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관한 '환희'의 리뷰
*영화를 보시기 전이라면 영화 관람 후 읽으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저는 지금껏 영화관에서 동일한 영화를 2번까지 관람한 적은 있었습니다(<반지의 제왕>, <웰컴 투 동막골>, <버드맨>, <위플래쉬>). 그리고 2023년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저만의 작은 기록을 갱신하며 극장에서 3번 관람하게 된 생애 첫 영화가 되었습니다.
2022년 12월 30일(금) 2D자막 초청시사회 20:00~ 관람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
2023년 1월 4일(수) 자막 08:40~ 관람 (메가박스 코엑스)
2023년 1월 22일(일) 더빙 24:15~ 관람 (메가박스 홍대점)
사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개봉 전 제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긴 했습니다.
첫 번째 예상은 영화를 보고 감격해서 펑펑 울거라 생각했지만 울진 않았구요(물론 심장으론 울었지요).
두 번째 예상은 아무리 제가 <슬램덩크>의 팬이라도 많이 볼 때 극장관람 2번 정도일거라고 생각했지만 3번 보았구요(사실 또 보고 싶습니다. 반복해서 보고 싶어요. 빨리 블루레이만 나오길 바랄 뿐입니다)
세 번째 예상은 언제나 그렇듯 애니메이션 '더빙판'은 왠만해선 관람하지 않는 편인데 <슬램덩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더빙판'까지 관람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보기 좋게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하게 한 작품입니다(그러나 아주, 몹시, 긍정적인).
먼저 1회차였던 '시사회' 관람 뒤 제가 남긴 간략평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처음 이 작품이 3D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그리고 첫 예고편을 보았을 때 3D 특유의 어색한 움직임이 걱정이 되긴 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엔 <슬램덩크>의 원작자 '다케히코 이노우에' 같이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 감독까지 하는데 허투루 만들리는 없다라는 '신뢰'도 있었죠.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하죠. 시사회 날 극장에 앉아있는 동안 그 걱정이 아예 없었다라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저의 이러한 걱정은 역시나 기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송태섭'이 형인 '송준섭'과 1on1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죠. 예고편에서 볼 때는 이 장면에서 3D 특유의 위화감이 느껴졌었는데 막상 영화에서 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첫 장면을 지나 (많은 <슬램덩크> 팬들이 가슴으로 울었을) 북산고의 5명의 스타팅멤버. 채치수, 정대만, 서태웅, 강백호, 송태섭이 차례차례 등장하는 장면에서 일말이라도 작품의 완성도에 의구심을 가졌던 제가 부끄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북산고'의 등장과 이어 나오는 '산왕공고'의 등장 씬만으로도 이미 이 영화에 대한 저의 평가는 끝이 났습니다. 이제부터는 이 작품을 즐길 일만 남은 것이죠.
차후에 찾은 바에 따르면 3D가 줄 수 있는 어색함을 없애고 사실적인 농구경기를 연출하기 위해 실제 선수들로 '모션캡처'를 하고 3D로 제작한 후에 '다케히코 이노우에'가 직접 다시 수작업으로 리터칭을 했다고 하는데 역시나 완벽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물론 그럼에도 3D의 어색함이 느껴지는 몇 군데가 있었는데 경기장면보다는 오히려 평범하게 인물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잠깐잠깐 표현되는 곳에서 그런 위화감이 느껴지더군요).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는 '송태섭'이 주인공입니다.
원작에서 비하인드 스토리가 가장 적었던 인물이었죠. 그리고 영화에서 큰 줄기를 이루는 것은 농구선수로선 작은 키를 가진 '송태섭'이 '경기장'에서뿐만 아니라 평생동안 느껴야했던 '압박감'에 대한 것이었고 그것을 진정으로 '이겨내는' 과정입니다. 그동안 <슬램덩크> 이 후 <배가본드>와 <리얼>을 그리며 만화가라는 직업을 넘어 시대를 대표하는 한 작가로 길을 걸어갔다고 생각하는 '다케히코 이노우에'인 만큼 인물을 다루는 그 깊이가 느껴졌습니다. 또 '송태섭'의 감정상태와 비하인드 스토리가 '산왕전'의 경기흐름과 맞물려 이야기가 '배치'되어 감동이 더했죠. 일각에선 '회상신'의 반복과 송태섭의 가족사가 '신파'라는 점을 단점으로 이야기하는데 저는 전혀 그것에 공감하지 못하고 인정 하기도 어렵습니다(영화의 오리지널리티와 영화가 가진 호흡과 리듬을 전혀 생각지 않은 '내던진 의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는요).
영화 속의 시점에도 나타났지만 '강함'의 의미와 '잘되지 않는 것'에 대한 공감과 상상력이 중요하다. 아픔과 상실. 잘되지 않는 것. 살아가면서 누구나 통과하는 길을 표현하고자 했다. 돌아보면 나도 나름대로 지나왔던 길이라 더 공감되도록 그릴 수 있었다(씨네21 no.1388, p.77.)
몇몇 리뷰어들이 '송태섭'을 작가 '다케히코 이노우에'와 대치시켜 설명하기도 하더군요. 그 의견에는 저도 공감합니다. 다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복잡하죠. 북산의 모든 인물에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채치수'의 과거사 또한 저는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처음에도 이야기했지만 '다케히코 이노우에'는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알게 되듯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솔직히 가끔은 피곤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입니다(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완벽주의자'겠죠. 존경합니다. 진심으로). 즉 '채치수'는 단지 '전국제페'라는 높은 목표를 추구했던 것 뿐인데 그로 인해 그것이 가능할리 없다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비난을 받았던 것이고 이는 완벽을 추구하는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경험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채치수'가 자신의 목표가 사실은 '전국제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동료와 함께하는 것에 있었다라는 것을 깨닫는 모습을 '다케히코 이노우에'가 보여줌으로써 '해답'을 제시해주죠(이와 같은 마음은 원작에서도 표현된 바 있습니다. 또 <배가본드>에서는 다소 강하게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구요)
물론 극장판에서 채치수의 선배가 하는 이야기가 마냥 틀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꿈'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꿈'이 아닐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최소한 '꿈'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비아냥'은 말아야죠. 그것은 분명 '선'을 넘는 일이었고 해서는 안될 언행이었습니다.
참. 원작의 팬들 중 '산왕전'에서 애정하는 몇몇 장면과 대사가 등장하지 않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현하는 분들도 제법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 마음 속에 <슬램덩크>의 명장면과 명대사들이 살아 숨쉬고 있지 않습니까? 그 아쉬움에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 예로 경기흐름이 매우 급박하게 흘러가는 시점에 '송태섭'이 흥분한 동료를 진정시키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이달재'를 비추어주는데 원작의 팬들은 알죠. 달재가 풍전에서 '송태섭'에게 보여주었던 장면과 연결되니까요. 또 그토록 찾는 '변덕규' 역시 실루엣으로나마 나오지 않습니까.
다시 시사회를 보고 난 뒤 첫 감상평으로 돌아와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의 팬들도 처음 이 작품을 보는 관객에게도 호소력이 짙은 그런 작품입니다. '산왕전'은 원작의 팬이라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경기이고 등장인물의 배경과 <슬램덩크> 스토리를 전혀 모르고 보더라도 '스포츠 애니메이션'으로 한 획을 그은 작품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농구경기를 보는 듯한 사실적인 연출방식(특히 코트에 공이 튀기는 소리나 공이 들어갈 때 골대가 철썩이는 소리, 선수들의 움직임에 농구화가 코트에 끌리는 소리 등이 현장감을 극대화하죠), 경기 상황에 따라 슬로우로 영상을 잡아 적재적소에 극적인 효과까지 이끌어낸 연출방식, 경기분위기 등에 따라 달라지는 선수들의 얼굴표정과 감정들, 주인공(송태섭)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북산과 산왕의 경기흐름이 적절히 맞물려 진행되는 이야기 구성. 흠잡을 데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제가 시사회 관람 후 개봉당일 1회차 시간대로 2회차 관람을 할 때까지만 해도 이 작품에 별 다섯개, '마스터피스'라고 이야기하기엔 뭔가 빠진 기분이다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처음 매긴 '별 4개 반'을 유지하고 있었는데요. 최근 설 연휴동안 시간을 내서 본 3회차 관람, 즉 '더빙판'을 보고나서 생각을 고쳤습니다.
더빙판의 경우 좀 더 영상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추천한다라는 글도 보긴했었는데 그 말이 맞더군요. 사실 이는 2회차 관람 때도 어렴풋이 느끼던 바였고 '더빙판'을 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더빙판'에서 조금 걱정했던 부분은 원작과는 조금씩 미묘하게 달라지거나 추가된 인물들의 감정이 있는데 성우분들이 캐치해서 표현했을까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프로성우분들답게 모든 인물의 스토리와 감정을 충분히 분석하신 후 대사를 하셔서 만족했습니다(성우 분들 또한 <슬램덩크>를 좋아했을 분들이었을테니까...). 덕분에 제가 좀 더 나오는 영상에 집중할 수 있었고 2회차 관람 때 어렴풋이 느껴졌던 점들이 확실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송태섭의 이야기가 산왕전과의 경기흐름과 연결되어있다고 했었는데 '더빙판'으로 보니 송태섭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북산과 산왕공고 모든 인물의 서사와 내면들이 경기의 모든 부분과 구석구석 맞닿아있었고 그것을 영화가 가진 '리듬'으로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다케히코 이노우에'는 "내게 있어 영원한 테마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한다'는 것이다" 라고 밝혔는데요. 언제나 그렇듯 그 마음, 그 진심. 분명하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좀 <배가본드>와 <리얼> 좀 계속 그려주실래요?
당신의 만화... 정말 좋아합니다. 항상 거짓이 아니라니까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이야기하면서 '포스터'와 '굿즈'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는데요. 일단 이번 '더 현대'에서 진행한 '팝업스토어'의 경우 할 말이 좀 많아 별개의 글로 작성할 예정이구요.
그런데 원래 일본에서도 그렇게 하길 원한건지 영화관에서 포스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점, 그것도 당일 예매한 사람에게 선착순으로 준다는 발상은 왜 한 건가요? 큰 거 바라지도 않고 저는 최소한 시사회 때 포스터라도 받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3번 관람하는 동안 유일하게 받은 것은 2회차 관람 때 개봉일에 받은 '메가박스 오리지널 티켓'이 전부입니다(이 또한 선착순이고).
어느 순간부터 '문화상품'이라는 이름으로 '돈'만을 생각하는 행태들이 정말 지겹습니다. 블루레이 또한 구매예정인데 이제 블루레이 소량생산은 너무나 당연해서 예매 뜨자마자 구매하지 않으면 못구하는 것도 익숙해졌는데 이제 '포스터'까지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