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린 시간도 결국 나의 방향이었다

by 박해경

나는 한동안 이 시간을 실패라고 불렀다.

예전만큼 단단하지 않았고, 예전처럼 확신에 차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흔들린 시간은 방향을 잃은 시간이 아니라, 방향을 다시 잡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전환기는 생각보다 조용하다.

드라마처럼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익숙했던 감각이 조금씩 어긋난다. 잘하던 일이 예전 같지 않고, 당연했던 선택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그 미세한 균열이 쌓여 결국 질문이 된다.

나는 그 질문을 피하려 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경력은 여전히 유효했고, 경험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버틴다고 해서 방향이 정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모호해졌다.


“버티는 시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를 멈춰 세우기도 한다.”


멈춰 선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앞으로 가지 못한다는 느낌은 곧 뒤처진다는 불안으로 번역된다. 특히 오랫동안 ‘앞으로 가는 사람’으로 살아온 이들에게는 더 그렇다. 나 역시 속도를 줄이는 일이 실패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속도를 줄이자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과하게 붙잡고 있었는지, 무엇을 두려움 때문에 유지하고 있었는지. 돈에 대한 불안, 직업에 대한 집착, 타인의 시선. 그것들은 나를 보호하는 장치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나를 묶어두는 장치이기도 했다.

전환기는 제거의 시간이었다.

덜어내고, 정리하고, 다시 배열하는 시간. 이전의 기준을 그대로 유지한 채 새로운 삶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방향도 바뀌지 않는다.


“흔들림은 무너짐이 아니라, 재배열의 신호다.”


그 문장을 이해한 뒤로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흔들렸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 흔들림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삶의 속도는 무엇인지, 감당 가능한 책임의 크기는 어디까지인지, 어떤 태도로 일하고 싶은지.

답은 한 번에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완성형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변화는 있다. 예전처럼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는 것. 숫자로 나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직함에 나를 가두지 않는다는 것.

이 연재를 쓰는 동안 나는 조금 달라졌다.

상황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수입이 갑자기 늘어난 것도 아니고, 모든 관계가 정리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이전보다 덜 조급하고, 덜 공격적이고, 조금 더 솔직해졌다.

어쩌면 전환기의 본질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삶의 외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일.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이동 중이었다.”


이 문장을 이제는 담담하게 말할 수 있다.

전환기는 끝났다고 말하기 어렵다.

삶은 계속 움직이고, 우리는 계속 조정해야 한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흔들림이 찾아와도 그것을 전부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들릴 수 있고, 멈출 수 있고, 다시 갈 수 있다는 감각.

이 기록은 성공의 증명이 아니다.

다만 통과의 기록이다. 지나온 시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시간에 머물지 않으려는 의지의 흔적.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다만 이제는 안다. 방향은 밖에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의 속도에 맞출 필요도 없다는 것. 나의 리듬을 찾는 일이 결국 가장 멀리 가는 길이라는 것.


그리고 오늘, 조용히 인정한다.


흔들렸던 시간 역시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하나의 방향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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