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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Aug 28. 2018

내가 사랑한 숙소들

지금까지 100여 곳은 거뜬히 넘는 다양한 숙소들을 다녔다. 나는 새로운 숙소를 찾고 그곳을 경험하는 걸 정말 좋아한다. 때론 숙소가 궁금해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한 도시에서 한 달을 지내면서 거의 매일, '1일 1 호텔 프로젝트'라고 명명할 만큼 자주 숙소를 바꾸는 통에 가방을 풀지 않고 필요한 것만 쏙쏙 꺼내 사용하는 데도 도가 텄다. 


여행의 숙소들은 특급 호텔에서부터 부티크 호텔, 게스트하우스, airbnb, 서핑 캠프까지 형태는 가지각색이다. 무미건조한 체인 호텔보다는 독특한 컨셉의 이미지나 스토리에 끌린다. 관광지나 도심에서 가까운 위치는 편리할 때도 있지만 숙소를 중심으로 여행하는 내게는 우선순위에서 늘 뒤쪽이다. 


사랑해 마지않았던 숙소들은 어떤 특성들을 가지고 있을까? 


1. 다른 사람의 흔적이 없다. 

청결은 가장 기본 전제 중 하나다. 욕조에 머리카락 하나가 떨어져 있거나 어디선가 하수구나 담배 냄새가 올라온다면 아무리 훌륭한 호텔이어도 일단 마이너스에서 시작한다. 보송보송한 침구, 폭신한 수건과 샤워 가운, 잘 마른 유리잔 등은 이 숙소가 잘 관리되고 있으니 아무 걱정 없이 하루를 보내도 된다는 일종의 신호다. 서핑 때문에 강원도 일대를 자주 가면서 아무래도 호텔보다는 게스트하우스, 펜션, 민박을 이용하게 되는데, 청결에 대한 다른 기준(!)에 놀랄 때가 많다. 베개 커버와 시트, 수건을 챙겨 다니는 게 유난스러울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의 체취를 굳이 확인하며 내 잠을 망치고 싶진 않다.  



2. 작은 디테일까지 아름답고 편안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벽의 컬러와 질감, 실내를 은은히 비추는 조명, 머리맡에 걸린 그림, 가구의 재질과 배치 등이 그 방의 무드를 결정한다. 최소 10시간 이상을 보내는 곳인 만큼 심미적인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여러 호텔들을 다니다 보니 특히 방 안에 취향이나 그 지역의 바이브를 드러내는 작은 디테일이 공간의 느낌을 확연히 바꾼다는 걸 알게 됐다. 오너나 로컬 아티스트의 작품(사진이나 그림), 전통적인 조명 갓과 소품 등이 그 숙소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3. 그 공간만이 주는 경험이 있다. 

정글 같은 수영장, 가지를 휘날리는 버드나무 정원, 강을 따라 난 산책길, 밤새 DJing이 이어지는 지하의 바... 숙소를 기억하게 하는 강렬한 한 방이 있다. 잠만 자고 나오는 곳이 있는가 하면 체크인 가능한 순간부터 종일 그곳에 머무르며 놀게 되는 곳이 있다. 엔터테이닝한 숙소들은 그 자체로 목적지가 되기도 한다. 시설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즉, 공간을 흐르는 음악과 향기, 직원들의 태도, 그곳이 표방하는 가치 등이 어우러져 독특한 인상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 곳에서는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트라이브(종족)의 일원으로 하루를 보내는 느낌을 받는다.  



4. 훌륭한 식음료 콘텐츠가 있다. 

호텔이라면 웰컴 드링크나 조식 정도는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침대에서 뒹굴대다 출출할 때는 맥주와 룸 서비스도 필요하다. 이때 식음료의 옵션과 맛에 따라 감동과 실망이 갈린다. 훌륭한 바리스타가 있는 어느 호텔에서는 체크인 후 카페로 안내해 원두를 갈아 갓 내린 커피를 선사했다. 도착하자마자 마음을 뺏길 수밖에 없다. 반면, 쾌적한 공간의 경험과 달리 눈살이 찌푸려지는 룸 서비스들도 더러 있었다. 특급 호텔들이야 유명 셰프들의 레스토랑이 즐비하지만 작은 호텔의 경우 근처 맛집과 연계해 식음료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도 아주 좋은 전략인 것 같다.  



5. 지역성을 갖췄다. 

조식에서 지역 특산물로 만든 음식을 내놓거나 전통 음식을 두루 경험할 수 있는 뷔페가 있으면 내가 그 지역에 머무르고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지역 주민이기도 할 서버들이 음식 설명도 함께 곁들인다면 식사뿐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순간이 된다. 지역 교류의 장으로 로비를 내어 준 Ace 호텔이나 동네 목욕탕과 식당을 체험하게 해 호텔의 경계를 확장시킨 도쿄 하나레 호텔처럼 앞으로 지역성을 잘 살린 공간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어딜 가나 똑같은 프랜차이즈보다는 지역의 스토리가 담긴 콘텐츠들이 여행을 완성한다는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지역과 그곳에 뿌리내린 숙소는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쓰고 보니 특성들은 단순해 보이지만 다 갖추기엔 만만치 않은 일인 것도 같다.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레는 맘으로 숙소를 검색했던 것처럼, 머물면서 너무 좋았던 숙소들을 기록해봐야겠다. 이 글을 쓰느라 구글 포토를 뒤적여보니 왜 이렇게 사진을 대충 찍어뒀는지 안타까운 맘을 금할 수 없지만 한편으론 대책 없이 또 설렌다.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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