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닐곱 살 적, 부산 남부민동
큰고모 집에 놀러 왔다가
산만디 까꼬막에서 굴러서
얼굴을 크게 다친 적이 있다.
그렇게 며칠을 얼굴에 약을 바르고
누워 지냈다.
그 시절, 고모부는 공동어시장에서
부지런히 리어카를 끌었고
고모는 열심히 한복을 만드셨던 것 같다.
생경했던 부산의
내 첫 기억이다.
2011년 12월.
영남지역을 담당하는
방송기자일을 맡게 되면서 부산으로 왔다.
영주동과 동광동에서
약 5년간 원룸 생활을 했다.
옛 시절, 그 가난했던 고모와 고모부는
이제 오피니언 리더요,
부자가 되어 계시다.
그런데 마음이 더 부자시다.
부산으로 이직해 왔을 때
고모와 고모부가 하신 말씀.
"조카야, 절대 기죽지 말거라.
뒤에 우리가 있다 아이가."
삼천포 아버지 밑으로
부산 큰고모, 서울 작은 아버지,
울산 작은 아버지, 부산 작은 고모,
부산 막내 고모까지 6남매이다.
아버지도 아버지이지만,
고모와 작은 아버지들 모두
평생을 근면 성실하게,
똑 부러지게 사셔서
지금은 남부럽지 않은
멋진 황혼을 보내고 계신다.
무엇보다 6남매 사이가 너무 좋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 흔한 유산 싸움도 전혀 없었다.
이웃들이 이 집은 될 집이라고
덕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6남매 우애.
심심찮게 해외여행,
남도기행도 함께 하시고
얼마 전엔, 지리산 천왕봉도 찍고 오셨다.
대단하시다.
큰 고모부께서
6.1 지방선거에 출마하셨다.
어제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온 가족이 다 모였다.
나는 오후 늦게 들러
인사를 드렸다.
고모부는 뉴욕에, 서울에 있는
두 아들이 부득불 부산에 못 와서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 말씀을 하시며
조카야 고맙다 하신다.
이런 이벤트 덕에
부산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뵈니
마음이 더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오늘 부모님은 서울 작은 아버지,
부산 작은 고모와 송도 해변을
둘러보셨나 보다.
사진이 화사하다.
마음이 너무 선해 이웃들에게
다 퍼주시다 망한 방앗간 집
할아버지 할머니 슬하 아버지 6남매.
억척스럽게, 그러나 늘 기품 있게
살아온 식구들.
마음 부자, 큰 고모부 큰고모의
새로운 도전- 부산 'dream'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