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시선으로 익숙한 서울을 바라보다.
서울에 살기 시작한 지 7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여행하다 만난 사람들이 한국 어디 출신 이냐고 물으면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냥 "서울"이라고 대답하고는 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7년간 단 한순간도 나를 서울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냥 서울 거주자였다. 여행자도, 서울 사람도 아닌, 그냥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이었다.(전입신고도 하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렇기에 서울은 나에게 더 삭막하게 느껴졌던걸 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혼자 한 달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많은 도시들을 여행하며 행복한 감정을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도 이어나갈 수 없을지 고민했었다. 서울 거주자지만 서울 여행자처럼 살 수는 없는 걸까. 그렇게 생각해보니 사실 여행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호스텔이 아닌 2년짜리 숙소를 주기적으로 옮겨 다니는 장기여행. 직장이 없어진 지금이라면 더더욱 여행자라고 볼 수 있었다. 조금 더 여행자의 시선으로 익숙한 장소를 바라볼 수 있다면, 여행이 주는 행복감을 서울에서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던 중, 외국에서 온 학생들의 서울 여행 가이드를 해줄 기회가 생겼다. 영어도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고, 보수도 적었지만,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서울 여행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어서 수락했다. "여행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서울의 여행지는 어디일까" 고민하며 방문할 곳을 고르고, 동선을 수정하며 1일 여행 계획을 짰다.
#1 서울의 대표 고궁, 경복궁
어느 여행지를 가든 그 나라 역사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를 꼭 방문하는 나의 여행 취향 덕분에 첫 번째 장소로 선정되었다. 20살 봄에 친구와 함께 왔던 경복궁에 좋은 기억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처음 방문해보는 거라 떨렸다.
눈이 굉장히 많이 오고, 추운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복궁에는 여행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여행자들은 대부분 근정전 근처에서만 머물 뿐, 경복궁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근정전 만큼이나 유명한 경회루나 향원정도 한적해서 고궁의 진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함께 다니던 친구들도 경회루 앞에서 유독 감탄사를 연발했다.
#2 재미는 있었던 엽전 도시락, 통인시장
점심을 통인시장에서 먹었다. 마침 얼마 전에 무한도전에서 무도투어 특집으로 외국인들과 함께 촬영을 진행했던 곳이었고, 당시 외국인들도 꽤 즐거워 보였기에 선택했다. 엽전으로 음식을 사고 도시락을 만들어 먹는 컨셉이 재미있게 다가오기는 했지만 음식이 맛있는 곳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대표 메뉴라는 마약김밥과 기름떡볶이가 내 취향이 아니다.)
음식을 고를 때마다 이게 무엇으로 만든 음식인지 궁금해하는 친구들에게 설명해주어야 했는데 거의 대부분이 "chicken"이었다. 아마 한국인은 닭고기만 먹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날씨가 추웠으니 근처에서 국밥이나 먹는 게 나았을 듯 싶지만, 음식 선정에 실패하는 것도 여행자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던 것 같다.
#3 북촌한옥마을
북촌에 갈 때마다 밥을 먹으러 간 것이지 한옥마을을 보러 가본 적은 없었기에, 나조차도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왕이 살았던 곳을 보았으니 일반인들이 사는 한옥도 보는 게 좋은 거라고 설명했지만, 사실 일반인이 살기에 집값이 착한 곳은 아니다.
평일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북촌한옥마을은 물론 북촌한옥마을 가는 길이 그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울 수 없었다. 건너편엔 높은 빌딩이 있는 도심이 보이는데 여긴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롭다니. 아아 이것이 말로만 듣던 "The land of morning calm"인 것인가! 이쯤에는 기온이 조금 올라서 지붕에서 눈이 녹아 비로 떨어지고 있었다. 여전히 추웠지만 그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었다.
#4 인사동에서 처음으로 전시회를 보다.
북촌 한옥마을에서 나와 길을 따라 걸으면 인사동이 나온다. 그곳에서 친구들은 마음에 들어하던 탈도 하나 사고, 길거리 음식도 사 먹고, 쌈짓길도 돌았지만 그들이 제일 좋아하던 곳은 바로 이 곳. 리그 오브 레전드 관련 작품을 전시하는 곳이었다.
영어로 쓰여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알아보고는 자신들도 볼 수 있는지 물었다. 입장료가 3,000원밖에 하지 않아서 다 같이 들어가서 봤는데. 의외로 정말 재밌는 전시였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인사동을 그렇게 많이 다녔는데도 전시회 볼 생각은 한 번도 한적이 없었다. 아마 은연중에 "전시회는 비싸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직장으로서의 서울과, 여행으로서의 서울은 이렇게도 다르다.
#5 서울의 랜드마크, N서울타워
누가 뭐래도 나는 서울의 랜드마크가 N서울타워(a.k.a. 남산타워)라고 생각한다. 서울에 처음 올라오던 날, 서울 도심에서 버스를 타면 항상 보이는 남산타워에 마음이 두근두근 했던 적이 있었다. 남산 바로 아래에 있는 학교를 나와서, 대학시절 운동삼아, 기분전환 삼아 자주 왔던 곳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익숙한 남산타워에서도 눈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눈 내리는 겨울에 남산타워에 온 적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입장료가 비싸서 타워 안에는 딱 한번 들어가 보았고, 케이블 카는 한 번도 탄 적이 없었다. 여행자의 패기로 이번에는 도전해볼까 싶었지만, 서울에서 나와 친구들은 가난한 배낭여행자일 뿐이었다. 여행자로 살든, 거주자로 살든 남산타워 입장료는 부담스러웠기에 그저 밖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서울 여행을 마무리했다.
그동안 '여행자처럼 살기'를 너무 어렵게만 생각했던 건 아닐까. 그냥 매일 보는 장소에서 새로움과 즐거움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여행은 아닐까 싶다. 여행 계획을 짜고, 여행을 하고, 여행에 대해 글을 쓰는 지금까지. 나는 서울을 여행 중이다.
*해당 글은 2015년 12월에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