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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유 Mar 19. 2023

하늘을 나는 꿈에 닿아

  영원히 간직될 것 같은 순간이었다.


  꿈에 닿아 있었다.



  비행 실습을 시작하기만 하면 달라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처음 자동차 운전을 배울 때의 설렘이 떠올라 더욱 그랬던 거 같다. 드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오르며 이리저리 다닐 생각에 설레기도 하고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늘 그렇듯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었다. 처음 배정된 군 출신의 비행교수님은 비행 실습 중 폭언을 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기대했던 첫 비행에서, 처음이라 잔뜩 긴장해서는 어리바리하던 내 모습을 보고 교수님의 화려한 폭언이 비수가 되어 날아들었다. 하늘을 날고 싶었는데 다른 것이 날아드는 공포의 시간이었다. 비행 실습이 제대로 될 수 없었다. 3번 정도의 비행실습 끝에 비행교수님은 나를 포기하고 다른 비행교수님에게 보내버렸다. 비행에 재능이 없다는 공식적인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부풀었던 기대가 실망을 지나쳐 절망으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두려움이 앞섰다. 비행을 못 한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꿈을 영영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데서 피어난 것이었다. 달빛도 별빛도 사라져버린 칠흑 같은 밤이었다. 한 걸음을 내디뎠다가는 끝이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쪼그라든 절망 속에서 새로운 비행교수님을 만났다. 아니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게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켜켜이 쌓인 어둠 속에 등불 같았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일명 '천사'로 통하는 교수님이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비행 실습을 했다. 하늘을 나는 즐거움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작은 알 속에 웅크려만 있다가 드디어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점점 비행 실력도 나아졌고 이내 단독비행을 할 기회를 부여받았다. 첫 단독비행은 파일럿에게 굉장히 의미가 깊은데 처음으로 혼자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을 선보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줄곧 비행교수님과 함께 비행하다 처음으로 단독비행을 하게 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어미 새를 떠나 혼자 처음 날아오르는 순간 같았다고 해야 할까?



  의미있는 순간을 더욱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 나만의 의식을 치르기로 했다. 비행가방에 평소 좋아하던 책을 하나 담았다. 어린 왕자였다. 이 책을 쓴 작가 생텍쥐페리도 파일럿이었기에 헌정하는 의미를 담아 함께 날고 싶었다. 책을 하나 더 담았다. 성경이었다. 신실하지 못한 신자이나 감사한 마음을 하늘에 전하고 싶었다.


  첫 단독비행은 아주 짧았다. 활주로에서 이륙한 뒤 직사각형의 가상 서킷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착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벌써 1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다. 처음으로 혼자 내린 랜딩이었다. 첫 단독비행에서의 첫 랜딩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부드럽고 사뿐했다. 활주로에 접지하는 그 순간이 마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자랑하는 폭신한 침대와 같았다고나 할까? 물론 그 날의 분위기와 그 순간의 기분 탓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1,000시간 이상의 비행경력을 쌓아온 지금까지도 내 생애 가장 좋았던 랜딩이었다. 그 날의 경험은 모든 게 하나하나 대단히 인상적이어서 황홀할 지경이었다.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아니 내게도 꿈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 사진설명 - 사진 1) 모든게 어설펐던 학생 조종사 시절

                  사진 2) 비행기를 살펴보시는 ’천사’ 비행교수님

                  사진 3) 첫 단독비행을 마치고 셀레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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