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회사 마케터로 향하는 여정, 면접을 보러 가다
“오 백수 씨 면접 보러 오세요.”
커피 프랜차이즈 회사에 이력서를 넣고 나서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물론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고, 친절한 면접 연락이 왔다. 기쁜 마음에 핸드폰 문자를 닳도록 몇 번씩 다시 읽고, 핸드폰 지도로 면접 보러 가는 장소를 여러 번 검색해 봤다. 그리고 짝사랑하는 남자 조사하듯 그 회사에 대한 기사와 SNS,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지며 읽었다. 면접 준비에 가장 중요한 절차가 있었다. 바로 ‘카페 가기’다. 내가 면접을 보러 가기로 한 회사는 프랜차이즈 커피 회사다. 물론 그 프랜차이즈 카페를 여러 번 가보긴 했지만 ‘면접’을 앞두고 가보는 카페는 또 다르다. 그전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야 했지만, 지금은 면접을 위한 탐문과 조사를 하는 마음으로 가야 했다. 물론 내가 시킬 메뉴도 정해져 있었다.
“신메뉴 ‘베리 베리 개 좋아 스트로베리’ 주세요.”
아 이 카페는 무슨 신메뉴 이름을 이렇게 짓지? 이름을 말함과 동시에 수치심이 밀려왔다. 그래도 무사히 신메뉴를 시키는 데 성공하고, 자리에 앉아 카페를 둘러봤다. 면접을 보기 위해 카페에 오니, 그전까지 카페에 왔을 때와 많은 것이 달라 보였다. 방문한 이들의 연령대, 키오스크, 홍보물, 인테리어, 배달 주문, 사람들이 많이 시키는 메뉴 등등. 신메뉴는 비주얼도 예쁘고 맛도 좋았다. 다만 위에 딸기가 요즘 제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다소 맛이 없었다. 블로그 후기들도 그런 내용이 많았다. 제철 과일이 아닌 걸 사용할 때는 이런 부분을 많이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역시 네이밍이 입 밖에 꺼내기가 오그라드는 건 문제이기는 하다.
만약 커피 회사나 F&B회사에 면접을 보러 간다고 한다면, 그 브랜드에서 하고 있는 매장을 가보고, 신메뉴를 시켜보는 건 가급적 꼭 해봐야 되는 절차다. 시간이 없다면 배달이라도 시켜서 먹어보자. F&B마케팅 면접에서, “지원자가 우리 매장도 안 가봤다고 하더라.”라는 험담을 많이 들었다. 지원자가 브랜드 매장에 가 보면 한마디라도 더 할 말이 생긴다. 그리고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더라도, 우리 브랜드에 관심이 있다는 점은 입증했기에 예의점수는 따고 들어가는 셈이다.
까만 양복을 입은, 팀장이 들어왔다. 그는 연신 안경을 손으로 치켜올렸다. 당시 신입이던 나는 그분의 손짓 하나하나에 극도로 주목했다. 엄청 긴장되었던 기억이 난다. 까만 양복을 입은 은색 안경테의 팀장은 냉정하게 질문을 했다.
“신메뉴를 주제로 기사를 하나만 써본다면 어떻게 쓸 거예요?”
바로 이때다. 내가 내돈내산 해서 신메뉴를 먹었다는 어필을 할 수 있는 기회다. 나는 이번에 나온 신메뉴 네이밍이 재미있다고 이야기했다. 며칠 전 카페에 방문했고, 신메뉴를 먹어봤는데 네이밍이 너무 귀여운 어감이라 입밖에 내서 말하기 민망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점이 온라인에서 바이럴 되고 있는 거 같다면서, 이런 점을 살려서 기사를 써봐도 좋겠다고 했다. 화제 되는 어감 중독되는 말투의 네이밍을 주제로 기사를 쓰고 싶다고 했다.
신메뉴를 먹어봤다는 말에 팀장의 눈이 커지는 게 느껴졌다. 그는 신메뉴 맛은 어땠는지, 매장 가보니 어땠는지 등등을 물어봤다. 그리고는 가르쳐 주는 것처럼 한 마디 덧붙였다.
“아이폰과 갤럭시의 비교 기사를 쓰면,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생기죠. 타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는 힘들어도, 비교 기사를 쓰는 방식도 좋습니다.”
비교 기사를 쓰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면접을 통해 상대방이 나를 채용해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지원자에게 한 수 알려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이후 일을 해봤을 때 팀장은 좀 츤데레 같은 사람이었지만, 일에 열정적이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했다. 이후로는 회사 내에서 적극성을 어떻게 어필할 것인지, 인사이트는 어떻게 얻는지, 나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인성적인 부분의 질문이 나왔다. 초반에는 좀 긴장했지만, 분위기가 무겁지는 않아서 긴장이 풀렸고 점차 편하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삶이 그렇게 쉽게 풀리기만 하면 재미없지 않은가?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 좋아 보이던 안경테 팀장의 인상이 달라진 건 하나의 질문이었다. 그는 방심하게 한 뒤 뒤를 베는 닌자처럼 갑자기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다이어트하는 사람이 있겠죠, 그 사람이 왔을 때 케이크를 팔아본다면 뭐라고 할 거예요?”
너무나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다이어트하는 사람이 케이크를 왜.. 먹지?라고 생각했지만 질문의 근원을 물어보는 일은 면접에서는 금기였다. 뭐 내 친구였다면 “야 다이어트하면서 카페에 왜가! 먹지 마!”라고 했겠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뭐 그건 타깃을 바꾸라는 소리인데, "그런 걸 왜 물어보세요?"라든가 "타깃을 바꿔보는 건 어때요?"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우선 질문이 너무 당황스럽고 생각이 안 나서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고민을 해봤다. 그동안 읽었던 여러 권의 마케팅 서적들과 마케팅 대가들의 말을 떠올리며… 음… 대가들아 나에게 힘을 줘! 어떻게든 임기응변을 짜내야 했다.
“저라면.. 오히려 다이어터들에게 주어진 압박감을 이용할 것 같아요 OO브랜드는 재미있는 마케팅도 많이 하고, 네이밍도 센스 있게 많이 짓는데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홍보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치팅데이’ 아니면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식으로 이 케이크를 홍보할 것 같아요. 배달의민족도 그런 식으로 홍보를 많이 했고요. 실제로 0 칼로리가 될 수는 없겠지만, 또 달콤함이 주는 매력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먹고 힘내서 내일부터 더 열심히 다이어트하자 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주면서 다이어터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홍보문구를 만들 것 같아요.”
면접에 정답은 없고, 좋은 답변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상황타개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시금 떠올려 보면, 저칼로리의 음료와 세트를 만들자고 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여하튼 나는 홍보 SNS분야에 지원한 것이기에 횡설수설 대답했다. 면접관 입장에서는 질문의 답이 궁금하다기보다, 지원자의 대처 능력을 본 것 같다. 회사생활을 하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있다. 그때 이 사람이 어느 정도로 자신의 생각을 패기 있게 말하고, 어떻게 상황에 대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했던 질문이 아닐까 싶다. 이 대답에 별 코멘트는 없었고, 그 순간이 가장 아찔한 순간으로 기억이 난다.
“엄마 또 망했어.”
면접에 나오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망했다고 말했다. 케이크 질문 때문에 면접이 망했음을 확신했다. 망할 놈의 케이크를 왜 다이어터한테 판단 말인가,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은 카페에 출입을 금지시켜야 한다. 프랜차이즈 카페에는 다이어터 출입금지 법을 발의시키자. 물론 지금 같으면 “이 회사 질문 이상하게 하네.”라고 하고 국밥이나 먹으러 갔을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먹고 나니 세상에는 더 많은 회사가 있고, 세상이 넓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더 어렸고 여렸고, 자신감도 없어서 또 망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30대가 된 지금 떠올려보면, 나는 대학 입시 면접에서도 “망했다.”라고 생각했고, 다른 많은 순간에도 “망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론은 망하지 않았다. 압박 면접을 한 것은 오히려 내가 마음에 들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리고 면접관의 표정이 좋지 않아도 지원자는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러니 남의 반응을 보며 너무 지레짐작하거나 걱정하지 말자. 걱정하는데 소중한 인생을 쓰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이다. 망했다고 생각하며, 또다시 카페에 가서 열심히 이력서를 쓰고 있는데. 합격이라는 전화가 왔다. 그렇게 나는 카페로 출근하는 백수에서, 카페 마케팅을 하러 출근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