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확신,시작,사랑1,사랑2
1. 대화
어떤 선생님과 가끔 깊이 오래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은 내내 듣는다. 듣고 있으면 마음이 씻긴다. 메마르고 흐릿하고 차갑거나 어색한 마음이 다 씻겨 녹아 없어져, 조금 눈물이 맺힌다. 그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는 온도가 너무 따뜻해서, 아이들을 생각하고 믿고 이해하고 도와주고 이끌어주고 위하고 변화시키고 격려하고 믿음을 주고 다정하게 선하게 즐겁게 확실하게 사랑하는 모든 마음이, 그 마음의 근원이 너무너무 진심이어서, 유일해서, 복음이어서 나도 모르게 조금 울었다.
2. 확신
마음이 조명이라면 : 답이 없는 상황에서 무력감과 두려움에 휩싸인 순간에서 (물론 답이 없지만) 분명히 나아질 수 있고 도움의 손길과 변화의 씨앗이 있다는 확신이 사방에서 쨍쨍하게 내리쬔다면, 씨앗이 정말 자랄지도 모를 일이다. 결과와 별개로 인생이 과정의 연속이라면, 그런 조명이 조금 많이 필요할 것 같다.
3. 시작
멍이 들어도 나아서 뛰어놀 수 있고, 병에 걸려도 치료해서 일어설 수 있고, 친구랑 싸워도 화해하고 다시 웃을 수 있다.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또 넘어지고 아프고 계속 싸우고 다 끝날 수도 있다. 그치만 죽을 때 죽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가능하다고 믿고 싶다.) 무게와 정도가 다르지만, 끔찍한 현실에 짓밟혀 꼼짝도 못 할 때도 있지만, 가능성과 희망에서부터, 언제든 삶은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고 믿고 싶다.
4. 사랑1
그 선생님의 이야기는 온통 사랑이었다.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는 이야기. 내 안에 딱딱한 옥수수 알갱이가, 말라붙어있던 사랑이 투두둑 펑! 팝콘으로 살아났다.
그때 부푼 생각
아이들은 대체로 투명하다. 온몸으로 울고, 그러다 웃음으로 뒤덮이고, 고래고래 외치고, 방금 인사했는데 또 반가워하고 또 인사하고 말 걸어주고 말 들어주고 참여해주고 도와주고 달려와주고, 그런 날것의 표현이 고맙다. 재고 따지거나 걱정하거나 계산하거나 생각하고 생각하느라 한번 더 조심하고 반응을 살피고 삼키고 돌아서는, 어른스러워야 하는 그런 어려운 관계 말고, 숨기지 않고 마음껏 표현해도 괜찮은 사이. 조심할 필요 없이 얼마든지 진심을, 사랑에 가까운 것들을 모조리 쏟아내고, 설령 그것이 서툴러도 받아들여지는, 받아들여주는 존재들이 있어서 문득 감사하다.
5. 사랑2
이상하고 서투르고 괴이하고 모자라고 희한하고 엽기적이고 투박하고 보잘것없고 삐뚤빼뚤하고 부족하고 튀고 못난 것들이 가끔 미치도록 좋다. 웃기고 사랑스럽다. 신발장에 어떻게든 아무렇게나 쑤셔 넣은 신발과 실내화 뭉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찰흙 작품,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 이야기, 몇 달째 덕지덕지 붙여진 작품들, 손바닥에 뜬금없는 낙서, 다 이상한 것들. 그런 소중한 이상함을 가까이서 좋아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소중하다. 소중하다. 귀하다. 사랑스럽다. 고맙다. 그립다. 빛난다. 선명하다. 그 밖의 것들이 모두 흐릿해지는 그런 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