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11월 회고
언젠가 이연은 보민에게 건너온 물건들이 너무 사소하기 때문에, 다시 원래 있던 세계로 반투막을 통과해 가버리기도 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이 물건들은 돌아가지 않고 여기 남았다. 이연이 발견했고, 소중히 여겼고, 그 물건들에 이야기를 부여했기 때문에. 그래서 다시는 사소해질 수 없었던 것이다.
<비구름을 따라서> 중
내 안의 안전지대를 만들고 나서 가장 큰 변화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동안 내면세계에 집중했다면 다른 이들의 삶을 듣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다. 마침 손에 쥐었던 책 데이비드 브룩스의 '사람을 안다는 것'은 잘 듣는 법에 대해 고민하고 체화할 계기가 되었다. 책에서는 얘기한다. '듣는다'는 행위는 생각보다 잘하기 힘든 능력이라고. 잘 듣는다는 건 '다른 사람이 지금 겪고 있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이자 '누군가를 정확하게 앎으로써 그 사람이 자신을 소중한 존재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처럼 타인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책에서 권하는 몇 가지 질문 중에 인상 깊었던 질문은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 마치 먼지 가득한 다락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진첩과 같아서 마음이 푸근해지는 기분이 든다. 가을이 진 지금 기억에 남는 추억이라면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의 일인 것 같다.
아이의 집은 시내와 떨어진 빌라에 있었다. 빌라의 뒤편엔 작은 산이 있었다. 한밤중에 거실에서 창문을 열면 바람에 흔들린 나뭇잎이 속삭이는 소리와 지나간 여름이 아쉬운 듯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로 가득했다. 아이는 어둠에 숨은 산이 두려우면서도 산이 품은 집에 신비로움을 더해준다고 믿었다. 아이의 집 오른편에는 넓은 감나무 밭이 펼쳐져 있었다. 매년 가을이 되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감들이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해질 무렵에 아이는 동생과 나란히 오르막길을 걸었다. 아이의 집이 가까워질 즈음 "어-이" 하고 큰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나무에 걸친 사다리에 오른 감나무 주인이 잘 받으라는 말과 함께 나무에서 막 딴 감을 던졌다.
아이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감을 잡으려 두 손을 뻗었으나 이내 놓쳐버리고 말았다. 떨어진 감에 과육이 흘렀다. 입 안에 넣으면 달짝지근한 맛이 혀 끝에 맴도는 듯했다. 아이는 아쉬움에 하나 더 받을 수 있을까 그를 애처로이 바라봤지만 그는 잘 받았어야지 하며 너털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스무살이 넘어 아이는 더는 아이라 부를 수 없는 성인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 다시 찾은 감나무 밭은 밑동만 남아 그날의 감나무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때 신비로움을 풍겼던 아이의 집은 낡고 평범한 빌라로 서 있을 뿐이었다. 아이는 손을 뻗으면 나뭇가지에 손이 닿을 만큼 자랐지만 감을 딸 수 없음에 슬퍼했고, 그날의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돌아갈 수 없음에 그리워했다.
이번 달은 의식적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 했던 시기였다. 어떠한 주관이나 편견 없이 한 사람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는 것은 퍽 즐거운 일이었다. 누군가와 '소설가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슬픔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소설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감정과 생각은 실로 겪어보지 못하면 뱉어낼 수 없는 단어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지금 다시 그 질문에 답을 한다면 '세상의 이야기를 담는 사람'이라 부르고 싶다. 앞으로의 나날에 타인의 삶을 듣는 사람이 되려 한다.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한다면 '세상을 듣고 이야기에 담는 사람'이라 말할 것이다.
마음마저 순결한 사람을 적어도 아빠는 살아오면서 본 적이 없다. 단지 순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열매 같은 거란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중
현대 사회는 힘을 주는 법만 가르친다. 시험에서 100점을 받는 법, 수상을 하는 법, 승진을 하는 법, 인정을 받는 법 등등. 하지만 정작 힘을 빼는 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불안하고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힘을 빼는 법을 몰라서지 않을까. PM을 시작하면서 꽤 오랜 시간 슬럼프를 겪었다. 남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살아갈 자격이 주어진다고 생각했다.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은 도전을 망설이게 했고 성취하기 쉽지 않은 시기에 좌절했다. 인정을 받지 못할 바에 차라리 기대하지 말자라고 외면했다. 재미없는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불안함의 근원은 세 가지 사고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혼자서 해내야 돼.
한 번 실패하면 끝이야.
해내지 못하면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일본 시장을 뚫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일본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데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을까. 링크드인에 일본 진출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글을 올리면서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링크드인 활동이 드물어지면서 가끔씩 글을 올려도 예전처럼 보는 사람도 반응을 하는 사람도 적었으니까. 그다음 날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여러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주겠다는 DM을 받았고 이들과의 만남에서 귀중한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혼자서 해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구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길도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책임의 무게를 덜어낼 수 있었다.
일에 있어서 실패에 관대해졌다. 제품을 개발할 때 최소한의 요구사항으로 만들고 시장에 반응에 따라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시장의 반응이 예상과 달랐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우리가 쏴야 할 과녁의 위치가 여기가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결과가 나왔는데도 배운 게 없다면 그거야말로 실패한 것이다. 한 번의 요행을 바라지 않고 어떻게 잘 배울 수 있을까에 중점을 두고 나니 '일단 해보자'와 같은 말들이 내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주간 회의에서 대표 S에게 "예전에는 안된다고 말하지 않았나?"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그때였고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해보자. 결과를 보고 더 집중할지 말지 결정하자. 일이 아니더라도 삶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중요한 가치라 생각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더라도 날 지지할 사람이 있다는 믿음(안전지대)만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이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됐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나를 싫어하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지 하고 어깨를 으쓱하고 넘겨야지.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에게 아쉬움이 남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시절인연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은 불안하지 않는다. 언제든 타인에게 손을 뻗을 수 있다는 사실과, 작게 시작하면서 배우려는 다짐과, 내가 어떤 사람이라도 사랑해 줄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이 불안에 맞설 무기들이 되었으니까. 불안을 지우고 나자 내 안의 호기심과 열정이 생겼다. 재미없는 어른에서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소년/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일본진출 자문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은 후 자신감이 생겨 PO분들과 커피챗을 신청했다. 11월은 올해 중 가장 밀도 있게 사람을 만난 달이다. 링크드인에서 맺은 1촌분들의 리스트를 쭉 내려보는 중에 오래전 인연을 발견했다. 3년 전 PM 북클럽을 운영하면서 온라인으로 만났던 분이었다. 당시에 대화하면서 꽤나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어서 그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Y는 그 사이 두 번이나 이직을 하였고 현재는 사업전략 일을 하고 있었다. Y와 근황을 공유하면서 나와 같은 94년생 동갑이라는 것, 최근에는 영화감독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IT 스타트업의 PM과 영화감독은 전혀 연상되지 않는 조합이었어서 호기심이 일었다. 나는 그에게 어떤 계기로 영화감독을 꿈꾸게 되었는지 물었다.
Y는 예전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꿈을 접었다고 한다. PM으로 일하면서 PM의 역할이 영화감독의 역할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고 영화감독에 도전하기로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할리우드에서 밑바닥부터 차근히 올라가는 그림을 생각한 그는 이직을 택할 때마다 꿈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냐는 물음에 Y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상황에서 인간의 내면을 다루는 그런 영화. 나는 SF라는 껍데기 아래 인간의 삶을 담은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 같은 주제에 고민하고 창작한다는 점에서 그와 공통점이 많다고 느꼈다.
"저는 35살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엔 PO분들 만나면서 PO로서 커리어를 계속 이어갈지 아니면 창작자로 살아갈지 고민하고 있어요"
다른 이에게 말한 적 없는 속얘기를 꺼냈을 때 Y는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35살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늦지 않은 나이라고. 하지만 대학원에서 시나리오 작법을 수강하면서 연예인 S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S의 본업은 가수지만 배우에 도전을 했고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영화를 만들기 위해 수강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분은 진짜 내년에 영화 한 편을 만들겠다 싶었어요." Y는 내년에 본격적인 영화감독 준비를 위해 퇴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왜 꿈을 미뤄뒀을까? 꼭 35살이 전환점이어야 하나. PM으로서 더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삶도 이뤄내고 싶다. 지금부터 투고를 시도해 보고 공모전에도 지원한다면 35살 즈음 소설가라는 제2의 정체성을 가지지 않을까. 나를 둘러싼 단단한 벽이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광활한 하늘 아래 서 있는 기분.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쩌면 나는 여태껏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의 지지를 필요로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Y의 꿈을 순수하게 응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예전 같으면 마냥 응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실에 타협했던 어른의 시선에선 그의 선택은 불안정하고 힘들 길이니까. 하지만 나는 안다. 그가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고민하고 진지했는지를, 꿈에 가까워지기 위해 차근히 밟아온 커리어를 이해하니까.
"이제 저도 예술인 친구가 생기는 거네요."라는 말을 건넸을 때, 그가 지었던 수줍지만 반짝이던 표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