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유 Apr 09. 2023

배움의 시간을

  모든 것이 얼어가고 있었다. 따뜻한 마음까지도 얼어붙고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추운 날씨여서 그랬는지 쉽사리 따뜻한 바람이 나오지 않았다. 길어야 5분쯤이면 뜨끈한 온돌방이 부럽지 않을 터였다. 너무 추운 날씨에 차에서 히터를 켜 본 경험이 있다면 알 것이다. 히터의 따수운 바람이 곧바로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뭔가 이상했다. 5분이 지나 10분을 향해 가는데도 따뜻한 바람은 커녕 미지근한 바람도 나오지 않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람만 나오는 게 아닌가? 아뿔싸! 히터가 고장이 난 것이다. 2시간 30분의 비행 중 이제 막 30분이 됐는데 히터 고장이라니 상당히 고민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차디찬 한겨울 영하의 날씨 때문이었다. 심각해지는 대목은 그다음인데 비행기를 타고 고도를 높이 올라갈수록 기온은 더 떨어진다는 데 있었다. 고도가 1,000피트(약 300m) 높아질 때마다 약 2도가 떨어지는데 5,000피트(약 1,500m)의 고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라 지상보다 약 10도가 더 낮은 환경이었다. 앞으로 2시간 동안 영하 20도에 가까운 강추위와의 싸움이 예약된 상황이었다. 그 시작은 손 끝이었다. 아무리 손이 차다한들 조종간을 붙잡지 아니하고는 비행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안그래도 추운데 차디찬 조종간을 잡아야 하는 손은 이중고를 겪어야만 했다. 손 끝 다음은 발끝이었다. 신체의 말단에서부터 시작해서 한기가 점점 온 몸을 지배하며 파고 들더니 뼈마디까지 노크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비행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갈까? 얼어 죽지는 않겠지? 군대에선 더한 추위도 겪어봤는데 괜찮지 않을까? 고민 끝에 마법의 주문을 떠올렸다. '소풍 가는 마음'으로 해보자! 조금(?) 추운 날에 가는 소풍이라 생각하고 2시간을 잘 버텨내면 기억에 오래 남을 비행이 될 거라 마음먹었다. (실제로 세 손가락에 꼽는 비행이 되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역시나 극한 상황일수록 시간은 더디 흘러갔다. 2시간이 적어도 4시간처럼 느껴졌다. 차갑게 얼어붙어 가는 손을 녹이기 위해 호호 입김으로 불어가며, 거기에 더해 한 손씩 번갈아가며 엉덩이 밑에 깔기라는 고급 스킬을 써야 겨우 가능한 비행이었다. 어느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비행이 막바지에 들어섰다. 착륙하기 30분 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히터 스위치를 다시 당겨보았다. 이상하게 히터 스위치가 아까보다 더 많이 당겨지는 거였다. 그러더니 뜨끈한 바람이 힘차게 나오는 게 아닌가? 사실 그때까지 히터 작동은 모두 비행교수님이 해주셔서 그 날이 처음 히터를 켜보는 거였는데 스위치는 내 생각보다 더 많이 잡아당겨야 켜지는 거였다. 따뜻한 바람에 꽁꽁 얼었던 몸도 마음도 금세 녹아들어서는 무사히 비행을 잘 마칠 수 있었다.


  만약 히터가 작동이 안 된다고 비행을 포기했다면 커리큘럼이 꼬여서 남은 비행실습을 제대로 마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 겪는 악조건의 상황이라 크게 당황할 수 있었지만 '소풍 가는 마음'을 품으니 모든 것을 얼려버릴 것만 같았던 혹한의 추위도 이겨낼 수 있었고 나머지 비행실습도 잘 마칠 수 있었다.


  비행을 배웠다.


  아니 그보다 마음이 얼지 않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소풍가는 마음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