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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유 Apr 19. 2023

차곡차곡 쌓아간다

  "따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갑자기 화재를 알리는 벨소리가 크게 울렸다. 이제 막 김포공항에서 제주도를 향해 힘차게 이륙한 터였다. 2개의 엔진 중 왼쪽 엔진에 불이 치솟고 있다는 계기 알림이 떴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하려는 승객이 내 뒤에 가득 타고 있었다. 만약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지.. 아찔한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동안 수차례 훈련했던 기억을 살려 비상 절차대로 조작하기 시작했다. 불이 난 왼쪽 엔진의 출력을 죽이고 엔진을 끈 뒤 소화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다행히 엔진의 불이 꺼졌다.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비상상황인건 여전했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김포 타워, 00 에어..."


  관제사에게 비상선언을 하고 김포공항으로 회항하기로 했다. 한쪽 엔진이 완전히 죽었기 때문에 온전한 다른 엔진 하나에 의지한 채 안전하게 비행해야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부분의 비행기들은 2개의 엔진 중 하나가 고장이 나도 충분히 비행이 가능하게끔 설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런 비상상황이라니 너무 가혹했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기장님의 리드에 따라 조금 전 이륙했던 곳으로 다시 착륙하기 위해 노력했다. 비상절차 매뉴얼에 따라 모든 착륙 준비를 마쳤다. 이제는 안전하게 김포공항에 착륙하는 일만 남았다. 점점 고도를 낮춰가며 활주로에 다가갔다. 멀리 보이던 활주로가 다가갈수록 점점 커져가는 게 보였다. 1,000 피트, 500피트, 100피트, 50, 40, 30, 20, 10.. 쿵~ 소리를 내며 비행기는 안전하게 공항에 착륙했다. 엄청난 긴장의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등줄기에 땀이 흥건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까 하는 거 보니까 조작이 미숙하더라. 그렇게 하면 안 돼. 엔진이 하나 죽은 상태에선 조작을 부드럽게 해야지 그렇게 갑작스런 조작을 하다가는 큰일난단 말이야."


  아니 죽다 살아난 사람한테 고생했다는 말은 고사하고 지적이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실제상황이 아니라 시뮬레이터 훈련 중 주어진 비상상황이었다. 에어라인 파일럿은 엔진에 불이 난 상황, 갑작스러운 기상악화로 착륙 중 다시 상승해야 하는 상황, 한쪽 엔진이 갑자기 꺼져서 공중에서 다시 엔진 시동을 해야 하는 상황, 랜딩 기어(비행기 바퀴)가 내려가지 않아서 수동으로 내려야 하는 상황 등등 여러 가지 비상상황에 대비해 시뮬레이터로 훈련을 한다. 코로나로 3년 가까이 쉬다가 다시 비상상황 훈련을 하려니 정말 하나하나가 쉽지 않다.



  "조종사가 사실 공부를 가장 많이 해야 해. 비행기 조종은 기본이고 항공법, 항공의학, 항공기상, 비행기 시스템... 이런 모든 것들을 평생 공부해야 해."


  40년 가까이 비행하시고 은퇴 후 시뮬레이터 교관을 하시는 기장님의 말씀이다. 승객을 태우고 비행을 한다는 건 하늘을 나는 설렘으로만 비행할 수 없다는 가르침이었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꾸준히 공부하며 안전한 비행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에어라인 파일럿의 숙명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나씩 배우고 성장하다 보면 나도 언젠가 지금의 나 같은 신출내기에게 훈화 말씀을 한마디 해줄 수 있는 순간이 오겠지..?




  어쩌다


  하늘을 나는 꿈에 닿아


  소풍 가는 마음으로


  배움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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