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행복해지기 위해 인생의 즐거움을 찾기로 했다.
삶은낙지 프로젝트(일명 8888 project)는 이전부터 어떤 계기에 의해 계속 생각해오던 프로젝트이다.
햇수로 약 3년 간 머릿속에서만 생각해오던 일이었는데, 그냥 오늘, 일요일 아침에 눈을 떴는데 시작하고 싶어졌다. 본래 지난한 시간을 거쳐 천천히 빌드업하는 과정을 통해 시작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으나, 모든 것을 다 떠나서 본 프로젝트는 즐거움을 찾기 위한 프로젝트 아닌가?
부디 조금 가볍더라도, 날이 가며 많은 것이 바뀌더라도, 어리숙하고 미숙한 실수가 보이더라도, 그 또한 무언가를 찾아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보이는 시행착오라 생각하며 가볍게 웃어 넘겨주었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지금도 내 머릿속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뜨거운 기억이자, 가슴속에 남은 인생의 교훈이며, 평생 감사해야 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전하고 싶다. 내가 그랬듯, 누군가의 마음이 새롭게 일렁이길 바라며.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겠지만, 나는 대학교를 힘들게 다녔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각설하고, 한 없는 욕심과 끝없는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대면서도 스스로 힘들지 않다 채찍질하는 매일을 살았다. 그저 내가 원하는 '행복한 미래'를 위해. 그 시절 나는 마치 에스컬레이터에 스스로 걸어 들어간 느낌으로, 멈춰있으면 모두가 내 어깨를 스쳐 나를 지나쳐 갈 것이며 나는 그저 바보처럼 그들의 멀어지는 등을 쳐다보며 저 멀리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만 했다. 매일 아침 생각나는 문장이 피터 드러커의 '혁신하거나, 사라지거나'였으니, 얼마나 성취와 향상에 목매어있던 시절이었는지.
그 시절 주변인들이 내게 가장 많이 해주었던 말은 '똑똑하다', '대단하다', '멋있다'와 같은 대견함이 섞인 칭찬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일기장을 보면 나의 매일은 우울하고 허무하고 절망적인 하루로 점철되어 있다.
<2017년 4월 22일> 토요일이 막 된 시간.
이게 사람답게 사는 삶인 걸까? 또 내가 편한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다들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데. 아니 사실 나는 힘들지 않은 게 아닐까? 내가 의지가 약하고 멘탈이 약해서 같은 크기의 무게에 혼자 심하게 짓눌려 있는 건 아닐까? 그럼 나는 계속해나가야 할까?
<2018년 5월 1일> 조용한 새벽 2시, 선선한 바람, 기침하는 누군가.
지금은 행복하다. 미래는 불안하다. 불안이 행복을 잠식하고 덕분에 행복은 내게 더없는 부담이 되어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2018년 5월 11일> 또, 뜬 눈으로 아침을 맞게 될 어느 새벽.
아니 근데 이 시기가 끝나면, 말 그대로 졸업을 한다면 이 모든 것이 끝날까? 원래의 내 성격이, 내 자아가 어땠던가?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모든 것에 불행을 느낀다.
K. 요새는 어떻게 지내?
J. 그냥 바쁘게 지내지 뭐. 너무 힘들어.
K. 근데 뭘 위해서 그렇게 힘들게 사는 거야?
J. 모르겠어. 그냥 행복한 삶?
K. 미래를 위해서?
J. 어, 행복한 미래.
K. 근데 나는 그렇게 생각해. 삶은 연속적이고 많은 오늘이 모여 어제가 되잖아. 너의 모든 어제가 힘들고 불행한데, 갑자기 미래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것보단 네가 인생을 뒤돌아봤을 때, 남겨져 있는 그 많은 행복했던 기억이 네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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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의 대화로 느낀 첫 번째는, 삶은 연속적이라는 것.
삶은 과거-현재-미래로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그저 연속적인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과거와 현재, 미래의 기준 또한 매시간 매분 매초 변한다. 이러한 시간의 개념에서 '미래'는 멀지 않으며 지금을 제외한 모든 순간이 나의 과거 혹은 미래가 될 수 있다.
두 번째, 행복한 삶을 만들기 위해서는 행복한 미래를 사는 것보다, 행복한 오늘을 쌓는 것이 낫다는 것.
행복함이란 내가 무언가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다가오지도 않을 '미래'를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그것보다는 오늘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오늘을 쌓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분명 "행복한 미래를 살 거야"보다 "오늘도 어제처럼 행복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그러니 결국 행복을 미루지 말자는 것.
이 이야기는 YOLO(You Only Live Once) 같은 말과는 다르다. 한 번 사는 인생,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라! 는 늘 미래를 생각하며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싶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에서 나온 Seize the day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미래를 위해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러한 세 가지 생각의 끝에서, 삶은 낙지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삶의 즐거움을 아는 것. 그리고 그 즐거움을 매일의 일상에서 추구하는 것.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만의 작은 즐거움을 만들어가며 사는 것. 스스로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프로젝트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들이다.
(사실 거창하게 '프로젝트'를 붙이긴 했는데, 이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내용이 언제든 없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르겠다. 내용을 정해놓고 시작하고 싶지 않다.
본디 즐거움이란 형체가 없는 것인데, 즐거움을 찾아가는 과정에 주어진 형식을 따라가는 것도 이상하다는 핑계를 대본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고, 내 이야기도 말하고 싶고, 갑자기 드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기도 하다. 그저 삶의 즐거움이란 무엇인가, 어떤 것으로 그 즐거움을 채울 수 있는가, 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을 기록하기 위함이며, 혹시라도 있을 나와 같은 사람과 감정을 나누고 공감하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일단은 주변인들의 삶 속에서 즐거움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고자 한다.
배움 없는 경험은 없다고, 그 시절의 절박함이 나의 현재를 살게 했으니 내 인생에서 필요한 경험이었으리라.
나는 노력하는 것이 좋다. 목표를 정하고 이를 추구해나가는 과정이 즐겁고, 이를 위해 자기 통제는 필요하며 이 과정을 겪어나가는 이들을 존경한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 작은 즐거움을 넣어주었으면 좋겠다.
쉽게 지치지 않도록, 인생을 잠시 돌아보았을 때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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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2일> 아직 해가 뜨기 전, 잠 못 자는 새벽에
삶을 선택하는 것이야 말로,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그리고 중요한 선택이 아닐까?
살아가는 삶이 아닌, 살기를 선택한 삶이야말로 의미 있는 삶일 것이다. 지금 내 삶은 내가 선택한 결과로 인한 시간들이고, 내일의 시간들 또한 내가 살아가기로 선택한 내일일 것이다.
나는 매 순간 선택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