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는 이름이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걸 알았을 때

by 박해경

“기자입니다.”

그 한 문장은 오랫동안 나를 설명해주는 가장 간결한 문장이었다. 질문을 직업으로 삼고, 타인의 이야기를 정리하며, 사회의 균열을 기록하는 사람. 그 정체성은 단단했고,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 이름이 더 이상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업은 방패와 비슷하다.

우리는 직함을 통해 사회적 위치를 확인하고,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명함 위의 직업은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말해준다. 그러나 구조가 변하면 방패는 얇아진다. 산업은 빠르게 바뀌고, 플랫폼은 이동하고, 속도는 더 빨라진다. 익숙했던 자리도 더 이상 영구적이지 않다.


“직업은 나를 설명하지만, 나를 완성하지는 않는다.”


그 문장을 받아들이는 데 오래 걸렸다.

나는 기자로서의 시간에 자부심이 있었다. 취재 현장에서 배운 감각, 사람을 읽는 눈, 문장을 다듬는 습관. 그러나 자부심은 안정과 다르다. 경력은 과거를 증명할 뿐,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변화는 늘 기사 속에 있었다.

미디어 환경이 달라지고, 직업의 형태가 유연해지고, 개인은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나는 그 변화를 분석하며 기록해왔다. 그런데 정작 내 삶에 그 변화가 들어왔을 때, 나는 당황했다. 하나의 직함으로는 더 이상 나를 설명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직업이 흔들리면 자존감도 함께 흔들린다.

우리는 생각보다 깊이 직업에 기대어 서 있다. 명함이 사라지면 존재도 희미해질 것 같은 불안. 나 역시 그 감정을 피해 가지 못했다. “그럼 나는 무엇으로 나를 설명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오래 머물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

문제는 직업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나를 하나의 단어에만 묶어두려 했던 태도였다는 것을.


“정체성은 고정된 명사가 아니라, 움직이는 동사에 가깝다.”


기자는 나의 일부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나는 기록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질문을 설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방향을 정리하는 일에도 익숙하다. 형태는 달라질 수 있지만, 본질은 이어질 수 있다.

직업을 다시 쓴다는 것은 이력서를 고치는 일이 아니었다.

나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일이었다. 어디에 속해 있는가보다, 어떤 태도로 일하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빠르게 생산하는 것보다 깊이 있게 다루는 것, 많은 사람에게 보이는 것보다 필요한 사람에게 닿는 것.

나는 이제 나를 단일한 직함으로 소개하지 않는다.

조금 느슨해졌지만, 오히려 더 정확해졌다.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될 수 있다. 그 유연함이 앞으로의 시간을 지탱해줄지도 모른다.

전환기를 지나며 얻은 가장 큰 변화는 이것이다.

직업이 나를 보호하는 구조에서, 내가 직업을 선택하는 구조로 이동했다는 감각. 방패를 내려놓으니 처음엔 불안했지만, 대신 방향이 보였다.

이 글을 마치며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나는 무엇으로 불리고 싶은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동안,

나는 더 이상 하나의 이름에 매달리지 않기로 했다.

직업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태도는 남는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태도를 다시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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