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별 생각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성북구에 자리한 어느 작은 책방에 갔다가 게시판에 붙어 있던 이 문장을 보고 홀리듯 책을 집어 왔다. 재미있는 판매 방식이었는데 게시판에 붙어 있는 문장 중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골라 사장님에게 가져가면 불투명한 포장지에 꽁꽁 둘러싸인 책을 건네 받는다. 책값을 지불하고 난 후에야 포장을 열어 무슨 책인지 알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담은 책이 어떤 작가의 무슨 책일까 하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몹시도 자극했다. 그 책은 바로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이었다. 작가가 누구인지 책 제목은 무엇인지 알았다지만 마음에 들어 온 문장은 어디에서 만나게 될지 모르기에 책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사람 냄새가 풍기는 따뜻한 책이어서 참 좋았더랬다. 특히나 이 책을 만나게 한 문장을 담은 글은 유독 인상이 깊어서 가끔씩 문득문득 그 의미를 되새기곤 했다. 내가 죽지 않더라도 말을 주고 받았던 상대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영영 다시 못보게 될 인연일 수도 있으니 내가 건넨 말이 유언이 될 수 있다는 것.
"마지막 말일지도 모르니까."
얼마 전 황석희 번역가님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발견한 마음에 닿는 말. 8년 전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고를 겪고 뼈저리게 후회하며 쓴 글이었다. 원수처럼 지내던 아버지였는데도 사고 일주일 전 전화로 나눈 마지막 대화가 모진 말로 끝나버린 데에 대한 후회가 짙게 전해졌다. 그 후로는 아무리 싫은 사람일지라도 대화의 끝은 후회할 말로 맺지 않는다는 이야기.
예기치 않은 일 때문에 마지막 말을 준비하고 있다. 가시 돋친 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힐때마다 어디선가 이 문장들이 나타나 이야기를 건넨다. 다신 안 볼 사람이라 그 어떤 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 다신 안 볼 사람이라 그 어떤 말도 그 사람에겐 내가 남긴 유언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가시가 돋아났다가 가시를 하나하나 도려냈다가 다시 가시가 돋아났다가 다시 가시를 제거하는 일이 반복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가 받은 만큼만 돌려주는 것은 어떠한가. 적어도 생채기 정도 낼 만큼이라도 가시를 남겨두는 건 어떨까. 악당에게까지 이럴 일인가 싶다가도 이내 마음을 돌이킨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도 누군가에겐 평생 한으로 맺히기도 하는데 하물며 가시를 박아 내뱉는 말은 어떠할까..?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응당 되받아야할 모진 말이지만 그 말이 되려 내게 후회로 남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들이 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들이 돌고 돌아 언젠가 그들에게 뼈져린 후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한 스푼 담아본다.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속이지 않길 바랄 뿐이다.
마지막 말을 무어라 남겨야할까. 어쩌면 마지막 말을 남기지 않는 것으로 무언의 말을 남기는 것도 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마음이 정제되지 않고 있으니 무언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유언을 고민하다 무언이 되어버린 아이러니라니..
유언은 타인에게 남기는 말인 동시에 나에게도 남는 말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