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에서 살며 여행 같은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제주도에서 친한 동생 부부가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있어서 안부 삼아 며칠 다녀오거나, 그 부부가 긴 여행을 떠났을 때 빈집을 봐주려 한달살이를 했던 정도가 전부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행 욕구가 별로 생기지 않는다. 매일 보는 풍경이 탁 트인 초록 들판, 파란 하늘과 바다여서일까? 하긴 제법 큰 마트를 가는 길조차 줄곧 다도해의 풍경이 펼쳐지는 해안도로니까 그럴 만도 하다. 회사에 다니고 도시에 살 때는 틈만 나면 아니, 없는 틈을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그렇게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더니. 참, 사람 마음이란.
여행 욕구가 점점 사라지니 그동안 대체 무슨 목적으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여행을 다녔나 싶다. 알고 있다, ‘여행’이란 어휘에 ‘목적’은 그리 어울리지 않는 명사임을. 어디론가 떠난다는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있음을 잘 알지만, 불현듯 생각이 떠오른다. 서울을 떠나 남해에 5년째 살고 있는 지금이 어쩌면 아주 길고 긴 여행을 하는 게 아닐까?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여행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무리 불을 지피려고 부채질을 해도, 비 맞은 숯불처럼 피어오르다 사그라져 버리는 여행의 욕구.
왜 그렇게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났는지 곱씹어 보았다. 유럽이든, 남미든, 동남아든, 국내의 낯선 어떤 곳이든, 짧든 길든, 가깝든 멀든 여행의 형태는 매우 다양했다. 그만큼 낯설고 생소한 자연 풍경, 도시 경관, 현지의 일상을 접하며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같은 곳, 같은 대상을 봐도 사람마다 느끼는 생각과 감정이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다.
이번 여행은 언젠가 끝나고 기약 없는 다음 여행이 이어지겠지만, 여행에서 알게 된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는 태도를 계속 배워가고 싶다. 평범한 일상에서 만나는 여러 관계에서도 그런 태도를 잃고 싶지 않다. 후배, 선배, 친구, 가족, 친척, 이웃, 직장 동료 등 그 순간 함께 있는 사람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며 발걸음이 다른 길로 옮겨가거나, 생뚱맞은 나라로 여행을 떠나며 다른 음식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틀린 행동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인정하는 태도를.
끝을 알 수 없는 길고 긴 일상의 여행에서 기왕이면 다른 태도로 살아가는 시골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