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을 처음 시작하는 햇병아리 파일럿은 비행기의 시동을 걸면 누구나 바보가 된다. 아무리 열심히 비행 준비를 했더라도 열의 아홉, 아니 그 이상의 비율로 바보가 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생소한 환경에 처음 맞닥뜨리게 되면서 잔뜩 긴장한 탓이리라. 열심히 준비했지만 극도로 긴장한 탓에 중요한 시험이나 면접을 망친 경험이 있다면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가 새하얘져서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 바보가 되어버린다.
첫 비행 실습에 함께한 비행교수님은 폭언을 일삼는 분이었다. 가뜩이나 첫 비행이라 잔뜩 긴장해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쏟아지는 폭언은 정말이지 뇌를 완전히 포맷해버리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시간이 흘러 비행기에서 내렸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백지가 되어버렸다. 그때는 정말 완벽한 바보가 되었다. 감사하게도 처음 담당했던 비행교수님이 나를 포기하고 다른 비행교수님에게 보내주신 덕분에 바보 탈출의 기회를 얻었다.
비상하게 머리가 굴러가도 비행을 잘할까 말까인데 어떻게 하면 이 바보 병을 고칠 수 있을까? 은사님이 알려주신 기가 막힌 처방이 있다. 정답은 '소풍 가는 마음으로' 하면 된다. 바보가 되는 원인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과한 긴장 때문이다. 이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관건인데 비행기를 타고 소풍을 간다고 생각하면 긴장이 설렘으로 바뀌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새롭게 만난 비행교수님과 함께하는 첫 비행이었다. 잔뜩 얼어있는 내게 "소풍 가는 마음으로 하면 된다"라고 말씀하셨더랬다. 그 따뜻한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 어쩌면 지금까지 파일럿을 할 수 있게 한 결정적인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그 말씀을 듣고 신기하게도 긴장이 많이 풀렸고 그 후로도 비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첫 단독비행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으로 혼자 비행하는 터라 긴장이 많이 될 법도 했지만, 비행교수님의 말씀을 되뇌며 소풍 가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소풍 도시락을 싸듯 비행가방에 책 '어린 왕자'와 성경을 담았다. 늘 비행교수님의 보호 아래 비행하다 처음으로 혼자 하는 비행이라 잔뜩 긴장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비행 준비부터 '소풍 가는 마음'으로 설렘 한 스푼을 더했더니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비행할 수 있었다.
칼바람이 쌩쌩 불던 한겨울이었다. 그 날은 전주까지 왕복하는 단독비행을 하게 됐다. 약 2시간 반이 걸리는 다소 긴 비행이었다. 영하의 날씨지만 히터가 빵빵하게 작동되기 때문에 별걱정이 없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비행기의 시동을 걸고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나아갔다. 처음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는 별로 춥지 않아 히터를 켜지 않았다. 힘차게 이륙하여 전주가 있는 남쪽으로 향해 나아갔다.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를 지날 때쯤 한기가 점점 느껴져서 히터를 켜기로 마음먹었다. 오른쪽 끝에 있는 히터 스위치로 손을 가져갔다. 보통의 스위치 작동 방법과는 다르게 버튼을 누르거나 위아래로 움직이는 게 아닌 앞으로 당겨야 스위치가 켜졌다. 따뜻한 바람을 예상하며 히터 스위치를 당겼다. 이제 몇 초 후면 기내가 온기로 가득 채워질 것이었다. 늘 그렇듯 인생은 예상을 빗나가기 마련이다. 히터가 고장 난 것이다.
하늘을 나는 냉동실에 갇혀버리고 만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