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로 증명한다」 서문
범위를 좁힌다. 라틴어니, 독일어니 하는 어원을 찾는 수고를 제외한다.¹ 밤을 지새워도 모자랄 노동의 신성함에 관한 논의도 생략한다. 그저 일하는 우리를 돌아보는 정도로만 그 실체를 쫓기로 한다.
그런데 그조차 그다지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이제 의미의 분화가 이루어질 대로 이루어져, 같은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일의 의미는 각자에 따라 총천연색이기 때문이다. 너무 넓은 공통속성을 피하고, 너무 좁은 개인의 사정을 제외하면, 겨우 하나가 남는다. 바로 우리이다. 우리는 일을 한다. 아니다. 조금만 바꾸어 부르자.
우리가 일을 한다. 보조사 ‘는’을 주격 조사 ‘가’로 달리 부름은 제법 큰 차이를 낳는다. 일이 돌아가는 동력으로 소모되는 우리가 아닌,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아무 존재도 아닌 일을 본다. 그렇다면 주체적으로 일을 하는 내가 하기에 따라, 나는 얼마든지 이 일의 주인이 된다. 나를 증명할 수도 있다. 구구절절한 자기소개는 필요 없다. 나는 일로 증명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오늘은 앞으로 본 연재의 큰 방향이 될 3가지 맥락만 전한다.
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를 대하는 마음가짐. 또는 그 마음가짐이 드러난 자세. ²
사실 거의 전부이다. 이 ‘태도’라는 말속에는 마음과 자세가 모두 들어가는 탓이다. 그렇다면 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하면 좋을까?
우선 마음가짐으로써의 ‘태도’를 보자. 자신감이 있으나, 서두르지 않는다. 긍정적이라기보다는 굳이 부정적이지 않다. 빼어난 타인을 시기하지 않고, 배우려 든다. 엄격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페이스를 알고 있으며, 이를 지켜나간다. 성장을 위한 단련의 과정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냥 하는 것이라 여긴다. 대체로 자신을 신뢰하나, 본격적으로 업무를 이행할 때면 자신을 의심한다. 자신감이 있으나 과하지 않고, 큰 꿈을 꾸지만 조바심 내지 않는다.
다음으로, 드러난 자세로써의 ‘태도’를 보자. 사실 이는 애써 볼 것도 없다. 보인다. 마음가짐이 자세를 만드는 탓이다. 우선 주변을 정돈한다. 자주 쓰는 도구는 손 닿는 곳에 자리한다. 폴더의 구성은 프로젝트 단위로 동일하게 구성한다. 시켜서 하는 일이지만, 안 시켰으면 서운했을 법하게 해내고자 한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먼저 구분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조금 새롭게 하는 방안도 떠올려본다. 할 수 없는 일은 주저하지 않고 도움을 구한다. 잠시 모니터를 한 발 치 떨어져 바라본다. 가끔은 지그시 눈을 감는다. 확신이 들면, 주저하지 않는다. 끝내는 것이 아닌,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듯하지만, 유연하게 에너지를 분배하기도 한다. 꼼꼼하게 돌아보고, 결과물은 백업해 둔다. 동료에게 전할 적에는 그 사람이 되어 본다. 누가 보더라도 그는 일을 깨뜨려서는 안 되는 달걀을 다루듯 한다.
이런 '태도'에 관한 문장들을 길게 늘여 쓴 글을 추후 전할 것이다.
이제 일을 한다. 모니터 속 타이핑을 위한 자리에 커서가 깜빡인다. 그 프로그램 하나하나를 잘 다루는 일도 중요하다. 그런 도구들이 각기 지니는 의미를 고찰해보는 일도 재미있겠다. 하지만 그 이전에 고찰해야 할 것이 있다. 나의 일을 진단한다. 내가 하는 일의 고객, 목적, 5년 후의 모습 같은 것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나의 방향을 설정한다. 아주 멀리는 말고, 짧으나마 지향점을 두고 나아간다.
개별 업무 단위로도 살필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이 작업은 왜 하나?”,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되나?”,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라며 되뇌는 질문은 언제나 유효하다. 나름의 답은 메모하여 눈에 잘 띄는 곳에 전시해둔다. 보여주기 위함은 아니다. 물론 수정은 가능하다. 기획이라고도 부른다.
할 일을 나열하고, 구조화해본다. 나의 일과 동료의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논의하여 정해야 하는 것들을 우선 추린다. 자료를 참고할 적마다 출처를 따로 메모해 둔다. 프레임 워크를 즐겨 활용한다. 나의 결과물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도구라면 다른 것도 괜찮다. 자주 쓰는 단축키는 이미 손에 익어 있다. 익혀야 하는 프로그램은 필요한 만치만 빠르게 습득한다. 다른 이에게 제출하는 나의 결과물이 부끄럽지 않게 다듬는다. 시각적으로도 세련되면 좋을 일이다.
'실행' 역시 태도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짚어볼 것이다.
소위 ‘일잘러’가 되면 퇴근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며 홍보하는 강의를 접한다. 과한 마케팅과 거짓말은 구분하기 어려워진 것일까? 얼핏 듣기에 솔깃하지조차 않지만, 현실과는 저만치 멀어진 이들은 자신의 작명 센스에 만족했으리라….
일을 잘하면 일이 몰린다. 칼퇴근은커녕, 결국 모든 일이 수챗구멍에 빨려 들어가는 폐수 마냥 밀려 들어온다. 그런 이들에게 ‘더 일잘러’가 되라며 이런저런 스킬을 알려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오히려 들여다 볼 대상은 '관계'이다. 「나는 일로 증명한다」가 자질구레한 사내의 정치적 관계들로부터 나름의 자유를 획득함을 지향하고는 있으나, 조직 구성원과 유기적으로 엮이지 아니하고 독야청청 서 있는 일잘러를 나는 본 일이 없다.
상사와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는 일이 어렵지 않다. 일만 잘하는 업무 기계가 아닌, 언제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더한다. 상사를 무조건 어렵게 대하지도, 자신의 장애물로 여기지도 않는다. 동료와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업무의 영역에서는 단호함을, 업무 외적으로는 유연함을 갖춘다. 부탁을 받으면 잘 들어주면서도, 결코 쉬운 사람이 되지 않는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또 격려하는 말과 행동에는 아낌이 없다. 농담은 가려서 한다. 애매하면 침묵한다. 그렇게 대화하고 행동하며,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지만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관계'까지 시간을 두고 살펴보겠다.
일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고객지향이다. 기실 일은 어찌 보면 남을 위해 하는 것이다.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방법론은 이미 신줏단지처럼 받들어져 있다.
다음은 일을 수행하는 나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도이다. 주어진 일을 적당히 해내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내가 업무의 주인이 되고, 내가 결과에 책임을 지며, 결국 내가 성장해 나가는 원동력으로서 일이 기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관점은 양립 가능하며, 심지어 대척점에 있지도 않다. 일의 주인이 되는 이의 눈은 결국 고객을 바라보고 있다. 서비스를 구입하는 고객은 물론, 주변의 고객인 동료까지 모두 염두한다. 이러한 가운데 자신의 성과로 자신을 증명한다. 본 「나는 일로 증명한다」에 실을 연재 글은 이런 이들의 일하는 방식을 비추어, 성장하고자 하는 당신을 도울 것이다.
일은 더는 무거운 짐이 아닌, 나의 다른 이름이 될 것이다. 나는 일로 증명한다.
참고
1. 한국일보, 2018.03.29,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아침을 열며, 노동의 의미사(史) 중
- "라틴어 labor와 독일어 Arbeit는 고생과 역경을 뜻한다(‘노동이란 무엇인가’‧파이카)"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3291599061059
2. 표준국어대사전, ‘태도3 (態度)
-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View.do?word_no=496650&searchKeywordTo=3
이미지 출처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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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slickwords.com/attitude-is-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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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slickwords.com/actions-prove-who-someone-is-words-just-prove-who-they-want-t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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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slickwords.com/you-teach-people-how-to-treat-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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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slickwords.com/instagram-quote-ma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