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쁘지 않은 시작
작은 크기의 ZV-E10에 아주 잘 어울리는 번들 렌즈 SELP1650
SELP1650은 소니 크롭 미러리스용 네이티브 렌즈 중에 아주 저렴한 축에 속하는 렌즈이다. 게다가 16mm에서 50mm(풀프레임 환산 24mm에서 75mm)까지 줌을 사용할 수 있으니 아직 취향 화각을 찾지 못한 입문자에게도 딱이었다. 그렇다고 성능이 나쁜 것은 아닌데 문제는 내가 단렌즈로 찍은 사진을 너무 많이 봐버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이미 취향 화각이 존재했던 것이다! 카메라를 처음 켰을 때 바로 50mm로 줌을 당겨서 사용하니, 그 이하의 화각은 정말 쓸 일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망원렌즈를 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번들 렌즈를 제대로 써보지도 않고 망원 단렌즈를 또 살 수는 없는 노릇이라, 번들 렌즈를 더 열심히 써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사진을 찍은 후 크롭을 많이 하면 망원렌즈로 찍은 효과를 조금은 흉내 낼 수 있어서, 사진을 찍은 후에 크롭을 엄청 하게 되었다. 다만 아무리 미러리스 카메라의 화질이 좋아도 너무 많이 잘라내면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만큼 화질이 안 좋아질 수도 있다. 그래서 크롭은 적당히 하기로.
가변 조리개 렌즈 SELP1650
SELP1650의 렌즈 설명에 F3.5-5.6이라고 쓰여있는데, 이건 16mm에서 F3.5로 조리개를 최대 개방할 수 있지만, 50mm에서는 F5.6이 최대 개방 값이 된다는 것이다. 많은 단렌즈가 F2.8 이하의(몇몇 비싼 렌즈는 F1.4보다 낮은) 조리개 값을 갖는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F값이 망원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것이 SELP1650 같은 가변 조리개 렌즈의 단점이다.
하지만 F값이 1.4만큼 내려가는 렌즈는 크고 무겁거나, 비싸기도 하기 때문에, 16mm~50mm까지의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가볍고 저렴하다는 점 또한 SELP1650의 엄청난 장점이다.
F5.6이 최대 개방인 50mm
번들 줌렌즈의 조리개 값과 화질을 탐구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서도 조리개 최대 개방에서는 화질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 그리고 많은 렌즈가 F5.6~F11사이에서 화질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보다 렌즈 제조사 홈페이지에 항상 첨부되어 있던 MTF 차트가 가장 객관적인 지표 같았다. 그렇게 온갖 렌즈의 MTF 차트를 다 찾아보다가 아니 대체 입문한 지 얼마나 됐다고 화질을 따지고, 배경날림을 얼마나 좋아한다고 조리개 값을 따지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으로 만족하지 못하던 부분을 만족해 보자는 본래 목표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카메라에 입문한 지금, 분명 스마트폰보다 훨씬 화질 좋은 사진을 찍고 있는데, 여기서 화질을 더 따지고 있다니......
카메라와 사진에 대해 공부하는 건 중요하지만, 컴퓨터로 이런저런 정보를 찾기만 하지 말고, 나가서 한 장이라도 더 담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이후, 어딜 가더라도 카메라를 챙기기 시작했다.
이날은 병원에 가는 날이었고, 병원 천장을 흑백 사진으로 찍어보았다. 매번 병원 천장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면서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사진으로 남겨보니 내가 여길 왜 좋아했는지 알 것만 같기도 했다.
SELP1650 번들 렌즈가 입문자에게 좋은 이유는, 가벼운 무게로 어디든지 쉽게 들고 다니면서 다양한 화각의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화질이 어떻든 간에 번들 렌즈로 입문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