 기죽으면 안 된다고.. 여기서 별 볼일 없이 살았으니, 거기선 가장 호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그래서 지금도 돈이 많지 않대요. 하지만 여자를 만날 때는 어느 정도 감춰야 하는데 남재희는 그런 걸 전혀 고려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남재희: 형이 죽고 나서 엄마는 형 방에 있는 물건을 하나도 버리지 못했어. 그 방 진짜 큰 방인데.. 아니 내가 좀 쓰겠다고 해도 절대 안 된다는 거야. 진짜 쪼잔하지 않아? 근데 더 웃긴 건. 엄만 그 방에 들어가지를 못 해. 형 죽고 나서 단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어. 그래서 내가 형 방을 돌봐야 하니까,, 난 무조건 돌아와야 돼. 그런데.. 이제는 너 때문에 다시 돌아와. 너를 생각하면 빨리 돌아오고 싶어. 형이 서운해하려나?
문지영: 바보 같은 남재희, 너무 착해서 바보 같은 남재희. 근데 왜일까요. 어째서 제가 형의 방을 치워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요?
나 좀 취한 것 같아.
남재희: 진짜? 그럼 얼른 가자.
남재희가 일어나려고 하자 문지영이 남재희를 앉힌다
문지영: 뭐가 이렇게 급해?
남재희: (웃으며) 네가 술주정할까 봐 무서워서
문지영: 어떻게 알았어? 나 지금부터 술주정할 건데?
남재희: 어?
지영, 재희에게 입 맞춘다.
남재희: (부끄러워하며) 먼저 나가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