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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인분공부 Sep 07. 2020

야근의 블랙홀에서 탈출하기

직장인들, 특히 편집자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으로 과도한 야근이 꼽힌다. 야근을 많이 한다고 일을 열심히, 잘한다고 볼 수도 없고, 일을 항상 정시에 끝낸다고 일을 효율적으로 잘한다고 볼 수도 없다. 야근을 많이 하는데 업무량과 업무 성과는 매일 정시에 퇴근하는 사람보다 못한 경우도 있고, 일을 항상 정시에 마치지만 결과물이 2% 부족해 아쉬운 경우도 있다.     


창의적인 일을 하면서 효율성만 내세울 수는 없다. 업무시간에 아무리 효율적으로 일했더라도 이것이 정말 최선일까, 더 좋은 카피, 더 좋은 디자인이 없을까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책을 만들어 내는 길이기 때문이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정말 진지한 관심이 있는 편집자라면 퇴근하는 순간 일을 잊어버리기는 어렵다. 밥을 먹다가도 친구와 얘기하다가도 그 주제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전문성과 숙련도를 높이는 것이 관건     


교정교열과 윤문 등은 숙련도에 따라 차이가 크다. 교정교열 원칙을 숙지하고 있고 문장을 고치는 훈련을 많이 한 사람은 동일한 원고를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교열하고 수정할 수 있다. 경험이 적은 편집자는 일일이 사전을 찾아보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하고, 반대로 오류가 있다는 걸 몰라서 다 그냥 넘어가다 보니 오히려 금방 일을 끝낸다. 첫 번째 경우는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고 있으므로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전문가가 된다. 두 번째 경우는 경력이 많이 쌓여도 교정교열을 할 줄 모르는 편집자가 된다.      


스스로를 한계에 몰아붙일 때 어느 순간 자신의 능력이 매우 향상되었음을 느끼는 것은 모든 직업인들의 공통점이다. 자신의 능력의 120%를 해내려고 애쓰다 보면 어느새 120%가 100%가 된다. 그러면 다시 120%를 해내려고 노력하고,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흐르다 보면 초보일 때의 200%, 300%를 100%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렇다고 모든 일에 전력을 다하면 번아웃 증후군에 빠지기 쉽다. 상황에 따라 업무에 따라 80%, 60%, 120% 그런 식으로 차등을 두어 일해야 한다. 실력이 이미 상당히 향상되었다면 60%로 일할 때도 그렇지 않은 사람의 100%보다 높은 효율을 낼 수 있다.      


SBS TV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을 보면 단순하게 보이는 일들도 숙련도에 따라 동일한 시간에 업무량이 몇 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스로의 역량이 향상되면 전에 시간이 많이 들고 힘들었던 일들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시간흡혈귀를 퇴치하라     


누가 시켜서, 또는 눈치 보느라 야근하는 것과 스스로 알아서 늦게까지 일을 하는 것은 직장인의 자존감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직원이 얼마나 늦게 퇴근하는가를 확인하며 평가 기준으로 삼고 야근을 압박하는 것은 스스로 열심히 일하는 직원을 모욕하는 일이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업무시간이든 아니든,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가리지 않고 열심히 했는데 경영자가 무급 초과노동에 그토록 집착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싸구려 노동력으로 취급당하는 불쾌감에 더해 ‘내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을 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수개월 동안 매일 야근을 하거나, 밤을 새워 일한 경험이 적지 않다. 스스로 계획을 세워 일을 하다가 일정이 꼬여서 무리를 하게 되었을 때는 착취당하는 느낌은 별로 받지 않았다. 그러나 경영자가 매일 퇴근 시간을 체크하며 초과근무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보았을 때는 업무시간 이후 단 한 시간도 더 회사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이 많아도 일부러 정시 퇴근하고 집에서 일을 하곤 했다.


야근은 경영자나 상사가 강요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동료들에 의해 강제되는 경우도 흔하다. 야근이 직장 문화가 되면 내가 야근하는 것도 당연하고 동료가 나 때문에 야근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된다. 스트레스를 주는 중요한 일일수록 최대한 뒤로 미루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개인의 성격, 업무 습관 때문에 한발 늦게 작업을 완료하고 한발 늦게 동료에게 전달하다 보니 자신만 무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까지 무리를 하게 만든다.      



효율적인 시간 활용을 다루는 자기계발서에서는 ‘시간 흡혈귀’를 퇴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 차원에서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빠른 업무 처리를 하는 데 장애가 되는 모든 것들, 가령 수면 부족, 잦은 음주와 흡연, 꾸물거리는 습관, 휴대폰이나 SNS 중독, 영양 부족, ‘저질 체력’ 등을 해결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시간 흡혈귀’에는 이런 무형의 존재들 외에도 형체를 갖춘 유형의 존재들도 있다. 개인적인 미팅인지 업무상 미팅인지 알 수 없는 술자리 후에 으레 회사에 잠깐 들러 야근하는 직원들을 보며 흐뭇해하면서 눈에 안 보이는 직원들이 퇴근했는지 물어보는 상사나 경영자, 회사에서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자, 할 일이 많아 불가피하게 야근을 해야 하는 동료를 붙들고 야근 식대가 제공되는 8시나 8시 30분까지 오래오래 식사를 한 후 자기 혼자 바로 퇴근하는 동료, 공동 작업에서 일을 늦게 하거나 전달 사항을 늦게 알려주어 불필요한 야근을 하게 만드는 동료, 긴급한 일도 아닌데 퇴근 시간 직전에 업무를 맡기거나 회의를 하자는 동료….      


시중의 자기계발서들은 이에 대한 해법도 제시한다. 거절의 기술, 쓸데없이 눈치 보지 말기, 단호하고 정중하게 나의 권리를 주장하고 합당한 대우를 요구하는 화법 등등. 영화 <부당거래>의 대사처럼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게 된다. 직원들이 무상 야근을 계속하다 보면 회사는 자발적으로 초과근무를 하는 직원들의 헌신에 감사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야근을 안 하는 직원을 불성실한 직원으로 간주한다. 동료의 실수와 무성의, 부담스러운 요청을 계속 받아주다 보면 어쩌다 지적하거나 거절할 때 ‘별것도 아닌데 너무 빡빡하다’는 원망을 사게 된다.     


여러 회사에 다니면서 야근이 잦은 회사에서도 의외로 매일 정시에 퇴근하는 직원들이 특별히 불이익을 받는 것은 보지 못했다. 긴급한 일을 외면하고 퇴근하면 비난받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정시 퇴근을 공식적으로 문제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알아서 자신의 시간을 챙길 줄 아는 것도 경력 관리에 중요하다. 기획을 병행하는 편집자는 아무리 바빠도 기획 아이디어를 떠올려 구체화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확보해야 스스로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축적의 힘으로 야근의 굴레를 끊어야 한다     


출판은 축적의 산업이다. 좋은 책을 선별해서 계속 출간하다 보면 한 종 한 종 쌓여 단기 매출로 연명하는 하루살이 목숨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렇게 여유가 생기면 더욱 효율적으로 더욱 공들여, 더욱 가능성이 높은 도서들을 기획하고 출간할 수 있다. 직원들과 회사가 노하우와 지식을 계속 축적하고 그것을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운용하면 더 적게 일하면서도 더 높은 성과를 올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렇듯 ‘축적의 힘’으로 야근의 굴레를 끊는 회사는 인재를 끌어들이는 미래의 승자가 될 것이다.     


편집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능력 있는 인재라도 입사 후 일정 기간이 되기 전에는 효율이 오르지 않는다.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1월에 첫 출근한 기획편집자는 입사한 해에 일반적인 성인 단행본 4종을 기획해서 출간하기에도 힘에 부친다. 하지만 3년째가 되면 1년에 8종을 기획하고 출간하는 것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스스로의 역량을 키워가며 소속 회사의 강점과 자원을 파악하고 연결하면 점점 더 수월하게 더욱 더 나은 성과를 거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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