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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som Sep 26. 2018

가슴을 쳐내려가도 답이 없는 삶

39세의 우울증

언제부터인지 가슴이 답답하다. 그냥 싫증나 귀찮고 짜증나는 감정을 넘어선지 오래다. 아마도 나는 청소년기부터 우울한 기운을 품고 성장해 온것 같다. 그러던 것이 학교를 진학하고 연애를 하기 시작하고나서부터 3년간 우울감이 사라졌었다. 그당시 남자친구는 내가 버스의 창밖을 보는 모습이 무척이나 싫다고 했다. 자기가 무능해 보이며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것 같은 깊은 슬픔이 느껴져서라고 했다. 근데 그당시 나는 우울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런 나는 그저 나도 모르게 지나가버리는 3년의 연애를 즐기고 느끼고 있었을 뿐이었다.


연애가 끝날 무렵 나는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자존감은 바닥 하수구로 흘러내려 없어진지 오래였고, 그런 내내 부서를 옮겨가며 다양한 상사의 괴롭힘을 견디며 시간을 보냈다. 아니 그들도 괴로웠으리라. 후배들에게 울화통이 터져 싫은소리를 할 때 그 심정을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그들도 나처럼 괴로웠을 것임을.


나는 12년이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의 직장에 와 1년정도의 호기심을 보였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늘곳 내게 하루 10시간 이상을 존재해야만 할 직장에서 끊임없이 반문했다. 왜 나는 이들과 살아가야 하는가. 왜 이들과 밥을 먹고 싫은소리를 들으며,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가. 하지만 단순히 직장생활의 불만이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자유가 주어진 시간마저도 끊임없이 나 스스로가 불행하다 자초했으며 부모복, 외모복, 그리고 나 존재에 대한 불만까지도. 왜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어야만 했다. 그 질문을 어제 밤에도, 그제 밤에도 눈감기전에 생각해버린다. 나 내일 눈을 뜨면 또 다시 살아내야 하는가. 이 지겨운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 힘든 내 몸둥이를 이끌고 왜 살아야 하는가 말이다. 직장을 내려놓을 각오도 해 보았다. 진행중인 생각이지만 만일 내가 직장이 없다면 내 존재의 답을 찾는건 더 큰 질문이 될것만 같았다. 살아야 하는가. 정말 살아도 되는 것인가. 경제활동도 하지 않는, 돈도 벌지 않는 이 인생이 살아 가치 있는 것인가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글을 쓰고,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책을 만드는 직업을 가지면서 나는 글을 쓰지 않았고, 못그리는 그림이지만 그리고 싶다하여 화실을 다녔지만 욕심만큼 그림은 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한다는 것은 그저 누가 잘쓴 글과, 잘 그린 그림을 보고 만족하는 것이었다. 아, 남이 쓴 글과 남이 그린 그림이지만 그것들이 마치 나를 부자로 만드는것 같았다. 나를 대변하는것 같았고, 내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으로 여겨졌다. 막상 내가 쓰는 것과 그리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나는 하고 싶은것이 사라지고, 해야할 것만 남은 인생인것만 같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목표가 없고, 존재자체가 고통스러워졌다.


3주 전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작은 성취감을 맛보면 조금은 의욕이 생길까 하고 말이다. 힘겹고, 긴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입술은 붓고 눈은 쾡하고. 가슴은 답답하다. 추석기간 6일을 쉬었는데 난 무엇을 했는지 전혀 모르겠다. 견디고 견뎌서 번 돈을 야금야금 쓰고 있다. 잠시 카드 리더기가 읽히는 순간 희열을 느끼지만 그것은 1분도 가지 못한다. 내가 무엇을 샀는지 어디에 뒀는지 모를 물건들로 삶은 가득차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를 오늘. 나는 다시 살아내야만 한다. 언제 끝날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 끝낼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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