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책 <한 명>을 읽고

칼럼 #1

by 구재


<한 명> - 김숨. 현대문학. 2016.



출처: 교보문고


초등학생 때 나는 역사 시간이 정말 힘들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단원이 시작되면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었다. 지루해서, 암기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겪은 고통이 너무 크게 다가왔기 때문에. 선생님이 수업 자료로 다큐멘터리를 틀어주시면 나는 눈을 질끈 감거나 괜히 교과서를 들여다보며 딴짓을 했다. 역사의 아픔이 너무 생생해서, 바꿀 수 없는 과거가 답답하게 느껴져서 결국 과거를 마주하지 않고 외면했다.


광복절을 맞이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다룬 <한 명>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이 무색하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감당하기 어려워 책을 끝까지 읽고 싶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의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기에 더 속상했고, 그 속상함이 다시 분노로 변했다. 그럼에도 역사 시간에 눈을 감던 초등학생 때의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40쪽마다 한숨을 푹 쉬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도 끝까지 읽었다.



어떤 말로도 자신의 고통을 설명할 수 없다. - 237p



책을 읽는 내내 피비린내가 나는 기분이 들었다. 위안부에 끌려간 여성들의 평균 나이는 17세며 그중 10대 초반 어린 여성도 있다고 한다. 주인공 풍길 할머니도 13세에 위안부로 끌려갔다. 월경을 시작하지도 않은 어린 여성들이 성인 남성에게 성착취를 당한다. 초경이 시작하자마자 임신하고, 임신하자마자 다시 아이를 죽인다. 하하와 일본군은 사람을 낳고 사람을 다치게 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쉽게 한다. 생명을 다루는 게 너무나 쉽다. 아무렇지 않게 사람이 사람을 해한다.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마치 숨 쉬는 일처럼. 읽는 내내 군인 중 단 한 명이라도 “미안하다,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끝내 없었다.



나도 피해자요.
그 한 문장을 쓰기까지 70년이 넘게 걸렸다. -236p



풍길 할머니는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라는 것을 숨기며 살아왔다.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던 부분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할머니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 편히 할 수 없게 하는 사회가 답답했다. 피해자임을 증명하려면 고통스러운 기억을 세세히 설명해야 한다. 그것이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겪은 일을 말하면 ‘더러운 여자’라는 낙인을 찍히거나 “그래도 돈은 벌지 않았느냐”는 왜곡된 말을 들었다. 이런 사회에서 누가 쉽사리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모든 걸 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기억했으면 오늘날까지 살지 못했으리라. -151p



여전히 일본 정부는 이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공식적인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광복 80주년, 겨우 80년이 지났다. 산증인이 있고, 수많은 자료가 있는데도 일본은 마치 없는 일처럼 행동한다. 100년도 안 된 일을 왜 지우려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가. 그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해 행동하고 있는가.


사람은 칼로만 죽이지 않는다. 말로도 죽인다. 대놓고 비하하는 사람,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 은근히 거리를 두는 사람. 모두가 누군가를 서서히 죽게 만든다. 과연 일본군만이 그들을 아프게 했을까? 그들을 또다시 아프게 하는 데에 우리의 잘못은 정말로 없을까?



역사는 개인의 내면을 기록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건들과 인명들과 연도들과 수치들 속에 개인은 어디에 있는가? 개인이 겪었을 무수한 내면의 역사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인간의 내면이야말로, 내면에 담긴 기억이야말로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개인의 가장 내밀하고도 고유한 역사의 영토가 아니던가? - 작품 해설 중



우리는 학창 시절에 역사를 배운다. 성인이 되어서 취업을 위해 역사를 배우기도 한다. 점수를 위해 배우는 역사. 일제강점기 파트가 나오면 화가 나긴 하지만, 시험이 끝나고 나면 그마저도 바로 잊는, 대학을 위한, 취업을 위한 역사. 하지만 역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죽이고 살고 살려는 이야기들. 그렇다면 내가 단 한 번이라도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내가 그들의 이름 앞글자를 따고, 연도를 노래로 만들어 외우는 게 아닌, 그들 그 자체로 바라본 적이 있는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 우리 엄마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역사 속 한 명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는 역사를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 역사 속 피해자들의 고통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고, 겪은 일을 없앨 수도 없다. 하지만 그들의 과거가 미래가 되어 또다시 상처 입지 않도록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그저 시험 과목 속 암기해야 하는 내용 중 하나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마주하는 것.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 그 자체로 대하여, 그들이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도록,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행복을 바랄 수 있도록 함께해야 한다.


나에게 <한 명>은 역사를 사회의 이야기에서 나아가, 사람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로 생각하게 한 책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길 바라며, 사람이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세상만이 오기를 바라며,

광복 80주년에 책 <한 명>을 추천한다.


대한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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