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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나은 Sep 08. 2020

영어 영어 영어

영어, 완전하지 못하다


호주로 떠나기 전.
가려는 결심이 서면서 자연스레 왜 내가 호주에 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목표를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목표가 무엇인가. 남들 다 가니까 한번 가보려는 건지, 영어가 배우고 싶은건지, 외국인 친구를 만나고 싶은건지 등등.


 1. 남들 다 가니까:
엄마는 내가 누군가와 무언가를 무심코 비교하곤 할 때마다 그러셨었다, 남들 죽으면 너도 따라 죽을거냐고. 남들 다 가니까 한번 가보려 하는 것이라면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
2. 영어가 배우고 싶어서:
나는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를 믿는다. 그 깨달음을 믿는다는 것. 단순히 영어 실력을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면 국내 유명 어학원, 스터디를 빡세게 시키는 데에 내노라 하는 영어 잘 하는 분들과 자주 만남을 가지면서 죽을듯이 매달리는 편이 오히려 더 단단하게 내 영어를 향상시켜 줄수 있을 것이다.
3. 외국인 친구를 만나고 싶어서:
외국인은 내가 다니는 학교에도, 우리나라 안에도 무지하게 많다. 인터넷도 되는 세상이지 않은가. 친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다면 나는 왜 굳이 호주로 가려는걸까. 그것도 남들이 인생의 황금같은 시기라 부르는 소중한 이십대인 지금, 호주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도 없으면서.

곰곰히 생각하다 보니 마음속 수면위로 나의 목표가  떠올라 선명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성장하고 싶었다. 나는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넓다는데, 내가 살고있는 이 세계에 내가 알지못하는 다양한 세상이 존재한다는데, 나는 그것들을 피부로 직접 느낄 기회가 별로 없다며 잔뜩 심통이 나 있었다. 부모님이 엄해서, 살림이 넉넉치 못해서, 시간이 없어서, 그런 식으로 생각의 고리 고리들을 연결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핑계거리들만 찾아서 스스로를 위안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곤 했었다. 자기 자신을 가여워 하는 것만큼 간편하고 편리한 것도 없으므로.









성장하자.
더 많이 경험하고 보고 배우자.
더 큰 세상을 배우고 나 자신을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키우자.

호주. 내게는 마치 기회의 땅인 것처럼 느껴졌다.
영어권의 나라로 가고 싶고, 비자를 받기 녹록한 곳이면 더 좋았다. 워킹 비자를 받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이 후보선상에 올랐고, 거기에 삼촌과 이모가 살고 계신 미국도 또다른 옵션이 될 수 있었다. '미국'이란 나라는 어릴 때부터 참 궁금했던 곳이지만 가족이 있다는 이유 만으로 왠지 나 자신이 느슨해 지거나 의지하게 될까봐서 싫었고, 또 가족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언젠가는 굳이 도전한다는 마음으로가 아니라 편안하게 여행으로 다녀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땐 지금처럼 이렇게 와서 살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호주는 지금이 아니면 왠지 가기 힘들 것만 같았다. 지도상으로 봐도 우리나라와는 참 멀리 동떨어진 나라, 지구 반대편의 나라. 지금이 아니라면 왠지.. 그렇게 해서 호주로 가기로 정했던 것 같다. 지금이 아니라면 안될 것 같다는 절박감과 직감이 나를 그 곳으로 강하게 이끌리게 했다. 그리고 덕분에 황금같은 추억들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고.

꿈을 꾸듯 성장했던 시간들.









영어가 목표는 아니었다고 하나 사실 영어로 인해, 영어이므로, 영어 때문에 겪게 된 여러가지 마음들이 아주아주 많았다. 한국에서는 자연스럽고 아무렇지 않은 것에도 용기를 내고 마음을 단단하게 해야될 필요가 있는 순간들이 많았다. 실수할까봐서, 내 말을 못 알아들을까봐서, 그들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을까봐서, 조그만 동양인 여자애라고 무시할까봐서, 여러가지 사소한 경험들과 버무려진 별별 생각들에 나 자신을 중무장하며 방어막을 쳤다.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들이닥칠지 모르는 영어로 인한 좌절감이 항상 내 주변을 맴돌고 있는 듯 했기 때문에 나는 애써 그런 감정을 들키고 싶지않아 시선을 피하고 수그러들곤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랐으면 좋겠지만 나에게는 너무 선명하게 보이는 나 자신의 나약함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처절하게 애를 썼다. 돌이켜 보면 참, 두려운 것이 많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두려운 것은 사실, 외국인과 마주할 때의 내가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같은 한국인들 앞에서 영어를 해야할 때가 가장 두려웠다. 우리들은 분명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미 끈끈하게 맺어진 동지였지만 동시에 '영어'에 관해서만큼은 끊임없이 서로를 평가하고 마음에 알게모르게 계급 같은 것들을 나누며 경쟁하거나 부러워하는, 혹은 안심하거나 얕보는 그런 모호한 사이들이었다. 나보다 영어를 잘한다고 느끼는 한국인 친구와 함께 있을 때면 왠지 위축이 되고 주눅이 들어서 그 친구가 영어를 하도록 내버려 두고 나는 조용히 뻐끔뻐끔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내가 좀더 영어를 잘하는 상황이라면, 위축이 되고 있을 내 옆의 그와 그녀들을 이해했기 때문에 내가 영어를 도맡아 할 때가 많았고 그러한 순간순간들에 혹시나 내가 말도 안되게 쉬운 영어를 그들 앞에서 실수할까봐, 그들이 '이 친구 영어 잘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실수하더라' 라고 생각하거나 말하게 될까봐서 더욱 긴장하고 집중해서 영어를 쓰곤 했었다. 시간이 지나 정말 친해진 사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영어가 고만고만한 우리들 모두가 사실은 비슷비슷한 감정들을 나누고 있었고 그 사실에 각각 조금씩 놀라워 하면서 우리들은 웃었다. 다들 영어가 완전하지 못한데, 어쩌면 완전하지 못한 것이 당연한 건데, 그런 걸로 서로를 평가하고 마음속으로 위안을 얻거나 위축이 되거나 하고 있던 모습들. 치열한 경쟁 구도에 어릴 때부터 내던저져 왔던 우리들이라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경쟁심 같은 것이 피어났던 것일까.




참, 영어가 뭐라고 말이다.








영어가 결코 목표가 아니었으면서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호주에 가고나서야 비로소 절실히 하게 되었다. 왠만큼 잘한다 믿었던 영어는 현실에서 무참히 박살나 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내 목표가 어학연수가 되거나 하진 않았었다. 그 때의 나는 내가 정한 분명한 목표와 계획이 순간의 감정이나 주변의 흐름에 의해 흐트러지는 것이 싫었다. 내 목표를 따라서 내 길을 가다보면, 영어는 내가 목표로 한 그 생활들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믿었다. Live my life in Australia. English Follows. 그땐 딱 그런 느낌이었다.







처음 호주에 가서 생활했던 시드니에서의 두달여는 내내 그런 여러가지 생각들의 오고감이 컸었던 것 같다. 그동안의 내가 깨어지던 시기. 물론, 그 이후에도 나는 내가 스스로 덮어뒀던 이불을 걷어차고 둘러쳤던 벽을 여러번 허물어가면서 나의 세상을 넓혀갔다.그 과정속에서 '영어' 라는 존재가 준 역할이 어쩌면 가장 컸음을 고백한다. 원어민 같은 영어는 '잘 아는 영어'가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영어'여야 했다. 영어를 외국어로 익혀온 나에게 이 언어가 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독한 일인지, 영어가 늘었다고 느껴지던 매 순간순간마다 절절하게 깨달았다.





 호주생활은  세부분 정도로 나눌  있다.  시드니에서의 두어달, 호텔인턴쉽으로 가게된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의  섬에서의 네달쯤, 그이후의 여러 여행들과 다시돌아온 시드니, 이렇게.






 시드니에서 나는 신나게 돌아다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기저기 다녔고, 자는 시간이 아까워서 밤새도록 수다를 떨다가 무거워진 눈꺼풀을 이겨내지 못할  정말 마지못해 잠이 들곤 했었다.  년을 알고 지낸 친구와는 다른, 이렇게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얻게 되는 우정과 서로에 대한 사소한 발견들이 정말이지  힘이 되었다. 외롭고 힘들다고 느껴지는 순간 순간들마다  외진 땅에도 나를 아껴주고 즐거워라 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생각에 힘을 내고 웃을  있었다. 안되는 영어로라도, 내가 부당한 대우를 당하거나  때에 함께 맞서 싸울수 있는(?) 든든한 그녀들과 그들 덕분에 참말로 좋았다.

다함께 특별하게 새해맞이를 하겠다고 하버브릿지로 가던 그 해 마지막날 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이를 즐기기 위해 와글와글 모여있던 와중에 누군가가 갑자기  엉덩이를 꼬집었다..라고 표현하기에 부족한 감이 있을 정도로 움켜쥐었는데, 소스라치게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금발머리 여자애들 무리가 웃고 있었고 그들  한명이 내게 ' 엉덩이가 너무 이뻐서 만질  밖에 없었어.' 라며 크게 외치고는 칭찬이라고 깔깔대며 웃었다. 나로서는 나무나 황당하고 불쾌한, 어처구니 없는 상황. 바로 뭐라고 반격하고 싶었지만 너무 급작스런 상황에 돌덩이처럼 몸과 혀가 굳어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순간을 지나고 말았고,  억울함에 씩씩대던 나를 토닥여 주고 나와 함께 적당한 방어와 정색을 남겨준 그녀들, 내 친구들이  곁에 있어서 든든했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자잘하고 사소한  우리들의 이야기는 지금 이렇게 내게 추억으로 남았다. 그녀들에게도 그러겠지.








영어에 대한 고민이 많은 누군가에게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았으면 좋겠다, 감히 전한다.
 때의 외국생활 이후와 지금 이렇게 미국에서 살고 있으며 원어민인 그와 함께 생활하고 말하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영어를 정말 잘하겠거니 하지만,  마음의 대답은 NO.

예전에 알던 것에 비해 훨씬  많은 영어를 알게   사실이고, 이제는 영어로 말하는  자연스럽고 편해진 것도 사실이다. 무심코 영어단어가 먼저  튀어나올 때도 있고, 영어를 하기 전 마음의 준비를 거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영어를 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가끔 아니 자주 실수하며 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내게는 ‘외국어’ 라서 마음에 적당한 거리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영어에 24시간 노출되어 있는 내가 만약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면...오우, 나는  스트레스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이미.



누군가가
영어  하세요? 하면
이때의 나는
. 라고 했었다.

지금의 내게 누군가가
영어  하세요? 하면
지금의 나는
어느 정도요. 라고 한다. 영어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더더욱 잘한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던가.
알면 알수록 내가 몰랐던  이렇게나 많았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이라는 것을 살아가며 깨닫게 되는  같다. 비단 영어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쨌거나 그리하야 나는 시드니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서 헤이먼 아일랜드(Hayman Island) 라는 곳에 도착한다.

생전 처음 보는 에메랄드빛 바다색. 정말 아름답고 또 아름다웠던.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치열하게 느껴졌던 그 곳에서의 네달.
바닥을 치기도 했던 마음, 여러가지 사건 사고들.




나는 그렇게
호주에서의 제 2막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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