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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원 Feb 11. 2016

토론을 즐긴다는 한국의 윗사람들에게

토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조직의 리더 혹은 관리자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 즐겨 사용하는 단어다. 머릿속으로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툭하면 부하들에게 내뱉는 단어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말하는 만큼 실제 그 단어를 실행하는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회사에서 자주 일어나는 회의라는 풍경 속에서 상하급자가 토론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상급자가 질문하고 하급자가 대답하는 혹은 상급자가 이야기하고 하급자가 받아 적는 형식이 아닌 진정한 토론 말이다.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기 위해 상호 간에 고성이 오가기도 하는, 속된 말로 계급장 떼고 의견을 교환하는 토론 말이다. 


다양한 조직을 경험해보지 못한 필자이기에 결과를 섣불리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하지만 확신하건대, 한국 내에서 같은 조직 내의 상하급자가 어울려 토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물론 하급자가 싸우겠다고 작정한 상황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겠지만, 그런 상황은 토론이 아니라 싸움에 가까우니 제외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사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토론은 어떠한 조직이든 정말 필요한 것이다. 조직 내에 기가 막힌 천재가 있어서 언제나 멋진 해결책을 내놓으면 좋겠지만, 그런 상황은 없다. 문제 해결에 있어 높은 정답률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해도, 100% 정답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여러 사람들이 같이 고민하고 함께 방향을 만들어나가는 토론이라는 행위는 조직의 생명 유지 장치와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토론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한국 사회가 조직 내 상하급자 사이의 위계관계가 너무나 강하기 때문일까? 얼핏 보면 싸움과도 다를 바 없는 토론을 통해 상하급자가 싸우게 되는 상황은 상하급자 모두가 꺼리는 상황이기 때문일까? 


이와 관련해서 더욱 재밌는 사실은 대부분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토론을 통해 조직 내의 분위기가 나빠지는 것을 걱정한다. 혹여 토론으로 상급자 의견에 하급자가 강하게 반대하는 일이 발생하면 어떤 견해가 좋은지와 상관없이 조직 내의 분위기는 불편해진다. 물론 상급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한국에 있는 얼마나 많은 리더들이 이러한 경향에서 벗어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 조직 생활에서, 해야 할 행동이 정해지면 그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해야 할 행동을 정하는 것은 리더만이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직 내의 구성원들이 ‘토론’이라는 방식으로 함께 해야 할 방향을 정하는 것이, 행동을 하는 데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에서 더욱 유용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조직 내의 상급자를 따르고 상급자의 의견에 토를 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 사회의 어느 조직에서든 환영받는 하급자는, 실력과 통찰력이 있으면서 그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마음껏 드러내지 않고 상급자를 통해 형식을 갖추어 드러내는 사람이다. 혹여 놀라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하급자가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능력은 인정해도 그 사람이 조직 내에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토론을 통해 상하급자가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해 대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책에서나 나오는 상황인 셈이다. 


사실 하급자 입장에서는 토론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큰 불만이 없다. 조직에 적응하는 단계에서는 하급자 역시 의욕이 넘쳐서 자신의 생각을 펼치지 못하기에 불만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하급자는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상급자가 정한 대로 일을 하면 된다. 조직이 실패를 겪는다고 해도 하급자는 걱정이 없다. 본인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 아니기에, 상급자가 시키는 것을 얼마나 잘 했느냐만 중요하게 생각될 뿐이다. 상급자는 자신의 생각대로 조직의 행동을 정하고, 하급자는 결정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 모두에게 행복한 상황이다. 


그러한 행복한 상황이 성공이라는 결과로 연결된다면 정말 모두에게 행복한 상황일 것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조직은 실패를 경험한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조직은 리더를 교체한다. 다시 상황은 반복된다. 운 좋게 성공을 경험하면 리더는 더욱 특별한 사람으로 추앙된다. 하지만 그러한 리더도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상황은  또다시 반복된다.


조직 내의 상급자는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의 역량을 모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것일 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현할 자격을 가진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통찰력이 있는 리더라면 조직 내의 다양한 의견들을 모아서 자신의 통찰력을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낼 것이다. 


수많은 한국사회의 윗사람들이 토론이라는 듣기 좋은 단어를 문자로만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곱씹어 보아야 한다.     


사족: 이와 함께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토론의 회피가 일반화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경제성장의 돌파구를 창의성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놀라운 것을 고안해내는 힘은 무한한 실패의 허용에서 나온다. 한 번의 시도로 멋진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우연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성공한 결과물은 이것저것 다 해 보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저것 시도하는 것에 있어서 기초가 되는 토론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면서 그 결과물을 강조하고 있다. 진정으로 창조적인 발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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