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월에.
한창 좋은 계절에 나는
사십년지기와 삼십여 년 만에 만나 회포를 풀었던 그 친구들과 십여 년 만에 단출한 가을여행을 했다.
친구라는 울타리에 담겨진 우리는 낯선 듯 가까운 듯 그렇게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너무 오랜 긴 시간 보지 못한 친구였지만 어릴 적 기억의 반가운 마음이 우선하여 소란스럽게 우리는 모임을 결성했고 의기양양하게 서로의 행복을 담보해 줄 듯이 스스럼없이 수다를 피워댔다.
그러다 어느새 얼키설키 보낸 시간이 일 년이 가고 이년이 갔다.
그제야 서로의 모양새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모양새는
뭐랄까 조금씩 나와는 다름을 알아채면서 서로에게 거리감이 요구되어졌고 그럴 즈음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모임이 지속되기를 갈망함인지 아니면
혹 조만간 우리의 만남이 종지부를 찍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더해져서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우리는 어수선한 그러면서 단출한 가을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출발 전부터 피곤함이 차고 넘칠 만큼 삐걱거리긴 했지만 우여곡절을 넘어 우리는 약속시간에 약속한 장소에서 만났다.
그런데 어찌 이리도 분잡스럽고 마음이 무거운 건지 알 수 없다.
서로는 서로의 불편한 마음을 꾹 눌러 진정시키고 있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를 활화산 같은 그런 분위기에 다들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제 오십을 넘기고 보니
굳이 말로 듣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이 있고
갖춰야 하는 예의란 게 무엇인지 알 정도이기에
속은 부글부글 이러할지라도
웃을 수 있고 친절할 수 있었다.
그저 이러할 수 있는 이 나이에 만나 밤을 함께 보내고 아침을 맞을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지만 지난밤을 함께 보내고 또 한 번 실김하게 된다.
사람은 모두가 각자의 프레임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겐 별 꺼 아닌 사사로운 것이 친구에겐 죽을듯한 힘듬이고
내겐 지치도록 버거운 것이 친구에겐 웃음을 줄 수 있는 경쾌한 일일수 있다는 것을.
지난 긴 밤을 함께한 우리는
서로를 낯설게 만들고 어색하게 만들었지만
또 한편으론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나이의 미덕으로 평온하게 이 낯설음과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넘길 수 있었다.
적과의 동침과도 같았던 불편하고 어려운 짧은 가을여행이었지만 불편함을 감내하면서도 우리는 서로의 평온을 지키려 애썼고 그 애씀의 언저리엔 내 어린 시절 풍성함을 만들어준 친구에 대한 예의가 있었고 애정이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처음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제각각의 몫으로 가져온 여독을 풀어내느라 잠깐 서로에게 소원했었다.
여독이 풀린 우리는
우리의 두 번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우리의 두 번째 여행은 한결 가볍고 경쾌해질 듯하다.
준비하는 지금 우리는 몹시도 간결하고 평온하고 각자의 몫만큼 설레인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지금의 우리를 눈에 익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