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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에 묻는다.

이혜정 교수에게 묻는다.

by 동고비

IB 관심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로서, 최근 이혜정 교수의 강연을 직접 들었습니다. 교수는 강연에서 스스로에 대한 반박을 즐기며 논쟁을 환영한다고 밝혔죠. 하지만 강연 말미, 몇 차례나 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질문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 질문을 남깁니다.


저는 지금 IB 연수를 집중적으로 이수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이혜정 교수의 대표 저서인 『IB를 말하다』와 그녀가 추천사를 쓴 『IB로 대학 가다』를 비롯해 시중에 나온 IB 관련 책들을 읽으며 수많은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IB를 직접 경험하며 동시에 제도의 한계를 목격하는 사람으로서, 이 시리즈를 통해 저의 질문들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IB에 묻는다"라는 제목 아래, IB의 구조적 문제, 교육적 유효성, 그리고 대학 입시와의 단절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글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 첫 편인 이번 글은, 이혜정 교수의 강연에서 직접 들었던 발언에 집중하여 질문합니다.


1. 공교육 평가 방식, 제대로 이해하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이혜정 교수는 공교육의 평가 방식을 비판하며, 이미 성인이 된 아들이 중학교 시절에 치렀던 시험지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미술 지필 평가 시험지였습니다. 그녀가 IB의 독보적인 평가 방식이라며 제시한 역사 평가 문항 또한, 현재 학교 현장에서 시행되는 역사 수행 평가 과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묻습니다. 지금 교실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옛 시험지를 들고 와, 현재 시행되는 수행 평가 문항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여전히 교사가 단순 암기 위주의 평가만 하고 있다고 단정하는 것이 과연 온당합니까? 교육과정은 수차례 개정되었고, 평가 방식 또한 꾸준히 변해왔습니다. IB 평가의 강점을 강조하고 싶다면, IB 자체의 장점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요?


2. IB 사교육, 이미 현실화된 문제 아닙니까?

검색창에 'IB 학원'을 입력해보셨습니까? 이미 수많은 업체가 줄지어 뜹니다. 이혜정 교수는 IB가 사교육을 무력화할 것이라고 말했고, 정답 없는 문항을 사교육이 어떻게 대비하겠냐고 되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우리나라 전체 학교 중 IB 인증 학교는 0.5% 남짓, 제가 근무하는 후보 학교들까지 합쳐도 2% 안팎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사교육 업계는 이미 IB 관련 교재를 내고, 학원을 열고, 강좌를 운영합니다. IB가 대세가 된다면, 그것은 사교육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교육의 새로운 트렌드가 될 뿐입니다.

멀리 볼 것도 없습니다. IB 교육의 성지라 불리는 제주 표선 초중고 근처에는 학원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이곳은 이제 IB 교육뿐 아니라 IB 사교육의 새로운 블루오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묻습니다. 사교육의 치밀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한국에서, IB만은 사교육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까?


3. '6장의 최저 없는 학종', 현실인가요? 환상인가요?

강의 전 제출한 서면 질문지에서 저는 IB 교육과 대학 입시의 연계 가능성에 대해 물었습니다. IB 디플로마 인증시험은 수능과 시기가 겹칩니다. 이는 곧 수능 점수를 반영하거나 최저 등급을 요구하는 전형에는 응시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과거 IB 과정은 주로 국제학교에서 운영되었고, 공교육 기관에서는 경기외고의 IB반(영어 디플로마 중심)이 사실상 유일했습니다. 다시 말해, IB는 해외 대학 진학이나 국제학교 학생들을 위한 전형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국내 대학에서는 국내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IB 디플로마를 받은 학생들을 위한 전형은 전무합니다.

그렇다면 국내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IB를 이수한 학생들은 어떻게 대학에 진학해야 합니까? 방법은 최저 없는 학종 6장으로 수시 원서를 채우는 것뿐입니다. 상위 15개 대학의 학종 선발 인원은 약 1만 5천 명 내외이고, 이 중 최저 없는 학종은 30~40% 수준에 불과합니다. 특목고 학생 전용 전형이나 기회균형 전형을 제외하면, 실제 일반고 학생이 지원할 수 있는 최저 없는 학종은 전체 정원의 1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혜정 교수는 거의 모든 수험생이 최저 없는 6개의 학종을 지원한다고 말했습니다. IB에서 디플로마를 취득한 학생들이 국내 대학 입시에서 겪는 불이익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은 분명합니다. 우리나라 수험생 중 6장을 모두 학종으로만 채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하물며 최저 없는 학종만으로 6장을 채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저는 묻습니다. 우리나라 입시 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 어떻게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IB가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4. 영어 디플로마와 한국어 이중언어 디플로마, 혼용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강연에서 이혜정 교수는 영어 디플로마와 한국어 이중언어 디플로마를 혼용하여 설명했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혼용입니까, 아니면 의도된 강조입니까? 이중언어 디플로마가 그 자체로 경쟁력이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전 세계 IB 졸업생 중 대다수는 영어 디플로마를 받습니다. 이중언어 디플로마 취득자는 비율로 따진다면 전체 디플로마 취득자의 약 25%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대부분은 유럽권에 집중되어 있고, 아시아 영미권은 그보다 훨씬 낮은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먼저 IB 교육과정을 공교육에 도입한 일본 역시 해외 대학 진학 비율은 현저하게 낮습니다.

그렇다면 국내 IB 학교는 어떻습니까? 제주 표선고의 사례를 보더라도, 이중언어 디플로마를 취득한 학생은 20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학생들은 결국 다른 일반계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는 평가 방식으로 수능을 보거나 학생부를 작성하여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것입니다.

IB 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교육 기조는 우리나라 국가 교육과정에도 충분히 담겨 있습니다. 수업 방식은 과거 혁신 학교에서 강조하던 학생 중심 수업과 다르지 않습니다. 평가를 통해 IB 교육의 차별성을 보여준다고 해놓고, 기존의 수능과 학생부에 의존해야 한다면 그 차별성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IB 학교에 다니기만 하면, 그 자체로 대학에서 학생의 성과를 인정해 줄 리가 없습니다. 디플로마 취득 자체가 어려운 데다가, 우리나라에서 이중언어 디플로마를 딴다고 하더라도 외국 대학에서 어느 정도로 인정해 줄지에 대한 사례는 아직 쌓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영어 디플로마를 가진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사례를 통해 이중언어 디플로마의 경쟁력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맺음말

저는 다시 묻습니다. 이혜정 교수는 정말로 공교육의 현실을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사라진 시험지를 근거로 오늘을 단정하고, 이미 눈앞에 드러난 사교육 현실을 외면하며, 입시 구조와 디플로마 제도의 차이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채 던진 말들이 과연 학생과 학부모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습니까?


이혜정 교수에게 교사 연수를 의뢰하는 교육청과 관리자들에게 묻습니다.

우리나라 공교육에 IB가 진정으로 도움이 됩니까? 각 시도 교육청 예산이 얼마나 IBO로 흘러들어가고 있는지 밝힐 수 있으십니까? 교육 관련 자료를 팔면 교육자입니까? 자녀 교육과 입시로 늘 불안에 떠는 학부모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연일 성황 중인 사교육계와 IB가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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