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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잭 라 이르 Dec 09. 2024

데시벨 진통제

저주파 글쓰기




한 달에 한 번은 생리처럼 터진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당장에라도 쏟아질 것 같은 붉은끼를 주체할 수 없어서 안식을 포기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냉암한 병실을 더듬거리며 출구가 얼어붙기 전에 진통제를 찾아야만 한다. 스스로 눈과 귀를 훼손하여 기능을 정지시킬 심장이 나는 여적 없어 진통제에 기대한다. 미치지 못하면 더 큰 통증을 개발하여 시스템을 통째로 마비시켜야 한다.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검은 피를 쏟아내는 일이다.




놀란 가슴 보상받을 심산인지 오토바이들은 더욱 요란굉굉했다. 열시든 열한시든 다음날의 세시든 헤아림 없이 마구잡이로 어둠을 쓸어갔다. 하나가 마이크를 잡으니까 연달아 온천지가 파열음을 냈다. 미친 듯 세어보니 한 시간에 서른아홉 대가 오갔다. 개중에 견딜 수 있을 만한 계소리는 겨우 너다섯 뿐이었다. 나머지 계소리들은 창문을 깨고 이불을 비집고 들어와 최후의 귀마개마저 손쉽게 무산시켰다.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하라는 명언을 좇아 창문 밖으로 소리쳤다. 새벽에 작작 처먹으라고 복근을 꽉 조여 말했다. 줄곧 나를 괴롭혀온 것은 오토바이의 파열음이지만 그 앞서 터무니없는 시각에 음식을 배달시키는 놈들을 겨냥했다. 과녁을 설계한 기업들을 저주했다. 평화로운 마을을 원룸촌으로 고쳐지어 기본도 안 돼있는 학생들을 사육하는 배불뚝이 장사치들도 모조리 함께 줄세웠다. 너희들은 아스팔트보다 차갑고 거친 바닥에 생살로 나앉아 밤낮없이 서로 물어뜯고 부대끼게 될 것이며 드러난 척추뼈가 바늘귀를 통과할 때까지 한시도 눈 감지 못할 것이다.


월세로는 부족했는지 어느덧 그들의 옥탑에는 통신중계기가 빼곡히 세워져있다. 이따금 까치들만이 날아와 두꺼운 전선을 물어뜯곤 했다. 기계가 작동을 멈추면 낯선 사람들이 나타나 더욱 단단히 쇠를 감고 돌아갔다.




쉽게 얻는 듯한 방식을 추구하지 말라고 말했다. 쉽게 얻은 듯 보이지만 쉽지 않음은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네가 모르는 어려움이 네 몸속에 축적될 것이고 네가 보지 못하는 부패한 잠류가 만물의 피부 속으로 침투할 것이다. 그게 너와 나의 업이다.


편리는 없다. 편리는 착각이자 악이다. 네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불편도 함께 난다. 그런 데다 너의 편리는 사랑 없이 술수로만 짜여져 있다. 사랑이 없다는 것은 쓸데없는 것에 바쁘다는 뜻이고 바쁘다는 마음 잃은 어리석음이 오늘날 횡횡하는 악의 모습이다. 네가 아는 사랑은 무지다. 너의 비좁은 호흡이 악행인 줄 모르기 때문에 악은 무지고, 너라는 또 나라는 무지한 관념이 악인 것이다. 악을 만들어낸 주체가 자신임을 보지 못하고 다만 눈에 뵈는 것을 악이라 규정하고 척결시키려 들지 말아라. 자신이 싼 똥을 물 흘려보내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는 짓을 그만두어라. 어느덧 그게 당연하다고 여기지 말아라. 청렴한 척 변기에서 일어나지 마라. 닦고 또 닦으며 부끄러워해라.


나라와 기업의 시스템이 개똥 같으니 국민들의 경제활동 방식도 더럽다. 60조 개의 사랑으로 협성된 개별자들이 섭리대로 살기를 거부하니 또한 나라가 어리석어지고 고통받는다. 나도 그 어딘가에 있다. 어딘가에 숨어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다. 볼록 튀어나온 이마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찾고 있다. (어떡해야 해. 사랑하지 못할 때. 연민하지 못할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해.) 고통을 감싼 혹의 피막이 잠들지 못하는 지느러미처럼 위태롭게 들썩인다. 덜 자란 혹이 뻘속에서 꿈틀거린다. 진통제가 잘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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