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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인분공부 Mar 10. 2021

창의성을 지휘하라

디즈니 픽사 창조성의 원천

아이들과 함께 <소울>을 보았다. 코로나 상황에서 그나마 영화관이 안전한 것 같아 볼 만한 영화가 나오면 아이들과 보러 간다. 얼마 되지 않는 관객들은 띄엄띄엄 앉고 영화관 측 설명에 따르면 공기도 외부와 계속 순환된다고 한다. 


역시 픽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처음 도입부에서는 이렇게 심란한 주제를 다루다니 애들이 따분해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창작자들의 재능과 오랜 노하우는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스토리텔링과 예술적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문자 그대로 상업성과 작품성의 완벽한 조합이다. 픽사가 소속된 디즈니의 로고송을 재즈풍으로 변형해서 들려주는 등 디테일 하나하나에서 픽사의 재치와 정성이 느껴진다.


예술가나 연예인이 되려는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순수하게 응원만 하기란 어렵다. 변호사나 조종사, 의사 같은 직업은 경쟁률이 아주 높은 직업이지만 그래도 정해진 경로가 있어서 그에 맞게 준비하면 되고 안 되면 결국에는 포기하게 되지만, 예술가나 연예인은 어떻게 해야 그걸로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적인 차원에 이르게 될지 언제 포기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직업적으로 종사해도 상위 1%에게 부와 인기가 집중되는 직업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가족의 희생이 따른다. 영화에서도 재단사 어머니가 재즈 뮤지션 아버지 대신 가족을 부양했고 아들도 안정된 삶을 버리고 재즈에만 몰두하려 하자 만류한다. 


영화는 쉬운 결말로 치닫지 않는다. 음악도 소중하고 매일의 일상도 소중하고 건강보험과 연금도 소중하다. 최고의 연주를 한 짜릿한 경험은 영혼을 고양시키지만 매일 이어지는 정해진 일상은 그대로다. 소중한 것 단 하나 때문에 나머지 인생을 송두리째 포기하는 건 손에 쥔 행복마저 내팽개치는 일이다. 맹목적으로 하나의 목표만 추구하다가 불행해진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삶의 목적이란 어떤 직업을 갖는 것도 아니고 어떤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아니다. 그 직업을 갖는 순간, 그 사람과 결혼하는 순간,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닫게 된다. 인생은 그런 것들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다양하다. 


어려서부터 재즈에 사로잡힌 주인공이 나이 들어 아저씨가 될 때까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은 운이 나빠서인지 스타성이 부족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 뮤지션으로 성공하진 못했어도 낮에는 밴드부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저녁에는 클럽에서 연주하며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커다란 행복과 감동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는 쓸모 없는 인생이라고 스스로를 비하하고 소중한 일상과 인연들을 하찮게 여기며 인생을 낭비했다. 

피아노 레슨을 1년간 중단했던 첫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했다. 확실히 영화를 본 효과가 있었다. <소울>은 음악의 정수를 아이들에게도 전달해 주었다. 



픽사의 창업자이자 디즈니의 픽사 인수 후 픽사,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사장을 겸임했던 에드 캣멀의 <창의성을 지휘하라>는 아주 간단한 프로포절만 있을 때 계약한 책이다. 높은 평가를 받고 꾸준히 사랑받는 책이지만 계약할 때는 애드 캣멀과 픽사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픽사가 스티브 잡스의 영혼이 녹아 있는 회사고, 당시 그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기 때문에 계약한 책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픽사는 잡스가 애플에서 밀려났을 때 투자해서 공들여 키운 기업이다. 


이 책은 창조성을 추구하는 모든 기업, 특히 문화산업 종사자에게 깊은 영감을 준다. 애드 캣멀은 픽사의 창의성의 근원이 "솔직함"이라고 말한다. 픽사의 모든 영화는 초기에 "더럽게 형편없지만" 스토리가 매끄러워지고 캐릭터가 최적의 모습을 갖출 때까지 솔직한 피드백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멋진 작품들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솔직한 피드백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그냥 사람들을 앉혀놓고 의견을 얘기하라고 하면 솔직한 피드백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놓는 의견에는 집단 내의 역학 관계가 작동한다. 단순히 상대방이 상처받을까 봐 피드백을 삼가는 경우도 흔하다. 인간의 취약성 때문에 어떤 의견이 채택되는가는 정치적인 문제가 되어 버린다. 애드 캣멀은 리더의 역할이 바로 이런 피드백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섬세하게 조율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조직문화가 당연히 중요하다. 직원들의 능력을 서로 비교하며 끊임없이 경쟁시키는 회사에서는 솔직한 피드백이 직접적인 상처가 되므로 사려 깊은 사람들일수록 입을 다물게 된다. 모든 직원이 각자의 가치로 회사에 기여하고 있고, 어떤 의견이 틀렸거나 어떤 작업물이 현재 불충분한 상태라는 것이 한 인간의 가치를 재는 척도가 아니며, 다른 의견을 얘기하는 것은 그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상대방의 성장을 돕는 일이고, 모든 직원은 나날이 발전하는 존재라는 믿음을 공유해야 한다. 이게 문자 그대로 쉽지 않은 것은 사람들이 이미 이전 직장과 다른 사회생활의 경험을 통해 여러 부정적인 관성과 상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 권력욕이 강하거나 자존감이 낮거나 메타인지가 낮은 사람들은 인간적 약점 때문에 솔직한 피드백을 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사람들이 솔직하게 의견을 얘기하더라도 수렴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직원들을 성장시키는 좋은 의사결정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모든 의견이 투표처럼 똑같이 1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전문적인 일이라면 전문성에 따른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전문성을 중시하고 탁월함을 추구하는 기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각자 소신대로 일하는 게 아니라 치열한 논의 과정을 거쳐 최선을 찾아가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픽사에서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난 몇몇 인사들이 피드백 과정에서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한다고 한다. 픽사처럼 선수들이 모인 회사에서도 이렇게 치열하게 작품을 개선하고 또 개선하는데 일반 회사는 더욱 분발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기업의 인수합병이나 부서 통합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전혀 다른 두 조직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시너지 효과는커녕 각자 지니고 있던 장점이 없어지거나 그냥 한쪽이 다른 한쪽에 흡수되며 정체성이 사라진다. 두 조직의 매출이 그대로 합해지는 게 아니라 60, 70% 정도로 축소되기도 한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한 후 에드 캣멀이 어떻게 디즈니 내에서 픽사 스튜디오의 독자성과 창의성을 지키는 한편, 올드한 디즈니를 성공적으로 혁신했는지 다루고 있다. 에드 캣멀은 두 조직을 기능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장르와 상관없이 각자 최고의 작품을 만들도록 허용했다. 그 결과 픽사와 디즈니는 장르와 시장이 뚜렷하게 구분되지는 않지만, 각각 독창적인 애니메이션 세계를 보여준다. 


창작자 출신의 성공한 경영자인 에드 캣멀은 회사의 관료주의와 재무적 성과 위주의 경영이 창작자들을 얼마나 압박하는지도 잘 알고 있어 이 문제를 조율하는 데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다. 창의성이 재무적 성과와 따로 놀아도 안 되고, 숫자로 창의성을 억압해서도 안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수적인 이 두 요소는 경영자가 자나깨나 고심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에드 캣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울>의 창작자는 악역이 없는 이 애니메이션에서 회계사와 헤지펀드 매니저를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아마도 비용 통제와 재무적 성과에 대한 압박을 이런 식으로 '복수'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애니메이션은 재무적으로 대박이 될 것임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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