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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인분공부 Apr 07. 2021

잘되는 회사의 16가지 비밀

평범한 직원들을 업무의 달인으로

출판산업은 1%의 예외가 전체 시장을 지배하는 극단의 왕국, 블랙스완의 세계다. 출판사에서는 늘 대박이 될 거리를 잡아오라고 구성원들을 압박한다. 처음부터 대박이 될 가능성이 높은 타이틀은 경쟁률이 높다. 외서는 선인세가 높고, 국내서는 저자가 높은 인세 외에 지분을 요구하거나 대대적인 마케팅을 요구하기도 한다. 장기적 수익과 큰 매출을 기대하는 시리즈는 초기 비용과 인력이 많이 투입된다.

 

출판사는 때로 리스크를 짊어지고 큰 투자를 하기도 하지만, 자금력이 막강한 회사라도 모든 도서에 큰 리스크를 걸 수는 없다. 그래서 중소형 출판사든 대형 출판사든 기대 수익이 적더라도 최소한 적자는 보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있는 책들을 다수 출간한다. 시장에 대해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면, 적은 비용을 들여 고정 수요가 있는 도서들을 출간함으로써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매출을 일으킬 수 있다.

 

나는 항상 대형 아이템과 작지만 쏠쏠한 아이템을 병행해서 기획해 왔다. <잘되는 회사의 16가지 비밀>은 바로 후자에 속하는 책이다.

 

나는 외서 자료를 검토하던 중 이 책의 개정판 정보를 보았다. 중소기업 경영자와 관리자의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인데 전면개정판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영미권 도서로서는 아주 얇은 분량에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고 하니 괜찮은 책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극소수의 책들만 개정판이 출간되지만, 영미권에는 오랫동안 시장에서 자리잡은 각 분야의 스테디셀러들이 10년쯤 지나면 전면개정판이 출간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표지만 바꾸면서 개정판이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오래된 구간의 개정판이고 아무도 관심없는 책이라 최저 수준의 선인세로 계약했다.

 

이 책의 원제는 <Why Employees Don't Do What They're Supposed to Do and What to Do about It>이다. 워낙 쉬운 영어로 되어 있어 원서로 읽어도 좋다. 내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아주 정직하고 상세한 제목이다. "왜 직원들은 제대로 일하지 않을까, 제대로 일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당연히 이 제목 그대로 책을 낼 수는 없다. 일단 직원들의 심기가 불편할 수 있는 제목이고, 우리나라에는 부정적인 제목은 무조건 망한다는 징크스가 있다. 긍정적으로 바꿔야만 했다. 그래서 이렇게 바꿨다. <잘되는 회사의 16가지 비밀 : 평범한 직원들을 업무의 달인으로 바꾸는 조직관리법>



저자가 유명한 것도 아니고 아무런 화제성이 없는 책을 팔기는 어렵다. 자기계발서나 처세서라면 먹힐 만한 콘셉트로 포장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경영관리를 다룬 책을 그렇게 포장하기도 어렵다. 국내 저자라면 출판사와 함께 열심히 발로 뛰며 홍보할 수도 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강연과 교육을 많이 하는 경제경영 오피니언 리더를 번역자로 섭외해서 번역과 홍보, 판촉을 동시에 하려고 했다. 처음 섭외하려던 인사는 번역은 직접 하지 않고 감수만 하는 조건으로 높은 인세를 요구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역자를 찾았다. 새로 섭외한 번역자는 코칭업체였는데 이런 책을 번역하는 것이 사업에 도움이 된다고 여긴 것 같다. 실제로 그 업체는 이 책의 콘텐츠를 임원 코칭 프로그램에 활용했다. 이 책은 1, 2년 사이 1만 부 넘게 팔렸는데, 저렴한 선인세에 비하면 좋은 성과였다. 워낙 얇은 책이라 번역비, 제작비, 인건비도 적게 들었다. 


이 책이 마음에 든 것은 일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을 직원 탓으로 돌리지 않고 처음부터 일이 제대로 되도록 관리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하는 업무의 대부분은 별로 전문적이지도 않고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항상 사람 탓만 한다. 능력이 부족하다거나 태도가 틀렸다는 식이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자신이 할 일과 우선순위를 잘 알고 있을 것으로 가정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러주지 않으면 직원들은 각자 맘대로 일을 하게 된다. 특히 직원들은 회사 차원의 우선순위를 잘 모르거나 전체 프로젝트의 극히 일부만 맡고 있는 자신의 입장에서 우선순위를 정한다. 그러므로 관리자는 늘 회사의 우선순위에 대해서 직원들과 소통해야 한다. 평소에 직원들에게 유형별 문제 대처법을 숙지시키고, 직원 수준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관리자가 즉각 개입하여 해결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직원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관리자가 불필요하게 개입하거나, 반대로 직원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데도 담당자에게만 맡기고 해결하라고 재촉하기도 한다. 


집안일이나 질병 등의 개인사정 때문에 업무에 지장이 생기기도 한다. 회사 차원에서 개인사정에 대해 어떻게 배려할지 기본적인 방침을 마련하는 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특정 직원에게는 아주 관대하면서 다른 직원에게는 사정을 봐주지 않는 불공정성이 생긴다. 유난히 요구사항이 많은 직원들에게만 특혜를 주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나는 반반차를 허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는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딱 2시간만 필요한 일들이 많다. 치과에 간다거나 집의 가전제품이 고장나 수리기사를 부른다거나 녹색학부모회 활동을 한다거나 등등의 아주 다양한 케이스가 있다. 나는 직원들이 되도록 정시에 퇴근하도록 하되, 그런 개인사를 반반차를 이용해서 해결하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는데, 나와는 달리 직원들이 매일 야근을 하길 권장하면서 대신 그런 개인적인 사정이 생기면 몇 시간씩 봐주는 관리자들도 있다. 


놀랍게도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해고 통보를 받을 때 처음 듣는 직원들도 있다. 평소에는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하지 않다가 갑자기 당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며 총체적으로 틀려먹었다며 해고를 통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해고하기 어려우므로 그런 경우 권고사직을 유도한다. 제일 비열한 건 그만두라고 직접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으면서 이래서는 곤란하다, 계속 이런 식으로 일할 건가, 분발해라, 긴장해라 하는 식으로 추상적인 말장난으로 사람을 고문하는 일이다. 구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해야 고칠 수 있는데 그러지는 않으면서, 그만두라고 하면 나쁜 사람이 되니까, 계속 직원을 이렇게 비난하고 저렇게 비난하며 못살게 구는 것이다. 나는 이런 관리자들을 주변에서 종종 보았다. 



처음부터 하나하나의 업무에 대해 직원에게 구체적인 피드백을 해야 한다. 문제가 있더라도 계속 지적하고 시정할 기회를 주다가 도저히 안 되면 그때는 바로 사직을 권유해야 한다. 양측 모두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는 건 손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쁜 상사들은 구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하지도 않으면서, 직접 사직을 권고할 책임감도 없는 경우가 많다. 자신도 업무 장악력이 부족해서 부하직원이 어떻게 해야 성과를 높일지 모르니 가르쳐줄 수도 없을 뿐더러 자기 손에 피 묻히기 싫고 끝까지 자신은 좋은 사람이라는 자아상을 깨뜨리기 싫어서다. 이런 이유로 다른 직원에게 피해를 주는, 정말 문제가 있는 직원도 해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애초에 회사 탓이다. 채용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능력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 직원이라도 일단 업무 능력을 제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나는 직원의 능력이 부족해서 해고해야 한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 그 직원은 다른 팀 직원이었다. 나는 그 직원을 보면서 나이도 젊은데 저렇게 재능이 없는 일을 왜 할까 안타까웠다. 어찌나 업무에 문제가 많은지 그 직원의 부실한 업무에 대해 관련 부서끼리 종종 모여 대책회의를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그 직원에게 직접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 참 이상하다고 생각한 나는 그 직원에게 "이 일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해요?"라고 딱 한 마디 했는데 마침 부서개편 상황 속에서 그 직원이 사직했다. 나는 상사가 아니었으므로 그 직원은 내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그 말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사람들이 나를 비난했다. 나는 진짜 잘못한 사람은 그 직원의 상사라고 생각했다. 업무에 대한 정확한 피드백을 하지 않아 그 직원은 가망없는 일에 2, 3년의 귀중한 세월을 낭비한 것이다. 그 직원에게 커피를 사주며 퇴사하고 뭘 할 거냐고 물었더니 어학연수를 떠난다고 했다. 유복한 가정 출신인 것 같아 참 다행이라고 느꼈다. 


아무튼 내가 보기에 능력 때문에 누군가를 해고해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 회사생활 경험으로는 해고해야 할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다. 동료들이 일하는 걸 방해하는 사람들, 동료를 왕따시키거나 이용하거나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사람들, 회사에서 패거리를 지어 사내정치를 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해고하거나 동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는 한직으로 보내지 않으면 멀쩡한 사람들이 먼저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제대로 일하도록 관리하라는 이 책의 가르침에 큰 영향을 받았다. 나는 해체된 팀들에 남겨진 팀원들이 모인 팀을 이끌며 좋은 성과를 올리기도 했고, 공채로 입사해 상사도 선배도 없이 알음알음 일하던 직원들을 훈련시켜 업무 효율을 대폭 높이기도 했다. 편집자가 모두 그만둔 회사에서 몇 달간 혼자 모든 업무를 해내며 채용한 직원들로 단기간에 회사를 정상화하기도 했다. 나는 직원 탓을 한 적이 없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출판사는 별로 좋은 직장이 아니라서 최고의 인재는커녕 웬만한 숙련 인력도 뽑기 어렵다. 나는 항상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을 추구했다. 내가 이끌 때 고용 유지와 매출 실적 면에서 우수했던 팀들이 내가 그만두고 나면 크게 흔들리며 여러 명이 그만두었다. 내가 팀을 이끌 때 상대적으로 안정되었더라도, 종국에는 경영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회사에서 관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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